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서 발견한 한 여성의 '희망'

[프리뷰] ‘호프’ / 11월 개봉 예정

김준모 | 기사승인 2020/11/12 [08:10]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서 발견한 한 여성의 '희망'

[프리뷰] ‘호프’ / 11월 개봉 예정

김준모 | 입력 : 2020/11/12 [08:10]

 

▲ '호프' 포스터  © (주)이놀미디어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최근 극장가에 유행하고 여성서사의 방향성은 미래를 향한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투쟁과 연대를 택한다. 개인의 심리와 주체성, 내면의 고통을 다룬 영화들도 이를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미래를 말한다. 이런 여성서사 영화의 흐름 속에서 <호프>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시한부 삶을 다룬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미래를 말하는 것이다. 무려 세 가지 방향성을 동시에 갖추고자 한다.

 

성공한 감독인 안야는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안야는 크리스마스 이후 이 사실을 알리자고 남편 토마스에게 제안한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 여섯 아이들까지, 안야는 정신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가족은 모두 안야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다투고, 남편은 가족끼리 보내고 싶은 자리에 손님을 초대한다. 막내아들은 상처가 되는 말을 내뱉어 안야를 울리기에 이른다.

 

▲ '호프' 스틸컷  © (주)이놀미디어

 

작품이 보여주는 안야의 현재는 감당하기 벅차다. 도입부에서 안야는 무대에 올린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며 박수갈채를 받는다. 이후 집에 돌아온 그녀는 여섯 아이를 돌보고, 사랑이 식은 남편과 한 침대에 눕는다. 이 도입부는 그녀에게 직장은 판타지이자 꿈이고 가정은 현실임을 보여준다. 성공한 영화감독의 가정은 그렇지 못하다. 일이 많은 토마스를 대신해 어린 두 동생을 돌보는 건 딸과 큰 아들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어리기에 안야는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만 한다. 여기에 아버지의 존재도 있다. 아버지는 안야가 죽음을 앞두고 가장 힘들어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자식에게 가장 큰 불효는 부모보다 먼저 가는 것이다. 아버지가 감당할 슬픔과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도 챙겨주지 못할 것이란 생각은 안야에게 살아야할 이유를 준다. 자신의 짐가방 조차 혼자 들기 힘들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안야를 자극한다.

 

▲ '호프' 스틸컷  © (주)이놀미디어

 

안야의 과거는 후회다. 치료를 위해 약을 먹는 안야는 속이 뒤집어지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녀는 자신의 지난날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안야는 자신의 삶이 토마스에 의해 통제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불륜 관계였고, 토마스는 안야를 위해 부인과 이혼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의 세 아이를 그녀의 아이처럼 생각해 달라고 말한다.

 

당시에는 부탁이라 여겼던 이 말이 현재의 안야에게는 강요처럼 다가온다. 안야는 자신이 토마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이만을 사랑한다고 상담치료 중 말한다. 다른 세 아이는 사랑한 적 없었다는 안야의 말은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생각할 때, 그 육체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하게 한다. 육체와 정신이 망가지다 보니 자신이 살아온 모든 세월이 불행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런 안야의 고통은 토마스의 말 하나, 행동 하나도 불쾌하게 느끼게 만든다. 꽃은 피어날 때는 아름답지만 지고 나면 추하다. 안야는 지난 추억을 꽃처럼 바라본다. 시든 잎을 보며 사랑의 시간이 행복만 있지 않았음을 인지한다. 안야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은 토마스는 그 모든 분노와 염증을 인내한다. 그에게는 아직 안야가 봄이 오면 다시 꽃을 피울 것이란 희망이 남아있다.

 

▲ '호프' 스틸컷  © (주)이놀미디어

 

안야의 미래는 희망이다. 토마스는 안야의 시한부 판정에도 희망을 찾고자 한다. 그는 계속해서 여러 의사와 전문가들을 찾으며 혹시 모를 희망을 발견하고자 한다. 안야 역시 희망을 찾는다. 그녀는 아픔을 통해 가족을 더 가까이 맞이한다. 고목 같이 흔들림 없는 토마스를 통해 마음의 안식처를, 아직 엄마를 놓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어린 세 자식을 통해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찾는다.

 

여기에 진심으로 안야를 도와주고자 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작품은 북유럽 특유의 정적인 표현을 통해 다소 느슨한 전개를 지니지만, 이 전개 속에서 펼쳐지는 안야의 심적 변화는 롤러코스터와 같다. 때로는 현재에 힘들어하고, 어떨 때는 과거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마침내는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자 한다. 슬픔과 분노, 우울이 있기에 행복과 기쁨도 함께 찾아온다.

 

호프는 삶의 마지막 순간 스친다는 주마등의 연장선을 그린 영화다. 살아오면서 느낀 모든 감정을 담아내면서 찬란한 순간을 연장하고자 하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노르웨이의 국민 여배우 안드레아 베인 호픽은 엄마이자 아내, 딸인 여성의 모습 속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며 강인한 여성상을 선보인다. 그 뒤를 받치는 스텔란 스카스가드의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한 여성의 일대기를 담담하게 담아낸 마리아 소달 감독의 연출 역시 눈여겨 볼 포인트라 할 수 있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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