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프레임에서 바라보는 걸작과 졸작

[서평] 김이산, '걸작과 졸작 사이'

김준모 | 기사승인 2020/10/15 [14:00]

한 프레임에서 바라보는 걸작과 졸작

[서평] 김이산, '걸작과 졸작 사이'

김준모 | 입력 : 2020/10/15 [14:00]

▲ '걸작과 졸작 사이' 표지  © 반니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비평가와 예술가

 

학부 시절 수업 내용이 극명하게 갈리는 두 교수의 영화수업을 들은 적 있다. 한 교수는 비평가였고, 다른 교수는 영화감독이었다. 비평가 교수의 수업은 좋은 영화를 보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수업의 주된 내용은 이 영화가 좋은지였다. 미장센부터 촬영기법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명작이 명작인 이유를 설명했다. ‘시민 케인의 한 미장센을 예로 들며 그 효과에 대해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영화감독 교수의 수업은 명작을 배운다는 점은 같았지만 그 설명에서 차이를 보였다. ‘본 슈프리머시의 한 장면을 보며 감탄하더니 그 이유에 대해 카메라맨이 함께 뛰어서라고 말했다. 완성된 결과보다는 그 과정이 어떤지에 더 집중한 것이다. 어떤 감독이 배우와 카메라맨을 함께 뛰어 촬영을 하게 할 수 있을까 라는 그 파격이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 교수님 수업에서는 역린같이 비평가에게 좋지 못한 평을 받은 작품에 대한 찬사도 있었다.

 

비평가는 작품을 평가하는 사람이다. 만들어진 결과물에 대해 좋고 나쁨을 평하는 이들이다. 우리가 음식점에 갔을 때, 주방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거처럼 비평가는 좋은 작품을 보고자 한다. 그들에게 예술가의 사정은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신인감독치고’ ‘전작과 비교해서같은 수식어가 붙을 순 있겠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평가가 매겨진다.

 

예술가는 이런 비평가에게 작품을 평가받는 위치에 있다. 예술가에게 비평은 잔인하게 다가온다. 자신의 노력과 열정과는 다른 평가로 자식과도 같은 작품이 낙인찍히는 일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술에는 걸작과 졸작에 대한 평가가 따른다. 이유는 졸작이 있어야 걸작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착하면 착한 사람이 없어지듯, 졸작이 없고서야 걸작은 탄생할 수 없다.

 

비평에는 절대성이 없다. 영화평론가의 대다수는 자신이 영화에 준 평점을 시간이 지나 수정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화를 보는 시각이 변하기 때문이다. 비평가의 평가는 절대적이지 않다. 시대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개인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다른 기준이 생기기도 한다. 비평보다 더 유동적인 생명력을 지닌 예술은 그 졸작과 걸작이란 영역의 폭이 더 넓다. 어느 예술가나 걸작 이전에 졸작을 만든다.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은 소수다.

 

파리 국립고등응용미술학교를 졸업한 김이산 작가는 13번의 개인전을 연 화가다. 비평가가 쓴 책이라면 걸작을 소개하고 이와 대조되는 걸작을 보여줬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인 작가는 한 화가의 작품 내에서 걸작과 졸작을 나눠 소개하는 시도를 한다. 이 시도는 걸작이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이 아니며, 화가의 작품 내에서 어떤 점이 걸작이 되고 졸작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걸작을 보는 눈

 

작가는 산드로 보티첼리, 엘 그레코, 프란시스코 고야, 장 프랑수아 밀레 등의 작품을 소개하기에 앞서 걸작의 조건을 26가지 제시한다. 26가지 중 인상적인 3가지를 뽑자면 시간, 독창성과 보편성 그리고 조화다. 먼저 시간은 걸작을 만드는 건 그 작품의 생명력과 상상력도 있지만, 시대가 지닌 특수성을 무시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작가는 예술에도 유효기간이 있을 수 있다는 말로 시간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18세기 로코코 시대의 프랑스 화가 부쉐는 아름다운 여인의 나체를 주로 그려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남성 우월주의적이며 퇴폐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별이 빛나는 밤등 여전히 사랑받는 수많은 명작을 남긴 고흐도 생전에는 그 작품세계를 인정받지 못했다. 걸작이라 한다면 시간의 흐름을 받지 않는 작품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시간에 따라 걸작으로 칭송받거나 졸작으로 폄하 받는 게 예술이다.

