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없이’의 세 가지 의미

영화 '소리도 없이'의 제목이 지닌 세 가지 의미

김준모 | 기사승인 2020/10/15 [11:30]

‘소리도 없이’의 세 가지 의미

영화 '소리도 없이'의 제목이 지닌 세 가지 의미

김준모 | 입력 : 2020/10/15 [11:30]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유아인, 유재명 주연의 소리도 없이는 보편성 안에 특수성을 지닌 블랙코미디다. 이 작품의 구성은 어둠 속에 살던 남자가 한 소녀를 만나 삶의 밝은 이면을 찾으며 그 소중함을 지키려 한다는 점에서 대중적이다. ‘레옹으로 대표되는 서사이며, ‘맨 온 파이어’ ‘아저씨등의 작품이 선보인 감정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진 특수성은 인간이란 존재가 지닌 사유와 블랙코미디의 씁쓸함이다.

 

사유는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것으로 개념이나 구성, 판단, 추리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을 말한다. 사유의 개념이 인류에게 중요해지게 된 건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다. 나치에 가담했던 전범 아이히만이 예루살렘에서 받은 재판이 준 충격이 컸다. 그는 자신은 국가 공무원으로 국민에 의해 정당하게 뽑힌 정권이 내린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 주장했다. 그에게는 자신이 한 행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블랙코미디는 흔히 쓰디쓴 웃음으로 알려져 있다. 전혀 웃긴 상황이 아닌데 괴이하게 웃음을 유발해내는 게 블랙코미디라는 인식이 강하다. 블랙코미디의 핵심은 비극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다. 주인공에게 내려진 슬프고 우울한 결말이 감정적인 격화를 이끌어낸다. ‘소리도 없이는 이 카타르시스를 묘하게 이끌어낸다. 엄청난 에너지를 지니고 있지만, 그 에너지를 소리도 없이억누르는 위력을 갖춘 영화다.

 

이 영화의 제목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이 세 가지 의미는 블랙코미디의 색을 더욱 강화하며 사유를 되새기게 만든다. 그 시작은 일상이다.

 

▲ '소리도 없이' 스틸컷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소리도 없이이뤄지는 일상

 

태인과 창복은 성실한 일꾼이다. 두 사람은 투잡을 뛴다. 트럭 가득 계란을 싣고 다니며 장사를 하고, 돌아와서는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시체를 수습하는 일을 한다. 이 일을 하는 과정은 인상적이다. 두 사람은 우비를 입고 밧줄에 묶인 사람을 공중에 매단다. 손님으로 온 범죄조직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일이 끝나자 박카스 한 병씩 돌리며 수고했다 말하는 모습은 여느 직장인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두 사람에게 시체 수습은 일상이다. 시체를 땅에 파묻는 태인과 기도를 드리며 영혼을 보내는 창복의 모습에서 공포나 두려움, 강렬한 악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다. 창복이 태인한테 기도 녹음테이프를 주며 집에서 들으라는 점에서 그가 죄책감을 지닌 인물이란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점이 중요한 건 작품 속 인물들을 범죄에 무감각한 도덕성을 상실한 캐릭터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살인을 일삼는 범죄 조직과 초희를 납치한 유괴 조직은 일 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창복의 말에 일이니까 한다는 같은 대답을 한다. 그들에게는 범죄가 돈을 버는 일상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런 사유의 부족은 소리도 없이의 세계관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사유가 부족하다.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의 아이히만처럼.

 

▲ '소리도 없이' 스틸컷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소리도 없이다가오는 사유

 

이 범죄로 물든 평범한 일상 속에서 태인은 소리도 없이다가온 사유를 겪는다. 태인의 사유는 납치한 아이, 초희에게서 비롯된다. 태인의 모습은 마치 유인원과 같다. 말을 할 수 없는 그는 창복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먹고 자는 일 말고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배우 유아인은 이런 태인의 원시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살을 찌우고 머리를 밀었다. 흔히 말하는 모자라 보이는 외형을 갖추기 위해서다.

 

처음 초희가 태인의 집에 갔을 때 본 충격은 태인의 동생에게서 비롯된다. 방에 널브러진 옷 사이에서 등장한 태인의 동생은 오빠한테 배고파라 말하고 먹을 것을 먹은 뒤 다시 잠을 청한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서 살면서 그저 먹고 자고 TV를 보는 생활을 반복한다. 초희는 이런 태인의 동생을 마치 친동생처럼 돌본다. 함께 집을 청소하고, 예절을 가르친다. 초희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태인에게 문 앞에서 신호를 달라고 말하는 건 두 사람 사이의 유대감을 보여준다.

