알을 깨고 나오려던 나의 10대, '레이디 버드'

양재서 | 기사승인 2020/10/08 [15:00]

알을 깨고 나오려던 나의 10대, '레이디 버드'

양재서 | 입력 : 2020/10/08 [15:00]

[씨네리와인드|양재서 리뷰어]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중.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는 것이다. 익숙한 동네, 낯익은 친구들을 뒤로한 채 스스로의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의 시작점은 “10이다. 평범한 외모와 그저 그런 성적, 풍족하지 않은 가정 형편. 이 세상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자아의 상실감은 주위에 대한 분노로 표출된다. 어쩐지 항상 날이 서있고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던 10대 시절은 불완전하고 예민하다. 그럼에도, 지금에 와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빛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 '레이디 버드'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레이디 버드>레이디 버드는 이름 그대로 알을 깨고 나오려는 한 마리의 새와 같다. 자신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붙인 크리스틴은 부모님의 입장에서 정말 감당 불가능한 자식이다. 말다툼을 하다가 차에서 뛰어내리질 않나, 학교에서는 자신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선생님의 시험지를 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특히 사사건건 엄마인 매리언과 대립하며 너도 너랑 똑같은 딸 나아서 키워봐라!”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하지만 갈등을 해결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또 유쾌하게 새로운 사고를 벌이며 레이디 버드는 세상 밖으로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불완전함이 있었기에 레이디 버드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크리스틴을 받아들였고, 끔찍이도 싫어했던 동네 새크라멘토를 그리워하게 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레이디 버드'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레이디 버드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도, 친구 줄리만큼 똑똑하지도, 학교의 퀸카인 제나만큼 예쁘지도 않다. 또 진실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대니는 게이였고 2번째 남자친구 카일은 바람둥이였다. 이처럼 평범하고 사소한 불행들은 레이디 버드를 레이디 버드로 만들어준다. 그 평범함 덕분에 그녀는 더 특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실은 줄리를 마음에 들어 했고, 수녀 선생님을 따랐고, 뮤지컬을 좋아하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며 원하는 과에 지원한다. 뉴욕의 대학에 가고 싶은 그녀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했다. 지루했던 동네, 그리고 매일같이 싸우던 매리언과 떨어지는 것이다. 이는 매리언도 마찬가지다. 레이디 버드를 보내는 것은 자신의 세상을 파괴하는 일이었다. 레이디 버드의 뉴욕행을 두고 또 한차례 싸운 모녀는 결국 화해하지 못했고, 입시에 성공한 레이디 버드는 무거운 마음으로 비행기를 탄다.

 

▲ '레이디 버드'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자신의 일기장을 들춰본 것 같다고 말한다. <레이디 버드>는 감독 그레타 거윅의 자전적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사춘기 소녀의 끊임없는 갈등과 분노가 더욱 생생하게 와닿는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또 싸우고, 미래를 위해 고민하며 우리는 끊임없이 껍질을 깨고자 몸부림쳤다. 하이틴 로맨스의 주인공도 아닌 레이디 버드와 나의 10대가 빛나던 까닭은 그런 치열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를 괴롭히던 고민들도 별거 아닌 게 되어버린 지금에서야 알 속의 포근함을 추억하게 된다. 어딘가에 항상 화가 나있고, 작은 일에도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레이디 버드가 안쓰럽고 귀엽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이미 어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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