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감정보다 우리 가까이 있는 ‘디스거스트(까칠이)’

<인사이드 아웃> 디스거스트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

한솔지 | 기사승인 2020/11/20 [13:20]

그 어떤 감정보다 우리 가까이 있는 ‘디스거스트(까칠이)’

<인사이드 아웃> 디스거스트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

한솔지 | 입력 : 2020/11/20 [13:20]

[씨네리와인드|한솔지 리뷰어] '인사이드 아웃'은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보다 어른들의 마음을 저격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인사이드 아웃'의 대단한 상상력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만이 <인사이드 아웃>의 성공 요인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어른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부분은 단연 그들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일 것이다.

 

▲ 영화 '인사이드 아웃'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열한 살의 여자아이 라일리의 머릿속에는 다섯 가지의 감정인 기쁨이(조이), 슬픔이(새드니스), 버럭이(앵거), 소심이(피어), 까칠이(디스거스트)가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쁨이는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슬픔이를 통제하는 등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지만, 슬픔이의 방해로 인해 둘은 감정 컨트롤 타워 밖으로 낙오되며 상황은 더 악화된다. 기쁨이와 슬픔이가 감정 컨트롤 타워로 다시 되돌아가고자 하는 과정에서 기쁨이는 결국 슬픔이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그걸 인정하는 순간 라일리의 감정들은 더욱 다채로워지며 성숙해진다.

 

즉, <인사이드 아웃>은 기쁨의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슬픔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 줌으로써 그들을 위로한다. 피트 닥터 감독은 “슬픔은 표현하면 서로 돕고 배려하게 되는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는 감정”이라고 언급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기쁨 자체에 의미 있는 것이 아닌, 기쁨과 슬픔이 동행할 때, 다양한 감정들이 서로 공존할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이렇듯 관객들이 주목한 감정은 단연 기쁨이와 슬픔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주목할 캐릭터는 까칠이다. 까칠이는 기쁨이와 슬픔이보다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나는 지금의 현대사회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감정은 바로 까칠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까칠이의 캐릭터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까칠이’라는 번역된 이름보다는 본래 이름인 ‘디스거스트(disgust)’라고 칭하려고 한다.

 

한국 명칭인 ‘까칠’과 다르게 ‘디스거스트’의 뜻은 ‘역겨움’이다. 디스거스트 캐릭터를 키워드로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까칠, 예민, 경멸, 까다로움이다. 기쁨이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디스거스트는 육체적 사회적으로 병드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이며, 라일리의 선호나 취향에 가장 깊게 관여한다. 어떤 때는 매우 독선적이기도 하지만, 라일리가 신체적으로 해를 입거나, 사회적으로 독이 되는 행동은 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캐릭터성은 디스거스트의 외형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왠지 채소를 떠오르게 하는 초록색에, 높이 솟아오른 눈매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감정들보다 화려한 원피스와 스카프를 걸친 것을 보아 하니, 패션 등의 외적인 이미지에 대해 신경을 쓰는 듯하다. 실제로 <인사이드 아웃>의 제작진은 “까칠의 기원은 쓴 맛이다. 만약 아기에게 쓴 음식을 먹인다면, 얼굴을 찡그리며 혀를 내밀어 음식을 뱉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디스거스트의 경멸심(역겨움)과 까다로움(예민)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 준다고 생각했다.

 

 

1) 디스거스트의 경멸심은 혐오의 원동력

 

디스거스트는 쉽게 말해서 ‘독설가’다. 이러한 성격은 기쁨이와 슬픔이를 감정 컨트롤 타워에 들여보내기 위해 버럭이를 도발하는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는 버럭이에게 “잘~한다.”라며 비꼬기도 하고, 버럭이가 넌 어떻게 할 거냐며 묻자, “말해 줄게. 그렇지만 넌 멍청해서 알려 줘도 못해.”라고 대답하며 “콩알만한 뇌로는 헷갈리겠지. 어쩔 수 없으니까 내가 네 수준으로 내려가 줄게. 바보라 말은 안 통하겠지만, 해 볼게!”라는 등 아무렇지 않게 독설을 내뱉는다. 이러한 디스거스트의 모습을 보면 어쩐지 현대인들의 어떤 한 면모가 떠오르는데, 바로 ‘혐오’이다.

 

실제로 영어의 헤이트(hate), 포비아(pgobia)라는 단어처럼, 디스거스트(disgust) 또한 한국어로 번역하면, ‘혐오’이다. 즉,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 등에 붙는 포비아와 같이 타자에 대한 역겨움을 뜻하는 디스거스트도 혐오의 이름으로 번역된다는 것이다.

