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없이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까

영화로 배우는 감정수업 / 호프(Hope, 2019)

김준모 | 기사승인 2020/12/23 [09:39]

절망 없이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까

영화로 배우는 감정수업 / 호프(Hope, 2019)

김준모 | 입력 : 2020/12/23 [09:39]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이 지닌 역설을 말한다. 이 작품은 라일라라는 소녀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를 보여준다. 이 본부에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의 다섯 감정이 함께 어울러 있다. 우연한 사건으로 기쁨과 슬픔이 기지를 이탈하면서 라일라의 감정에는 큰 변화가 온다. 이에 기쁨과 슬픔은 라일라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엄청난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 머릿속 세계에서 본부까지의 험난한 길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기쁨이는 과거의 기억들과 마주하며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라일라의 성장 속에는 항상 슬픔이가 있었다. 기쁨의 순간이 있기 위해서는 슬픔이 필요하다. 슬픔 없이는 기쁨도, 환희도, 성장도 없다. 감정은 역설적이다.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슬픔을 꼭 경험해야 한다. 이는 희망도 마찬가지다. 고통과 절망 없이는 희망을 말할 수 없다. 제목부터 희망을 말하는 <호프>는 이런 역설 속에서 한 여인의 삶을 조명한다.

 

▲ '호프' 스틸컷     ©(주)이놀미디어

 

여성의 삶에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아이에 대한 사랑, 그리고 부모에 대한 사랑까지. 여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따뜻함이다. 안야는 사실혼 관계의 토마스와 여섯 자식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녀는 절망에 빠진다. 이 절망 속에서도 안야가 먼저 신경 쓰는 건 아이들과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 자신 때문에 파티를 망칠 수 없다 생각한 안야는 토마스에게 이 사실을 숨기라고 한다.

 

고통을 감내하는 만큼 기분 좋은 파티가 되면 좋겠건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눈치 없는 토마스는 다른 친구를 파티에 소개하려 하고, 이를 안야가 막자 막내아들은 못된 소리를 엄마한테 내뱉는다. 자신의 짐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병약한 아버지가 누워있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 안야에게는 어떻게든 살아야할 이유가 넘친다. 아버지는 쇠약하고 아이들은 어리다. 그래서 힘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안야와 토마스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한다. 희망을 찾으러 하면 할수록 절망의 어둠은 커진다. 해가 높게 떠오를수록 그림자가 길어지는 거처럼. 종교를 믿는 사람은 마음이 더 평온할 거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종교를 강하게 믿는다는 건 신에게 그만큼 바라는 게 크다는 소리다. 희망이 강할수록 그 반작용인 절망도 늘어난다. 토마스는 계속해서 안야가 희망을 품길 바라지만, 약으로 인해 잠을 설치는 안야의 신경은 날카로워진다.

 

▲ '호프' 스틸컷  © (주)이놀미디어

 

잠이 줄어들면 그 시간을 채우는 건 기억의 여행이다. 안야는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의 삶에서 후회되는 순간들을 접한다. 안야는 토마스와의 사이에서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다른 세 아이는 토마스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다. 토마스는 여느 재혼부부처럼 다른 세 아이도 똑같이 사랑해 달라고 안야에게 부탁했다. 안야는 이때의 부탁을 강요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만을 사랑했다고 상담사에게 울면서 고백한다.

 

이런 감정은 토마스와의 시간 속 헌신했던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한다. 안야는 자신과 살면서 한 번이라도 외도한 적이 없느냐고 토마스에게 묻는다. 그 질문은 남편의 과거를 용서하기 위함이 아니다. 토마스와 안야의 시간은 행복했다.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행복의 이면에는 항상 슬픔이 있다. 우리가 친구들과 재미있게 논 이후에 , 오늘 노느냐고 즐겁긴 했는데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처럼 감정은 언제나 양면을 지닌다.

 

안야가 토마스가 사실혼 관계에 아이가 여섯이라는 설정은 이런 양면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정이다. 두 사람은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결혼에 골인했다. 이는 돌이켜 볼 때 이런 고통을 인내하면서까지 의미가 있는 사랑이었나 하는 의문을 지니게 만든다. 현실이 힘들어질 때면 자신의 모든 선택이 후회로 보인다. 안야는 여성이자 엄마이기에 사랑으로 품어야 했던 순간들의 따뜻함을 고통 속에 잃게 된다.

 

그래서 토마스가 결혼식을 제안했을 때, 안야는 화를 낸다. 그가 주고자 하는 기쁨이 가식으로 다가온다. 오랜 시간을 함께 살면서 청혼할 기회가 많았음에도 토마스는 그러지 않았다. 입으로 희망을 말하는 토마스가 사실은 그녀가 죽을 것이라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마지막 선물을 준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안야를 괴롭게 만든다. 희망을 말하면 말할수록 절망이 싹을 피운다.

 

▲ '호프' 스틸컷  © (주)이놀미디어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감정은 단편적이지 않다. 고통으로 인한 갈등이 화합을 통해 봉합되는 구성보다는 계속 희망과 절망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갈등이 이어진다. 슬픔이 사라진다고 기쁨만 남는 게 아니다. 기쁨이 계속되면 뭐가 기쁜 것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없다. 슬픔이 있어야 기쁨의 환희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희망도 그렇다. 단편적으로 고통을 이겨낸 후 희망이 다가오는 단계를 다루지 않는다.

 

이런 역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토마스의 오열 장면이다. 노르웨이의 소문난 의사와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항상 안야에게 희망만을 말했던 토마스는 안야를 차에 두고 내린 뒤 눈물을 흘린다. 희망을 찾을수록 커지는 절망을 아내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다. 이 장면에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토마스를 비춘다는 점은 빛의 밝기만큼 길어진 그림자를 통해 절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때문에 희망을 유지하기 위해 절망으로 인한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 갈등이 사라지는 순간 진한 여운을 남기는 희망은 느낄 수 없다. 살다 보면 절망적인 시기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희망을 간절히 바란다. 왜 희망을 부르는데 절망이 더 커질까 하고 아파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 아픔이 커질수록 희망은 더 커질 것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고통도 알지 못한다.

 

민들레 홀씨는 부드러운 흙 위에만 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거칠 아스팔트에 위치하기도 한다. 아스팔트 아래에서 피어난 민들레는 그 고통의 크기만큼 커다란 희망을 준다. 희망을 바란다면 절망에 주저하지 마라. 길어진 그림자가 자신을 집어삼킬 걸 두려워하기 보다는 찬란하게 빛나는 현재의 모습에 주목해라. 절망이 깊다는 건 그만큼 다가올 희망 역시 크다는 걸 의미한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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