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 속 이혼으로 결혼을 배우다

톨스토이의 철학으로 바라본 <결혼 이야기>

양재서 | 기사승인 2020/11/12 [13:48]

'결혼 이야기' 속 이혼으로 결혼을 배우다

톨스토이의 철학으로 바라본 <결혼 이야기>

양재서 | 입력 : 2020/11/12 [13:48]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

-톨스토이

 

[씨네리와인드|양재서 리뷰어] 기혼자들은 종종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자조 어린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혼 역시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결혼 이야기>는 그 이름과 달리, 한 부부의 현실적인 이혼 이야기를 보여준다. 니콜과 찰리, 그리고 수많은 보통의 부부들에게 결혼은 어느 순간 지독한 족쇄가 되어 있다. 그 족쇄는 차고 있어도 괴롭지만, 자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럼에도 영원을 약속한 수많은 부부들이 오늘도 이혼을 결심한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갈라서게 만드는 걸까? 니콜과 찰리는 왜 추잡한 진흙탕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 양재서

 

우리에겐 영화와 뮤지컬로 익숙한 작품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는 한 가정, 그리고 한 인간이 불륜으로 인해 몰락하는 과정을 그려낸 대작이다. <결혼 이야기><안나 카레리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 두 작품 속 두 커플들은 엇비슷한 문제를 마주한다. 바로 소통의 부재, 그리고 성장하지 않는 인간들이 유지하는 껍데기 같은 결혼생활이다. 톨스토이는 소통하지 않는 관계는 성장할 여지를 갖추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 관계 속에선 상대의 수많은 장점이 곧 단점이 되고, 하나의 불행이 곧 여러 불만을 낳는다.

 

▶소통의 단절은 곧 관계의 파멸이다

 

21세기를 사는 찰리와 니콜은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이 시대 보통의 부부였다. 이들에게는 사랑스러운 아들이, 극단이라는 공통의 직장이, 그리고 뉴욕을 기반으로 한 삶의 터전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찰리의 독단적인 성격에 지친 니콜은 찰리와의 이혼을 결심한다. 누구보다 화목했던 가정은 순식간에 무너지게 되고, 부부라는 껍데기만 남은 니콜과 찰리는 점점 멀어진다. 결국 부부는 진정한 대화 대신 헤어짐을 증명할 수많은 서류를 준비했고, 이를 도와줄 변호인을 고용했다. 이로써 대화를 할 필요도, 창구도 없어져 버리고 만다.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 양재서

 

 "형사 변호사들은 악당의 최선을 보고, 이혼 변호사는 선한 사람의 최악을 보죠

 

변호사들은 앞다투어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재산권과 양육권 등, 비인격적인 권리들을 사수하기 시작한다. 그 방법은 상대의 가장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서로의 치부가 드러날수록 대화의 기회는 사라졌고 오해는 더 큰 오해를 낳았다. 성실한 변호사들은 니콜과 찰리를 세상에서 둘도 없는 나쁜 아내와 남편으로 만들어버린다.

 

우리는 관객의 입장에서 둘의 관계를 조망하며 답답해한다. 그들에겐 눈덩이같이 불어나는 소송을 막을 기회들이 몇 번이나 주어졌다. 그러나 니콜과 찰리는 이미 오랜 시간 진정한 소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현실의 많은 부부들 또한 소통의 기회를 놓친 채 승자 없는 싸움”의 길을 택한다.

 

▶성장하지 않는 인간과 발전하지 않는 관계

 

▲ 사진출처: 월간중앙  © 양재서

 

톨스토이는 세상과의 교감이 곧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열쇠라고 생각했다. 외부 세상, 그리고 타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자만이 성장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부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니콜이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항상 진심을 회피한 채 찰리를 따랐기 때문이다. 찰리 역시 니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소통이 사라진 그들의 관계는 발전할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지난날을 버텨왔던 건 부부라는 사회적 제도가 그들을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니콜과 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알아가지 않았고, 이혼 소송이라는 진흙탕에 같이 빠지고 만다.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 양재서

 

<안나 카레리나>에서도 소통하지 않는 커플이 등장한다. 바로 불륜으로 이어진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다. 140년 전의 안나는 니콜과 마찬가지로 독단적인 남편 카레닌에게 질려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브론스키라는 젊고 유망한 군인과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사랑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기에 성장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집착하며 둘 사이에는 균열이 생기게 된다. 결국 안나는 카레닌과의 결혼생활에서도, 브론스키와의 사랑에서도 소통과 발전이 없는 사랑을 하며 파국을 맞는다.

 

▶그럼에도, 결혼이 가르쳐 주는 것

 

그러나 니콜과 찰리는 헤어짐을 통해 오히려 성장의 기회를 마주한다. 찰리와 니콜은 모든 치부를 다 드러낸 뒤에서야 뒤늦게 대화를 시도한다. 깊어진 마음의 상처로 대화는 곧 싸움으로 번지고 만다. 둘은 서로에게 욕을 하고 벽을 부수고 악담을 퍼붓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서로의 진심을 처음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니콜에게 저주를 퍼붓던 찰리는 곧 무릎을 꿇고 엉엉 울며 사과한다. 니콜 역시 찰리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다. 한 번 엎어진 관계는 되돌릴 수 없었지만 진정한 밑바닥을 마주하며 그들은 성장의 기회를 얻게 된다.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 양재서

 

결혼과 이혼은 그 자체로서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닌, 하나의 사회적 제도다. 그 제도의 본질은 인간을 한층 성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우리는 죽을 때까지 외부와 소통하며 성장해야만 한다. 따라서 부부가 된다는 것은 서로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도와주는 동반자가 생긴다는 것이다. 니콜과 찰리는 결혼을 통해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 비록 그 성장은 헤어짐을 겪으며 이루어졌지만, 소통의 중요성을 배웠고 진정한 관계를 깨달았다. 그들은 단지 서류 위 도장을 찍고 끝내는 이별이 아닌,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이별을 경험했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 이야기>는 서로의 성장을 도와준 진정한 결혼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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