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상처 받은 영혼들이기에...'아무도 없는 곳'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지은 | 기사입력 2019/05/11 [15:24]

우리 모두가 상처 받은 영혼들이기에...'아무도 없는 곳'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지은 | 입력 : 2019/05/11 [15:24]

▲ <아무도 없는 곳> 네이버 포스터     ©이지은

 

태어나서 자라나고 삶을 살아가면서 우린 많은 것을 배우고 얻는다. 때론 지금 이 순간의 젊음, 사랑 그리고 성공이 영원할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삶이 상실감으로 가득한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나그네일 뿐이기에 불가피하게 상실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한 존재인 것이다. 태초부터 그렇게 설계된 것일지도 모른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얻는 것만큼 잃는 것이 많아지는 것은 슬프지만 자연스러운 순리이다. 하나 하나 잃고 상처 받아감에 따라 마음의 그늘도 커져 간다. 그리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까. 죽음과 허무함은 항상 그래왔듯이 두 손을 맞잡고 있다. 물론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삶 자체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그 여부를 고민하기보다는 의미 없는 삶일지라도 스스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갈 것인지 고민 하는 게 더 가치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는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슬픈 영화가 아니다. 상처 받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할 뿐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김종관 감독은 삶과 죽음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며 상실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고 평온하게 풀어낸다. 평범하지만 각자 다른 의미가 부여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상처 받은 모든 영혼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 <아무도 없는 곳> 네이버 스틸컷     ©이지은

 

 영국에서 돌아온 소설가 창석은 소설 출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몇 몇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어머니 미영, 후배이자 출판사 직원인 유진, 사진작가 성하 그리고 술집에서 만난 바텐더 주은까지 며칠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다채로운 인물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창석은 내적인 변화를 겪고 마지막에는 결국 스스로의 아픔과 마주하게 된다. 창석의 어머니 미영은 남편을 잃고 살아가는 홀어머니로 세월의 흐름에 따른 상실감을 느끼고 후배 유진은 떠나간 전 애인과 지운 아이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진 작가 성하는 병을 앓고 있는 아내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사고로 한 쪽 눈과 기억을 잃은 바텐더 주은은 손님들의 기억을 수집하며 시를 쓴다. 언뜻 보면 너무나 달라 보이는 이들은 각자 무언가 상실감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그 속에서 우리는 기억의 소멸과 같은 정신적인 죽음에서부터 육체적인 죽음까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죽음을 접하게 되는데 이렇게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 영화는 그렇게 슬프지도 뻔하지도 않다. 오히려 담담한데 매력적이다.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해 보이는 비교적 평범한 인물들은 영화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마치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 같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상처 받지 않은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 빠져든다.

 

▲ <아무도 없는 곳> 네이버 스틸컷     ©이지은

 

 그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 외에도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대화를 쌓아 올린듯한 독특한 연출법이다. <아무도 없는 곳>은 역동적인 액션이나 공간의 잦은 이동 없이 특정 공간에서 두 사람의 대화로 진행되지만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잦은 침묵이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관객들을 끌어 들이는 상당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인물들과의 대화를 병렬식 구조로 나열하며 오직 대화 만에 집중하는데 김종관 감독의 전작 <더 테이블>과 비슷한 연출법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더 테이블>은 두 사람의 대화를 엿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반면에 <아무도 없는 곳>은 관객들이 창석과 함께 다른 인물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며 여행하는 느낌을 주었다는 것. 그런 면에서 <더 테이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 <아무도 없는 곳> 네이버 스틸컷     ©이지은

 

 배우들의 연기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창석을 연기한 연우진 배우는 이 영화에서 정말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그는 주인공이지만 영화 속에서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연기, 즉 액션보다 리액션이 위주가 되는 연기를 보여주는데 상대방의 대사에 반응하는 세밀한 표정과 제스처가 돋보이는 깊은 연기를 선 보였다. 씨네 21 기자님은 이전 작품들에서는 카페 라떼처럼 달달하고 상큼한 느낌을 가진 배우였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진하게 잘 뽑아낸 에스프레소 같았다”며 그를 묘사했는데 매우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전 작품에서는 보지 못한 연우진 배우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던 그의 재발견이었다. 그 외에도 주변 인물들을 연기한 모든 배우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잘 표현해내는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특히 창석과 미영이 대화하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쓸쓸한 톤의 느린 대화로 차분한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그와 동시에 역동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두 배우간에 호흡이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창석과 유진이 해질녘에 담배를 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데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게 잘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창석의 후배 유진을 맡은 윤혜리 배우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연기를 할 때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담담한 말투의 결이 유진이라는 역할에 참 잘 어울렸다.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이루어진 캐스팅이었는데 감독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진 부분이었다.

 사실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흔히 영화로 많이 제작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주 감동을 준다. 그런데 때때로 이것저것 많이 차려 놓은 진수성찬보다 김에 잘 익은 김치를 곁들인 밥을 먹을 때의 소소한 행복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곳>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실감과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매력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마음 속에 저장해 두고 싶은 따뜻한 손난로 같은 영화였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곳>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등 다수의 단편과 <최악의 하루>(2016), <더 테이블>(2016) 등 장편 영화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의 신작이다. 올해 6번째로 진행된 장편 영화 제작 프로젝트, ‘전주시네마프로젝트 2019’ 중에 한 편으로 제작 되어 5 CGV 전주고사에서 상영되었다. <아무도 없는 곳>의 개봉 일정은 아직 미정이다. 김 감독은 일본 영화<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리메이크 작업을 앞두고 있다.

[씨네리와인드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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