 

독창성과 보편성은 상반된 개념처럼 느껴진다. 독창적이면 보편성이 없고, 보편적이면 독창성이 부족한 거처럼 보인다. 그런데 걸작은 보편성과 독창성을 동시에 지닌다. 그 대표적인 예술가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그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닌 최고의 예술가로 대중적으로 영감을 주면서 자신만의 특별함을 지녔던 이다. 걸작을 만들기 어려운 건 독창성과 보편성의 비()를 맞추는 작업 때문이다.

 

보편성이 강하면 뻔하기 때문에 지루하고, 독창성이 강하면 난해하기에 이해하기 힘들다. 영화에 있어서도 걸작이란 칭호를 듣는 작품들은 보편적인 재미를 지니면서 작품만이 지닌 독창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술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이 작품만이 지닌 독창성이 보여야 걸작이 된다. 그러면서 난해한 독창성만으로 무장해서는 안 된다. 어린 아이의 난해한 그림을 보고 피카소가 탄생했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피카소는 그 경지에 이를 때까지 무수한 시간을 자신의 독창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조화는 이 책이 소개하는 회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작가는 이 조화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미지는 글처럼 순차적으로 대상 하나하나를 설명하기 힘들다. 시각이 주는 인상은 한 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이렇고 저 부분이 저래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조화를 이룬다고 설명을 한다고 한들, 시각의 측면에 있어 하나의 조화를 볼 수 없으면 그 경이로움을 느낄 수 없다.

 

조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소개한다. 이 작품은 중앙에 예수 그리스도를 배치하며 균형을 잡는다. 예수 뒤에 위치한 세 개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원경과 빛은 공간감을 주면서 예수 주위를 밝혀 집중을 높인다. 어두운 공간과 대비되어 생명력과 신비감을 더하기도 한다. 상호성, 화합, 대립, 견제 등 조화를 위한 모든 요소를 갖춘 걸작이다.

 

벌거벗은 임금님과 예술

 

작가는 이 책을 대중과 전문가 사이의 작품이라 말한다. 개인적으로 예술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견문을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두꺼운 분량과 컬러로 된 그림을 삽입하며 작품을 보면서 설명을 통해 걸작을 보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대학에서 수업을 가르칠 때 예술가 한 명 한 명의 그림을 분석하며 미술을 보는 방법을 가르쳐도 좋을 구성의 책이다. 도입부에서 이론을 잡아주는 구성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작가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란 에필로그를 통해 현대의 예술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인다. 미술을 공부하며 틈이 날 때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최고의 예술가들이 선보인 작품을 감상했다는 작가는 수많은 좌절을 경험했다고 한다. 25년 넘게 창작을 했지만 여전히 미술이란 게 무엇인지 본인도 확실히 모르겠다고 한다. 특히 현대미술에 있어서는 더 그 기준을 잡을 수 없음을 언급한다.

 

현대미술의 대표작은 마르셀 뒤샹의 이다. 그는 화장실 변기를 떼어 와 이란 이름을 붙여 전시했다. 이 파격은 기존 질서에 대한 해체와 가치의 다양성이 중시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후 이만한 파격을 준 예술작품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대중성도, 그렇다고 같은 독창성도 잃어버린 현대미술은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매체는 보는 눈이 많고,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때문에 전문가의 입김이 크지 않다. 비평가가 혹평을 해도 대중의 입소문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을 떠올리면 수긍이 갈 것이다. 반면 미술이나 문학은 다르다. 이 분야에서의 결과물은 좋은 비평가를 만나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입김이 강하다. 그래서 자기가 벌거벗은 부끄러운 모습인 줄도 모르고 대중 앞에 서는 임금님이 존재한다.

 

걸작과 졸작은 대칭이 아닌 점진을 이룬다. 졸작의 반대편에 선 게 걸작이 아니라, 졸작을 따라가다 보면 걸작을 보는 눈을 익히게 된다. 그런데 자칭 예술가나 자신들의 입김에 힘을 넣는 비평가들은 그 눈을 흐리게 만든다. 작가는 이 점에 우려를 표하며 걸작과 졸작을 따로 바라보기 보다는 하나의 프레임에 넣는 시도를 선보인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예술을 바라보며 그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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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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