 

경쟁에 기초하는 현대사회는 가히 혐오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시대는 혐오의 홍수 속에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주변의 각종 SNS와 언론 기사의 댓글, 방송사의 코미디나 토크쇼 등 어딜 보나 혐오적 표현이 만연하다. 온라인에서는 익명이라는 도구 뒤에 숨어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서슴없이 퍼붓고, 결국 이 때문에 언론 기사의 댓글이 폐지되기까지 했다. 이러한 혐오는 단순히 누군가를 비난하고 배척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닌, 정치적으로 이용되기까지 한다. 사람들에게 절망과 슬픔, 우울을 전복할 도구로써 ‘혐오’를 쥐어준다는 것인데, 이 ‘혐오’의 힘은 다양한 부정적 감정을 경멸심으로 바꾸어 자신보다 약한 약자를 미워하고 괴롭힘으로써 스스로에게 승리감과 우월감으로 치환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인사이드 아웃>의 디스거스트 속에 있는 경멸과 혐오, 공격성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현대인들의 혐오 그 중심에 있는 감정은 디스거스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즉, 익명성이 보장된 곳들에서 누군가에게 쉽게 혐오적 표현을 쓰는 사람, 사람들의 불안함과 절망을 이용해서 혐오를 만드는 사람, 그런 사회 속에서 혐오를 즐기는 사람들, 이 모두의 주된 감정은 ‘디스거스트’의 경멸심에서 비롯된다.

 

이때, 디스거스트 속 경멸감과 혐오감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형성된’ 감정이라는 것이다. 즉, 경멸감은 사회적 틀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도되고 교육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희망을 발견한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우리도 모르게 혐오의 늪에 빠져 있더라도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가 디스거스트를 잘 조정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기꺼이 빠져나올 수 있다는 뜻으로 역설된다.

 

▲ 영화 '인사이드 아웃' 캐릭터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2) 까칠하고 예민한 디스거스트의 재발견

 

디스거스트는 앞서 언급한 경멸감을 조장하는 감정이지만, 사실 일상적으로 더 극대화되는 모습은 까칠함과 예민함이다. 그렇기에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경멸감보다는 까칠하고 예민한 모습이 더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라일리가 무언가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하고 판단할 때 대체로 디스거스트의 모습을 보여 준다. 특히 먹는 것들에 대한 호불호나 새로 이사온 집을 보고 이것저것 평가할 때 두드러져 보인다. 디스거스트의 이러한 면모가 주감정인 사람들은 대체로 왜 이렇게 예민하냐, 왜 저러냐, 라는 말 등을 들으며 부정적으로 평가되어 왔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가 전세계를 덮치고 펜데믹 시대에 들어선 지금, 이제까지의 디스거스트는 잊어라. 디스거스트의 경멸감은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온 감정이라면, 디스거스트가 느끼는 거부감과 예민함에서 비롯되는 회피기제는 굉장히 본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디스거스트의 본능은 펜데믹 시대에 빛을 발한다.

 

펜데믹 시대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낯선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고 모두 신체접촉을 최소화해야 했다. 최대한 사람들이 몰린 곳은 피하고, 말을 할 때에는 거리를 유지하며, 불필요한 신체 접촉은 금지, 항상 손을 깨끗이 씻기, 손소독제를 챙겨 다니기.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관습을 체화시켜야 했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자. 이러한 행동은 우리가 평소에 ‘예민하고 까다로우며 유난이라고 평가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지만 펜데믹 시대가 습격한 지금은 어떤가. 디스거스트의 예민함은 오히려 현대 사회에 적합한 삶의 방식이 되었다.

 

실제로 <인사이드 아웃>에서의 디스거스트는 아주 똑똑하고, 위급 상황에서는 오히려 해답을 주는 캐릭터성이 자주 부각된다. 기쁨이와 슬픔이가 감정 컨트롤 타워 밖으로 나가고 난 뒤, 버럭이와 소심이는 새로 마주한 상황에 갈피를 못 잡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려고 한다. 하지만 디스거스트는 그들을 말리면서 “밝은 기분을 유지해야 해. 너희 또 섬을 잃고 싶니? ”라며 그들을 말린다. 또한 버럭이가 라일리의 가출을 조장했을 때, 디스거스트는 “근데 미네소타까지는 어떻게 가지?”, “차표 살 돈은 어디서 구해?” 등의 현실적 질문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디스거스트의 능력이 극대화되는 부분은 기쁨이와 슬픔이를 감정 컨트롤 타워에 들여보내기 위해서 버럭이를 도발하여 불을 뿜게 만든 다음, 그것을 이용해서 유리창을 녹이는 장면이다. 디스거스트의 지혜로움은 기쁨이와 슬픔이를 다시 컨트롤 타워로 들어오게 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운다. 이는 기쁨이가 말했던 것처럼 디스거스트는 역겨움을 잘 느끼고 까칠하지만 육체적, 사회적으로 병드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말을 증명한다.

 

이외에도, 개인의 개성이 중요해진 현대 사회에서의 디스거스트는 아주 탁월한 감정이다. 디스거스트는 자신의 선호나 취향에 가장 깊게 관여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호불호가 강한 사람들은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지만, 이제는 말이 다르다. 까다로워야 자신을 잘 파악할 수 있고, 자신을 잘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관리하고 연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동안의 디스거스트는 까다롭고, 예민하고, 비사교적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평가되어 왔지만, 현대사회에서의 디스거스트의 힘을 생각했을 때, 그의 까다로움과 예민함을 이제는 민감하고 섬세하다는 표현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인사이드 아웃>이 주는 메시지처럼, 우리는 기쁨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기쁨이와 슬픔이가 동행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공포를 느끼고 분노를 느끼고 때로는 예민해지는 이 모든 인간의 감정들은 무엇 하나 결코 쓸모없는 것이 없다. 오히려 우리가 한층 더 성장하고 내가 더욱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소중한 감정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얄밉기도 하고 유난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솔직하고 섬세한 디스거스트도 한 번씩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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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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