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표정에서 발견한 세 여성의 죽음 그리고 희망

[프리뷰] ‘내가 죽던 날’ / 11월 12일 개봉 예정

김준모 | 기사승인 2020/11/05 [16:58]

같은 표정에서 발견한 세 여성의 죽음 그리고 희망

[프리뷰] ‘내가 죽던 날’ / 11월 12일 개봉 예정

김준모 | 입력 : 2020/11/05 [16:58]

▲ '내가 죽던 날'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여성서사 작품에는 두 가지 방향성이 있다. 과거 여성서사는 연대에 집중했다. 여성들이 부당한 대우나 권력에 맞서 서로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 여성서사는 독립과 강인함을 보여준다. 여성 스스로 부당함에 맞서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조명한다. ‘내가 죽던 날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선보인다. 현대의 트렌드를 통해 감정을 뽑아내면서, 연대의 미덕을 잊지 않는다.

 

이런 두 가지 서사를 동시에 잡아낸 비결은 추리극의 묘미를 제대로 선보였다는 점에 있다. 장르에서 볼 수 있듯 극적인 재미보다는 드라마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었다. 다만 추리의 과정을 게으르게 선보이진 않는다. 미스터리나 스릴러 같은 장르적인 매력은 부족하지만, 드라마를 통한 감정의 격화나 묵직한 한 방을 준비하고 터뜨린다. 성실하게 준비한 만큼 그 노력의 결실을 맺는다.

 

▲ '내가 죽던 날'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타인에게서 찾은 내 얼굴

 

오랜 공백 후 복직을 준비하던 형사 현수는 복직 전 한 사건을 맡게 된다. 그 사건은 한 소녀의 실종 사건이다. 태풍이 몰아치던 밤, 외딴섬 절벽 끝에서 유서를 남긴 소녀가 사라졌다. 절벽에 신발이 있다는 점에서 자살로 결론이 내려지는 분위기지만, 경찰은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현수를 섬으로 보낸다. 현수는 그곳에서 재판의 중요한 증인인 소녀, 세진이 지냈다는 집을 향한다.

 

그 집에서 현수가 발견한 건 CCTV에 찍힌 세진의 얼굴이다. 세진은 아버지의 비리 문제로 주요 증인으로 채택된다. 증인보호를 위해 섬으로 온 세진은 일거수일투족을 CCTV로 감시당한다. 현수는 화면에 찍힌 세진의 얼굴 표정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 표정은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현수에게 사건은 단순한 실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진실을 알아야만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작품은 추리의 과정에 심혈을 기울인다. 현수는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세진의 기록을 추적하면서 아이에 대해 알고자 한다. 장르적인 매력을 덜은 만큼 다소 지루해질 수 있는 이 전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이유는 현수에 있다. 세진의 진실을 아는 건 현수가 자신을 찾는 과정이다. 현수는 남편의 외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에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지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 현수의 얼굴이 세진의 얼굴이다. 세진도 현수처럼 아버지의 비리를 몰랐다. 두 여자는 앞을 향해 달리느라 그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고통이란 늪에 빠져 매일 악몽을 꾸는 현수는 세진 역시 악몽에 시달렸다는 걸 알면서 공감을 느낀다. 팔에 난 자해자국, 남자에게 입은 상처 등 두 여자 사이에는 같은 표정이 생길 수밖에 없는 감정이 있다.

 

▲ '내가 죽던 날'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절벽에서 떨어진 여자들

 

작품은 이 공감대를 현수와 세진에 이어 순천댁과 정미까지 확장한다. 그녀들은 공통적으로 남성에 의해 상처를 받고 회복하지 못한다. 그 상처가 트라우마로 남아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자 한다. 이 작품의 제목은 큰 상징성을 지닌다. ‘내가 죽던 날은 남성에 의해 절망에 떨어졌던 순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포스터의 그리고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는 희망과 절망,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죽음이란 끔찍한 순간을 맞더라도 눈을 뜨면 내일이 시작하기에 그녀들은 살아야 한다. 이전처럼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더라도 삶은 지속되기에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세진이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설정은 이런 정신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세진이 죽었다는 추정만 있을 뿐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현수 역시 마찬가지다. 몸은 살아있기에 정신은 죽었지만 살아가야 한다.

