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귀순 용사 오청성을 통해 '무산일기'를 다시 보다

영화 '무산일기' / 2011년 개봉

강준혁 | 기사입력 2019/05/15 [09:57]

판문점 귀순 용사 오청성을 통해 '무산일기'를 다시 보다

영화 '무산일기' / 2011년 개봉

강준혁 | 입력 : 2019/05/15 [09:57]

 

▲ 영화 '무산일기' 포스터.     © Daum 영화

 

“여기 계시는 분들도 알겠지만 정착금으로 400만원에다, 분기마다 100만원 씩 해서 임대보증금으로 그게 전부거든요. (…) 건설현장, 그런데 가서 일을 했는데, 이렇게 두꺼운 쇠파이프를 매고 막 지하로 내려가 설치를 해제하고 했는데 이제 (…) 받은 것도 없고.”

 

지난 12일 ‘판문점 귀순 용사’ 오청성(25) 씨가 국내 방송 최초로 TV CHOSUN ‘모란봉 채널’에 출연했다. 오청성 씨는 당시 북한군이 쏜 40여발의 총탄 중 무려 5발의 총상을 입었지만 우리 군에 의해 성공적으로 구출된 이후 이국종 교수가 이끈 국내 의료진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였다. 그는 프로그램을 통해 당시의 귀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함과 동시에 한국 정부와 이국종 교수 등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도 하였다. 주목할 지점은 그 다음이다. 오청성 씨가 밝힌 자신의 근황은 꽤 충격적인데, 귀순 이후 정착금으로 700만 원 가량을 받았지만 그뿐이었고, 이후 노가다(막노동)을 통해 자신의 생계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국정원으로부터 1억 상당의 금액을 지원받았다’, ‘외제차를 구입하여 시내를 돌아다녔다’ 등의 말을 모두 부정한다. 본인이 한국 정부로부터 목숨을 구원받은 것은 맞지만, 그 이외의 특별한 지원을 받은 것은 일체 없다는 것이다.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세 번째 인물로써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였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오청성 씨는 다른 북한 이탈 주민과 마찬가지로 남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비단 오청성 씨에만 한정된 이야기일까. 오히려 이름과 상황이 조금이나마 알려진 케이스이기에 오청성 씨는 북한 이탈 주민 중 대접이 나쁘지 않은 축에 속한다고 한다. 그런 그임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공사 현장을 전전하였다는 사실은 이들 북한 이탈 주민의 안타까운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과 같다. 작년 기준으로 북한 이탈 주민은 3만 1천 여 명에 이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들이 받는 처우에 대해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오히려, 오청성 씨의 고발과 같이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그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았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북한 이탈 주민은 새로운 환경과 미래를 갈망하여 온갖 고생을 겪은 끝에 한국에 도달하였겠지만, 지극히 운이 좋은 케이스가 아니라면 이들이 맞이하는 운명은 대개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일 뿐이다.

 

▲ '판문점 귀순 용사' 오청성 씨.     © TV CHOSUN 공식 유튜브 채널

 

