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우리 모두가 괜찮을 수 있을까요?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김지수 | 기사입력 2019/05/09 [10:20]

정말 우리 모두가 괜찮을 수 있을까요?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김지수 | 입력 : 2019/05/09 [10:20]



 

학교가 이미 다 끝난 뒤인 늦은 밤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집으로, 몇몇은 독서실로, 또는 학원으로 갔을 시간이었다. 아니, 학원도 독서실도 모두 마쳤을 늦은 시간이다. 그러나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는 밤거리에 아직 남아있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가 마친 지 오래인 늦은 시간에도, 고등학교 교사 민재는 이러한 아이들을 만나러 늦은 밤 매일 거리로 나선다. 그는 늘 아이들과 함께한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불안하고 위태롭기만 하다. 아이들은 세상을 향해 날을 세웠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감추기 위한 그들의 말과 행동은 첨예했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는 아이들은 그저 탈선하는 비행 청소년이겠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와,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리고 민재는 그들에게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되어 주고 싶었다.

 

민재가 거리의 아이들에게 이토록 애정을 쏟는 이유는 과거 그의 제자 준영 때문이었다. 준영은 방황하고, 소외되고, 가슴 아픈 상처를 지닌 아이였다. 식사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생계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준영의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아픈 어머니의 식사를 위해 준영은 어린 나이부터 온 동네의 편의점을 돌아다니며 남은 음식을 구하곤 했다. 시간이 새벽 두 시, 세 시여도 마다하지 않았다. 학교 급식으로 나온 빵과 우유가 많이 남은 날에는 집에 계실 어머니를 위해 그것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준영은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 손은 무겁지만 발걸음은 가볍게 집으로 향했다. 친구가 준영의 소중한 빵과 우유를 모두 짓밟기 전까지 말이다. 그것은 준영에게 단순한 빵과 우유가 아니었다. 생(生)의 의지였고,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었다. 그 모든 것이 짓밟히고, 무너졌다.

 



준영을 괴롭히는 친구들로부터 그를 구해준 것은 동네 폭주족이었다. 그를 자주 따르던 준영은 자연스레 폭주족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매우 슬퍼하였듯, 준영 자신도 폭주족이 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준영은 본드에 손을 댔다. 본드는 점점 더 준영을 잠식시켰다. 준영은 민재와 본드를 하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매번 ‘선생님, 저 본드 했어요.’ 라고 말하며 약속을 지키는 데 번번이 실패한다. 민재는 이러한 준영에게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는 늘 괜찮다고 말했으며, 준영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려 했다. 그의 집에서 자주 재워 주기도 했다.

 

그 날도 마찬가지로 준영은 익숙하게 민재의 집에서 자고 가도 되냐며 물었다. 그러나 민재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그는 준영의 말을 거절했다. 한 번도 거절한 적 없었던 자신의 부탁을 거절한 민재에 준영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마 늘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돌아섰다고 생각하여 많은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을 지탱하던 무언가가 사라진 듯 절망스러웠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추락할 듯 위태롭기만 하던 준영은 서서히 차도를 향해 발을 내딛는다. 빛나는 헤드라이트, 클락션 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차를 보았지만, 피하지 않는다. 준영은 추락했다.

 

두 번 다시 준영이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재는 다짐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반 아이들 지근, 용주, 현정, 수연, 성태에게 많은 관심을 쏟는다.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아픈 사정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그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 더욱 가시를 세우기도 하였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애써 담담한 척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는 척하는 게, 상황을 피하는 게, 날을 세우는 게 상황을 좋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민재는 그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들을 돕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자신들을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미는 누군가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사연은 지근을 중심으로 그의 친한 친구인 용주, 현정으로 퍼져 나가며 전개된다. 폭력적인 외삼촌과 자신의 존재를 외면하는 엄마를 둔 지근, 아내의 죽음을 아들 탓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를 둔, 사실은 학교 폭력으로 고통 받고 있던 용주, 매일 밤마다 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현정, 학교 폭력으로 고통 받던 또 다른 아이 수연, 마지막으로 가출 청소년에게 숙식을 제공한다는 말로 그들을 성매매 알선하는 성태. 민재는 이 모든 아이들을 구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용주는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용주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지근, 현정, 수연, 성태의 약간은 변화된 일상적 모습이 그려지고 영화가 마무리된다.

 

필자는 영화의 마무리 부분에서, 민재가 성태를 ‘가장 위태로우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아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화 속에서 성태는 가해자로 그려진다. 성태는 지근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이유만으로 지근의 여자 친구인 수연을 꾀어 수연을 성폭행하려 했다. 뿐만 아니라, 중학생 소녀에게 ‘숙식 제공비를 받아야 한다’며 성매매를 알선하기까지 한다. 그의 행동은 절대 윤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최근 모 유명 가수들이 성매매 알선으로 구속되고, 나라가 떠들썩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이러한 전개는 더욱이 필자에게 불편함을 안겨 주었다. 과연 엄연한 가해자인 성태를 ‘가장 위태로우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분명한 가해자의 잘못을 ‘어린 시절의 방황’ 따위의 이유로 감싸는 것이 아닌지 의문스럽다.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는 우리에게, 방황하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어제 일은 모두 괜찮다’고 말한다. 어제 일은 모두 괜찮으니 오늘 새로운 삶을 살아가라고 말이다. 영화는 일본 유명 교사의 에세이를 각색한 작품인 만큼, 현재 우리 사회의 학생들이 절대 겪어서는 안 될 많은 것들에 대해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을 강조하며, 교훈을 준다. 학창시절 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혹은 지금 누군가가 겪고 있을 아이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며 ‘괜찮다’고 그들을 위로한다. 실제 상영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감독과 배우와의 토크 시간에 한 관객은 ‘어린 시절 참 많이 방황했었는데, 나를 잡아 주었던 사람이 없었다. 영화를 보고 참 많이 위로 받았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영화를 통해 과거의 자신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가 이 영화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성폭력을 당했거나, 그와 관련된 아픈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가해자를 위하는, 감싸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영화는 지난 일에 대한 더 깊은 상처로 다가올 수 있다. 지난 일이, 어제의 일이 모두 괜찮은 것은 아니다. 과거의 일이 지나갔다고 해서, 잊혀졌다고 해서 그것이 아예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님을 영화는 알아야만 한다. 

 

 

[씨네리와인드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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