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길리엄의 여전한 상상력이 지닌 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프리뷰] 영화로 표현된 '맨 오브 라만차' / 5월 23일 개봉예정

김준모 | 기사입력 2019/05/21 [13:02]

테리 길리엄의 여전한 상상력이 지닌 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프리뷰] 영화로 표현된 '맨 오브 라만차' / 5월 23일 개봉예정

김준모 | 입력 : 2019/05/21 [13:02]

▲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테리 길리엄 감독은 1980~90년대 독특한 발상과 상상력으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주었던 인물이다. <브라질> <바론의 대모험> <피셔킹> < 12몽키즈 > 등 그의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쉬운 작품들을 선보였으나 특유의 상상력만큼은 잃지 않았던 1940년생 노감독은 2018년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통해 다시 한 번 관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제71회 칸영화제 초청을 받은 이 작품은 고전 '돈키호테'를 독특하게 풀어낸 데다 문화예술 산업이 지닌 초상을 가슴 아프게 풍자해 특히 돋보인다. 

   

10년 만에 다시 찾아간 스페인의 작은 마을 

▲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보드카 광고 촬영'을 위해 스페인의 작은 마을로 오게 된 잘 나가는 CF 감독 토비(아담 드라이버)는 제작사의 까다로운 요구 때문에 촬영에 고난을 겪는다. 그는 집시가 파는 물건에서 자신의 졸업 작품이자 출세작인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발견하게 된다.

 

학부 시절 토비와 친구들은 졸업 작품을 찍기 위해 스페인의 작은 마을을 찾았다.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마을 주민들을 배우로 캐스팅한 그는 구둣방 주인 하비에르(조나단 프라이스)를 돈키호테로 캐스팅한다.

 

열정과 에너지가 넘쳤던 그 시절을 추억하던 토비는 과거의 추억을 되살릴 겸 당시 촬영 장소를 찾아간다. 10년의 세월이 지난 마을은 그가 모르는 사이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당시 산초 역의 배우는 알코올중독으로 사망하고 그와 사랑을 나누던 둘시네아 역의 안젤리카는 토비가 심어준 헛바람 때문에 마드리드로 가 창녀가 되었다는 것. 토비의 영화 촬영은 마을 사람들의 운명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토비는 하비에르를 다시 만나게 된다. 돈키호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갑옷을 입고 기사도가 담긴 대사를 읊조리는 하비에르는 토비를 산초라고 부르며 함께 모험을 떠날 것을 강요한다.

 

17세기 돈키호테 하비에르와 21세기 산초 토비의 만남을 다룬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흥미로운 테리 길리엄의 상상력과 자신이 속한 엔터 사업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이 담겨 있다.

 

그는 돈키호테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현대와 17세기의 배경적인 조합을 시도한다. 토비가 마을을 벗어나면서 공간적인 배경은 자연스럽게 17세기의 분위기를 풍긴다. 말과 갑옷, 스페인 전통 복장을 입은 두 사람의 여정은 현대와 중세가 결합된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이 영화가 말하는 '엔터 산업'의 문제점

▲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스틸컷.     ©(주)디스테이션

 

캐릭터의 조합 역시 인상적이다. 테리 길리엄 특유의 유머감각이 묻어나는 이 두 캐릭터는 각자의 시선에서 서로를 독특하게 바라본다. 토비는 아직도 돈키호테 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하비에르를 미치광이 보듯 바라보고, 돈키호테가 되어버린 하비에르는 유식한 척하는 산초 토비를 요상하게 여긴다.

 

이 두 사람이 선보이는 불협화음은 예상치 못한 웃음을 유발해낸다. 하지만 그런 웃음만이 전부는 아니다. 감독은 두 사람의 캐릭터를 통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하비에르는 17세기에 머무르는 미치광이지만 그는 기사도를 알고 숙녀에게 예를 갖추며 의리와 정의로운 마음을 지니고 있다. 반면 21세기의 산초 토비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쥔 천재 감독이지만 출세의 야욕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남을 이용하는 등 배려가 부족한 인물이다. 그는 상사의 아내와 불륜 관계를 맺는가 하면 자신의 실수로 불이 난 마을을 뒤로 하고 도망치기도 한다.

 

감독은 이 두 캐릭터를 통해 과연 무엇이 올바른 가치인가에 대한 진중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질문은 그가 오랜 시간 몸 담아 온 엔터 산업과도 연결된다. 

  

작품 속 토비는 제작자의 요구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제작자들은 자신들의 욕구와 잇속을 챙기기 위해 엔터 사업을 이용한다. 그들은 자본을 이유로 감독을 압박하고 감독은 그 압박 때문에 스태프들을 쪼아댄다. 이런 강압적인 요구와 수직적인 체계가 순수한 예술의 영역에도 있음을 테리 길리엄은 토비를 통해 말한다. 10년 전 토비는 하비에르에게 돈키호테 캐릭터에 몰입할 것을 강요한다. 이 강요는 하비에르를 미치게 만들었고 그가 남은 여생을 돈키호테로 살아가게끔 만들었다. 

 

▲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감독과 관객들은 배우에게 역할에 대한 높은 몰입을 요구하지만 그 이후 그들이 겪는 심적 고통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토비는 자신의 예술적인 욕구를 위해 하비에르에게는 역할에 대한 몰입을 강요하고 안젤리카에게는 헛된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는 무책임하게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는 사람을 소모품처럼 여기고 열정을 강요하는, 그 열정으로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는 엔터 사업에 속한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보내는 길리엄 감독의 경고라 볼 수 있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원작이 지닌 특별함과 정신을 현대와 결합시킨 영화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테리 길리엄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이 17세기와 21세기를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건 물론 예측하지 못한 전개로 재미를 준다. 모험과 코미디, 로맨스와 시대극의 느낌, 여기에 시대와 현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결합된 이 영화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짜릿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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