물론, 미디어를 통해 이들의 불안정한 삶을 취재하고 조명하기 위한 시도는 2000년대 중반 이래 계속해서 이루어져왔다. 북한 이탈 주민의 상황을 다룬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TV 프로그램 뿐 만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이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어왔다. 김동현 감독의 ‘처음 만난 사람들(2007)’은 이주 노동자와 같은 처지에 놓인 북한 이탈 주민들의 정체성 혼란을 그려냈고, 김태균 감독의 ‘크로싱(2008)’은 상업 영화로는 드물게 탈북 이후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심리 상태를 포착해냈다. 권순도 감독의 ‘약혼(2012)’은 탈북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한국에 도착한 이후 과거를 감추고 살아야만 하는 슬픈 현실에 주목했으며, 최근에는 박영철 감독의 ‘방문자(2019)’가 생존의 위기를 느끼는 탈북자의 정체성에 대해 잘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작품들 중에서도, 북한 이탈 주민의 처절한 현실과 비참한 삶을 노골적으로 다룬 영화로써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2011)’를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본 작품은 함경북도 무산(茂山)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한국에 발을 내딛은 ‘승철’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북한 이탈 주민들의 힘겹고 가슴 아픈 적응기를 투박하게 그려낸다. 고작 “5000냥 받겠다고 목숨을 거는” 서슬 퍼런 자본주의의 세계에 아무 준비 없이 내던져진 승철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다니며 “잘할 수 있습니다”란 말로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그런 우직한 승철에게 자신의 감정은 사치와도 같다. 성가대원 ‘숙영’을 좋아하면서도 말도 제대로 걸지 못하고, 동포를 등쳐먹으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친구 ‘경철’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고 조용히 분을 삭일 뿐이다. 물론 그가 마냥 예스만을 외치는 바보인 것은 아니다. 도덕적이지 못한 상황에 마주쳤을 때, 그는 죄책감을 마주하고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라고 따지며 부조리한 세상에 저항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을 지탱하던 그 도덕심에 한계를 느낀 승철은 결국 사랑의 감정을 거두며, 상대를 짓밟고, 친구를 배신하는데 까지 이르며 마침내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는 데’ 성공한다. 영화의 엔딩에서 승철이 동병상련을 느끼며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았던 강아지 ‘백구’가 사고로 죽임을 당했음에도 그를 모른 척 그냥 지나쳐 버리는 충격적인 모습은 완전히 비도덕적인 존재로 변모한 승철을 그대로 보여주는 서글픈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백구의 죽음은 곧 우직하고 성실했던 청년인 승철의 죽음과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영화 '무산일기' 스틸컷.     © Daum 영화

 

이렇듯 영화 ‘무산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극도로 건조하고 냉담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승철이라는 인간이 어떻게 악화(惡化)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며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던 나약한 소시민이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에게 복수를 선사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스토리는 보통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무산일기’는 비참한 탈북 주민들의 모습과 싸늘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며,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한 심상을 선사할 뿐이다. 그와 결을 같이 하여 영화 내내 이루어지는 거친 카메라 워크와 독립영화 특유의 정돈되지 않은 편집은 오히려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한 몫을 한다. 이 투박하고 흐트러진 모습이야말로 승철을 비롯한 탈북자들이 마주하는 한국의 현실이다. 고된 일에 부려먹히고, 가난에 허덕이고, 사기를 치고 당하는 일을 반복하며 머리가 빙빙 돌 정도로 '어지럽게' 살아가는 현실 말이다.

 

그런 현기증 나는 상태이기에, "서로 사랑하라서로 섬기라그리고 배신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도탈북 주민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눈을 꼭 감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은 현실으로부터의 도피를 의미한다. 그것은 탈북자들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종교를 통해 타인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모습은 우리를 비롯한 일반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영화 ‘무산일기’는 그 감았던 눈을 잠시 뜨고, 그 외면하고 싶은 부조리한 현실의 복잡한 문제 중에서도 가장 논의되지 못하는 이들을 제발 한 번이라도 주목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자유를 찾아 한국에 건너왔으면서도 주민등록번호 ‘125’라는 낙인 아래 사회 경제적으로 어느 하나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 그래서 억압받고 무시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탈북자들의 현실을 말이다. 영화가 굳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은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한 장면을 넣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한 번 감았던 눈을 다시 뜨기는 매우 힘들다. ‘무산일기’가 개봉한 지 어느새 8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북한 이탈 주민들을 대하는 자세는 매우 어색하다. 이 시간 동안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오청성 씨의 사례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래도 이 글을 통하여, 그리고 ‘무산일기’를 한 번 더 찾아보는 것을 통하여 북한 이탈 주민들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편견을 줄이게 되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북한 이탈 주민들은 한국에 희망을 가지고 발을 내딛었다. 분명 우리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그렇게까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도움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무관심으로 일관하여 그들의 희망마저 뺏어버리는 행위를 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씨네리와인드 강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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