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여성 영화가 맞을까?

'프록시마 프로젝트'가 남긴 찜찜함에 대해

임채은 | 기사승인 2020/10/23 [15:55]

정말 여성 영화가 맞을까?

'프록시마 프로젝트'가 남긴 찜찜함에 대해

임채은 | 입력 : 2020/10/23 [15:55]

[씨네리와인드|임채은 리뷰어]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누가 봐도 우주 영화였다. 또 여성 영화였다. 포스터를 봐도 줄거리를 읽어도 그렇다. 하지만 극장을 나오며 느낀 건 우주 영화도, 여성 영화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은 나를 배신한 지점들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가장 평범한 이야기

사라(에바 그린)는 우주로 향하는 프록시마프로젝트에 선발된 능력 있는 우주 비행사다. 별거 중인 남편 토마스(라스 아이딩어) 사이에서 낳은 스텔라(젤리 불랑르멜)을 홀로 키우고 있는 엄마이기도 하다. 아이를 가끔 만나는 아빠이자 천체 물리학자인 토마스는 스텔라와의 약속을 한두 번 미룬 것이 아니다. 사라가 토마스를 만나 스텔라 이야기를 꺼내자 자동 응답기를 켜놓은듯이 이번에도 일이 바빠져서 만나긴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사라는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다. 자신이 우주에 몇 개월 동안 나가 있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자, 그 동안 아이를 봐 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이다. 잠깐 보는 것도 바쁘다고 미룬 토마스에게 몇 달을 부탁하러, 그동안 홀로 짊어지고 있던 스텔라의 중력을 나누기 위해.

 

 

▲ '프록시마 프로젝트' 스틸컷     ©영화사 진진

 

 

이제 접점이 하나 둘 사라진 두 사람은 스텔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라가 스텔라는 수학을 잘 못한다고 이야기하자 토마스는 아빠가 천체 물리학자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는 표정을 지으며 의아해한다. 그러다 무심한 아빠로 비춰질까 갑자기 뜨끔한 그는 나는 아이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고 도리어 인상을 찌푸리며 화를 낸다. 뒤이어 어이없는 질문으로 사라를 떠보기까지 한다. “내가 아이를 못 맡겠다고 하면 우주 안 갈 거야?” 사라는 답을 하지 않고 결국 토마스가 자신이 스텔라를 돌보겠다고 하며 마무리 짓는다. 물론 별거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지만 육아는 사라만의 몫이 아니고, 일은 토마스도 하지만 사라도 한다. 사라가 지구 밖으로 나가게 되며 지금껏 그가 도맡아 해오던 일과 육아의 병행이 토마스에게 넘어간 것뿐이다. ‘우주라는 특별함을 가장한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어쩌면 무엇보다 평범한 이야기다. 평범한 직장인 여성이자 엄마에 대한 이야기. 영화가 던지려 착륙시키려 했던 희망과 응원 혹은 위로의 메시지는 현실에 충돌해 운석처럼 산산조각 난다.

 

미성숙의 발화, 연대의 송신오류

이 영화에서 가장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사라가 규칙을 어긴 순간이다. 그것도 우주가 몇 발자국 앞으로 가까워진 순간에서 말이다. 출발 전 사라는 스텔라와 지키지 못한 약속을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새벽에 숙소를 몰래 나와 맞은 편에 스텔라가 있는 호텔로 찾아간다. 그리고 스텔라를 데리고 약속한 대로 발사대에 거치된 로켓을 보러 간다. 먼 거리에서도 존재감을 뽐내는 로켓 발사대와 그걸 바라보는 스텔라와 사라의 뒷모습. 웅장한 음악과 펼쳐진 이 장면을 보면서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사라의 노력이 불타는 장면 없이 재가 돼 버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라 영화이니 사라는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온다. 방금 전의 허가 받지 않은 타락까지 씻으려는 듯 붉은 요오드 용액으로 몸을 세척한다. 사라와 달리 동료들은 소독된 상태 그대로 얌전히 잠들어 있다. 사라의 행동은 위험했다. 관계자에게 걸리지 않았더라도 병균을 들여와 동료들에게 옮길 수도 있었다. 약속을 지키면서 얻는 것은 자신과 스텔라의 행복이지만 잃는 것은 수없이 많다.

 

오히려 의젓한 사람은 사라보단 스텔라다. 잠깐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눈 면회시간에도 스텔라는 담담하게 약속을 못 지켰어도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사라는 본인의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겨우 약속을 지킨다. 약속을 미뤘던 토마스처럼 되지 않기 위한 발버둥으로 보인다. 결국 이 영화가 표현해내고 싶었던 일도 육아도 잘 해낸 여성은 욕심이라는 파도에 모래성처럼 부스러진다. 사라가 발사대에 오름으로써 성공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과정을 놓고 보면 완벽히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일과 육아를 멋있게 둘다 해낸 여성들의 모습은 사라에게서는 찾을 수 없다.

 

▲ '프록시마 프로젝트' 스틸컷     ©영화사 진진

 

여성 영화라고 보기에 애매한 지점들도 눈에 띈다. 동료 우주인 마이크(맷 딜런)가 사라를 프랑스 여자가 그렇게 요리를 잘한다고 하던데 기대가 된다는 식으로 모욕해도 그의 아내만큼은 사라를 멋있게 봐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사라에게 애매한 눈빛을 보낸다. 사라에게 한 첫 질문은 아이는 누가 돌보냐였다. 마이크가 우주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사라가 우주에 가는 것은 아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예전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이 외친 소는 누가 키우냐는 대사가 생각났다. ‘아이로 변주되어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효한 말이 됐다. 웃기기 위해 과장도 섞어 토해냈던 코미디가 대양을 건너 여성의 입에서 다른 여성의 귀로 들어간 이 대목이 참 씁쓸했다.