 

이런 유대감이 쌓이는 순간 태인은 사유를 하게 된다. 초희의 존재가 소중해지면서 자신이 소녀에게 하고 있는 행동의 잔혹함을 보게 된 것이다. 이는 대상에 감정을 이입하지 않는 시체 수습에서 대상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 유괴로 일상이 바뀌며 생긴 변화라 할 수 있다. 같은 범죄지만 일상이란 범주를 벗어난 순간 생각을 지니게 만든다. 물결에 떨어진 작은 돌이 만든 파동처럼 초희의 존재가 사유를 이끈 것이다.

 

이런 태인의 사유는 창복을 벗어나면서 더욱 강해진다. 창복과 태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적으로 약자라는 점이다. 두 사람 다 넉넉하지 못한 경제수준에 태인은 말을 하지 못하고 창복은 절름발이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여기에 태인은 돌봐야 할 동생도 있다. 그래서 창복이 시키는 대로 따른다. 그 일이 무엇이던 생계를 책임져 주기 때문이다. 종교는 죄책감을 줄이는 역할과 함께 창복이 태인과 유대를 맺고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역할도 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끈끈한 연대감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창복이 부재한 순간, 태인은 사유를 발견한다. 마음의 소리를 읽고 머리로 생각을 한다. 만약 이 단계에서 영화가 멈췄다면 사유의 의미는 담았지만, ‘레옹이나 아저씨등의 작품이 보여준 서사의 단계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여기서 한 발짝을 더 나아가는 건 블랙코미디의 힘이다. 블랙코미디의 웃음이 지닌 특징은 캐릭터에 있다. 작품 속 캐릭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평범한 캐릭터는 쓰디쓴 웃음을 안기지 않는다.

 

▲ '소리도 없이' 스틸컷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소리도 없이내리치는 절망

 

작품의 비극은 초희에서 비롯된다. 초희가 처음 유괴된 후 태인과 창복에게 맡겨진 건 아버지가 빨리 몸값을 보내지 않아서다. 그 이유는 초희가 여자아이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초희의 성숙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추측할 수 있게 만든다. 11살 아이가 납치를 당했는데 침착하다. 오히려 유괴범을 걱정해주고 그 가족에게 따뜻함마저 보인다. 초희는 생존하는 법을 안다. 사랑만 받아야 할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 내에서 생존경쟁에 몰렸고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초희의 첫 등장은 기괴하다. 눈동자가 없는 토끼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이 가면은 내용이 아닌 심리의 복선이 된다. 가면은 얼굴을 가린다. 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눈동자는 진심을 담는다. 눈동자가 없다는 건 진심을 비치지 않겠다는 의미다. 초희는 한 순간도 태인에게 진심이지 않았다. 어른스럽고 성숙하며 따뜻함을 보여준 초희의 모든 행동은 그저 생존을 위해 터득한 가면일 뿐이다.

 

사유의 무서운 점은 개미의 몸에서 새의 눈을 지니게 된다는 점이다. 내 현실은 개미처럼 바닥에 붙어 조금씩 움직이는데 눈은 저 멀리 정상을 바라보고 있다. 높은 곳을 모르면 눈앞에 길로만 나아갈 수 있지만, 알아버린다면 자신의 행동이 부질없고 슬픈 제자리걸음이란 걸 알게 된다. 사유를 몰랐던 태인은 눈앞의 돈과 일에만 집중했다. 창복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우리 안에서 행복을 느꼈다.

 

사유를 시작한 순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잔인함과 부도덕함, 소중한 사람을 사랑하는 온기, 그 온기를 잃는 순간 겪게 되는 슬픔을 모두 알아버린다. 이제 그는 다시 우리 안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런 소리도 없이다가오는 절망은 창복에게도 일어난다. 창복은 유괴 일에 가담하면서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시체를 치우는 일에는 어떠한 감정적인 격화를 느끼지 못했던 그는 일상에서 벗어난 순간 사유에 직면한다.

 

돈가방을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온몸을 아픈 사람처럼 떠는 그의 모습은 인간이 지닌 죄책감의 공포가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범죄에 익숙한 창복의 모습은 웃음을 유발해내지만 현실적인 겁에 질린 모습은 오히려 불편함을 자아낸다. 이 지점은 사유의 본질을 보여준다. 삶에 대한 사유의 결말은 죽음이다. 인간이 견뎌야할 고통과 슬픔, 절망과 분노의 무게에 대한 합당한 답은 죽음 밖에 없다. 그것이 일상이 사유를 멈춘 이유이기도 하다.

 

사유를 포기한 삶과 사유에 빠진 삶, 이 두 가지는 모두 소리도 없이나타난다. 거대한 파도는 눈으로 볼 수 있기에 피할 수 있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와 생각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어 충격과 슬픔을 남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블랙코미디의 카타르시스는 사유의 시작에서 비롯된다. 사유를 통한 감동과 따뜻함 대신 가까이서 바라봐야 느낄 수 있는 비극을 택하며 사유의 구덩이로 관객을 몰아넣는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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