 

여기서 강조되는 게 무지(無知)’. 현수는 남편의 불륜을 몰랐고, 세진은 아버지의 비리를 몰랐다. 순천댁은 배움이 부족했기에 모든 걸 혼자 안으려 했다. 그녀들은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세상은 그녀들의 마음을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현수의 친구 민정은 남편과의 재판에서 이겨야 한다며 그녀를 종용하지만, 정작 그 내면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바라보지 못한다.

 

세진을 관리하는 경찰 형준 역시 벼랑 끝에 몰린 세진의 마음을 몰라준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손을 내밀어 주면 잡고 싶은데, 그녀들에게 따뜻함은 다가오지 않는다. 이에 그녀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되는 존재가 되어주고자 한다. 이 지점은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거대한 사회담론보다는 개인이 처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 이를 이겨내는 큰 힘을 선사한다. 이 지점은 작품이 지닌 드라마의 위력을 극대화시킨다.

 

▲ '내가 죽던 날'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김혜수, 이정은 그리고 노정의

 

심리를 통한 고통의 표현과 연대를 통한 감정의 결합은 세 배우의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먼저 작품의 중심을 잡아주는 현수 역의 김혜수는 역시 김혜수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강인한 형사부터 고통 앞에 주저앉은 한 여성까지 다채로운 얼굴을 담아낸다. 현수의 캐릭터가 극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세진의 캐릭터가 잡히고, 순천댁도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든다.

 

이정은이 연기한 순천댁은 여성들의 연대를 강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순천댁을 통해 작품이 지닌 슬픔은 따뜻한 온기를 품게 된다. 말 대신 표정과 행동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순천댁은 초반에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고, 후반부에는 핵심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무표정한 순천댁의 얼굴은 어떤 표정이 나와도 큰 인상을 받을 만큼 흥미를 주며 극적인 재미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노정의는 미스터리한 소녀 세진을 연기하며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보여준다. 순천댁은 노년, 현수는 중년이라는 점에서 살아온 날들이 그림자처럼 어둡게 인상에 남아있다. 반면 세진은 살아갈 날이 더 많기에 희망을 강하게 상징한다. 세진의 미래와 희망은 현수에게 구원이 될 수 있다. 노정의는 심연 같은 어둠과 햇빛 같은 미소를 동시에 보여주며 두 베테랑 배우 사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 박지완 감독     ©최동민

 

기대할 이름, 박지완 감독

 

이번 작품을 통해 장편영화에 데뷔한 박지완 감독은 그 이름을 주목할 만큼 인상적인 성과를 보여줬다. 캐릭터 개개인의 감정선에 집중하며 드라마의 깊이를 잃지 않았다. 그러면서 여성서사가 지닌 저항과 연대의 의식을 더했다. 최근 트렌드인 주체적인 여성상 역시 함께 담아냈다는 점은 꽤나 인상적이다. 그러면서 표현이 유치하거나 장르적인 매력이 바닥을 향하지도 않는다. 완성도에 있어 탄탄하다.

 

개인적으로 테일러 핵드포 감독의 돌로레스 클레이븐이란 영화가 많이 떠올랐다. 이 작품은 두 건의 살인사건을 통해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당해야 했던 폭력과 억압을 연대와 치유로 이겨내는 힘을 보여준다. 범죄추리극의 형태를 통해 딸이 자신의 인생에서 어머니의 아픔을 발견하는 전개를 선보인다. 여성들 사이에는 동질의 역사와 공감의 감정이 있다. 딸은 어머니의 사건을 파헤치면서 그 역사와 감정을 느낀다.

 

내가 죽던 날역시 마찬가지다. 현수와 순천댁은 세진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본다. 남성에게 억압되고 당했던, 무지했다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당했던 순간을 말이다. 그리고 세진이 그때의 감정에 빠져있음을 알게 된다. 이 세 여자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왔고 다른 상황에 놓였지만 같은 역사와 감정을 지닌다. 감독은 이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고, 구성을 통해 쾌감을 선사하는 구성적인 매력도 갖췄다.

 

최근 여성서사 영화의 유행 속에서 자신만의 뚜렷한 정체성을 확보하고 선보인다. 여성서사의 섬세함을 갖추면서 장르적인 대중성과 남녀노소 가릴 거 없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더하는 건 덤이다. 좋은 이야기꾼의 면모를 선보인 만큼 차기작 역시 기대를 품게 만든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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