 

대놓고 사라의 속을 긁는 여성도 나온다. 우주 비행사들의 가족을 돌보는 매니저 웬디(산드라 휠러)는 스텔라의 눈물 게이지를 올리고 사라의 분노 게이지를 올린다. 첫 상담 때 사라가 우주에 가면 오랜 시간 먼 거리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밑줄에 별표까지 치듯 강조해 스텔라를 울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끌어주는 다른 여성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여성들의 주파수는 맞지 않고 틀어진다. 사라가 여성 우주인의 사진을 보고 꿈을 키운 것처럼, 사라의 마그넷과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꿈을 키울 것이라는 예측만 가능할 뿐이다. 영화는 굵직한 줄기를 제외한 잔가지들을 전부 쳐낸다. 아빠도 주변의 여성도. 화면에 남겨지는 것은 사라와 스텔라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이 뭘까?

 

두 사람의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로켓이 지구에서 멀어져 우주로 향하듯 스텔라도 사라에게서 멀어진다. ‘스텔라가 좋아하는 남자 아이처럼 사라가 모르는 일상과 추억이 쌓인다. 한 몸을 공유했던 두 사람은 처음으로 멀리 떨어진다. 멀어진 거리만큼 한 뼘 성장한다. 라캉의 거울단계 이론에서 아이가 거울을 보며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처럼 말이다. 엄마가 부재한 자리는 발치한 사랑니의 흔적처럼 성장의 증표가 된다. 문득 엄마와 딸이 바뀐 버전의 '레이디 버드'가 떠올랐다. '레이디 버드'에서 집을 떠난 것은 10대 소녀지만, '프록시마 프로젝트'에서는 엄마가 지구를 떠난다. 집을 떠나고, 엄마를 떠나고, 혹은 지구를 떠나고, 아이를 떠나는 과정에서 미성숙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긴다.

 

일과 육아는 양립 불가능하다

사라는 일과 육아 모두 성공했을까? 아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이크가 사라를 위로하며 한 완벽한 우주인은 없다. 완벽한 엄마도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은 예언이 된다. 사라는 우주로 가는 로켓에 몸을 실었지만 오점을 남겼다. 엄마로서 자리를 빼앗으려는 것은 아니다. 부정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라의 뒤에 그를 대체할 2군의 우주인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라가 공식적으로 처음 소개된 자리부터 우주에 가기 전으로 한 마지막 기자회견까지 그들은 선발 우주인 뒤를 따라 걸었다. 무슨 일이 생기자 마자 바로 대체할 수 있게. 작은 규칙을 어겨도 낙오되는 치열한 우주인 사회에서 용납이 어렵다. 마지막까지 우주선 조종 수칙을 달달 외우던 사라는 규칙 위반이라는 용납하기 힘든 오점을 남긴다. ‘일과 육아의 양립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영화는 에둘러 아니라고 답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몰래 나갔다 오는 게 성공할 가능성은, 육아에 짓눌리지 않은 어깨로 매섭게 쫓아오는 사람들을 따돌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우니까.

 

 

▲ '프록시마 프로젝트' 스틸컷     ©영화사 진진

 

 

영화는 육아에 대해 정면 돌파하려 하지만 일정 부분은 지우고 외면해버린다. 토마스가 스텔라를 돌보기는 하지만, 그의 돌봄 노동은 기간 한정적이다. 또는 그럴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토마스와 스텔라의 유대는 화면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웬디와 스텔라의 신체 접촉을 더 많이 보여준다. 영화는 끈질기게 여성과 아이를 달과 지구의 관계로 묶어 놓는다. 겨우 떼어낸 엄마와 아이의 몸을 다시 살포시 붙여 놓는 격이다. 사라가 지구로 돌아오면 토마스가 예전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가느다란 희망을 읽을 수도 있지만,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사라 혼자 스텔라를 맡고 토마스는 약속을 미룰지도 모른다. 육아에 있어서 토마스는 일시정지 버튼을 가지고 있다면 사라는 늘 현재 진행형이다. 토마스가 스텔라의 손을 놓고 밖에 나가 뛰어 놀게 하는 쪽이라면 사라는 품에 안고 놀아주는 쪽이다. 스텔라가 토마스의 보살핌을 받는 동안 놀다가 팔에 깁스를 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의 육아법이 더 건전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 말미에서 스텔라가 본 초원을 질주하는 말처럼 언젠가 스텔라도 홀로 뛰어야 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프록시마 프로젝트'가 단점만 있는 영화는 아니다. 여타 영화에서 쉽게 다뤄왔던 양육문제를 어렵게 풀어가는 게 강점이다. 그 동안 여러 우주 비행사들이 나오는 영화에서 없는 존재취급당하던 양육 문제를 중요한 위치로 복권시켰다. 아이가 보고 싶어서 우주 비행사라는 오랜 꿈을 포기할까 고민하는 정도로 말이다. 무엇보다 감독이 말하고 싶어하는 내용은 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끝난 후에 나오는 사진들에 있다. 실제 여성 우주인과 그 가족들(특히 아이)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이 주는 힘과 울림만큼은 무시하고 싶지 않다. 사라는 실패했지만 그들은 성공했다. 육아의 무게에 짓눌리는 여성이 보이면, 그 무게를 조금 내려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게 해도 충분히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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