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인 만남, 필연적인 사랑

리뷰|영화 '이터널 선샤인(2004)'

정다원 | 기사승인 2021/01/11 [10:00]

운명적인 만남, 필연적인 사랑

리뷰|영화 '이터널 선샤인(2004)'

정다원 | 입력 : 2021/01/11 [10:00]

 

▲ 영화 '이터널 선샤인' 스틸컷     ©노바미디어

 

[씨네리와인드|정다원 리뷰어] ‘망각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자기 실수조차 있기 때문이라’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전의 출발을 아예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전에 저질렀던 실수, 남겼던 오점 역시 깔끔히 지울 수 있으니, 가장 편한 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새롭게 시작한 그 길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전의 나는 지웠으니 새로운 내가 되었고, 이전에 내가 사랑했던 이를 지웠으니 새로운 나는 다시 그이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사랑했던 누군가를 지워주는 곳, 라쿠나는 늘 사람들이 가득하다. 특히 밸런타인데이 시즌에는 예약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주인공 조엘 역시 라쿠나를 찾아간다. 사랑했던 연인, 클레멘타인이 자신과의 기억을 이곳에서 삭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도 지워주기를 부탁한다. 그렇게 영화는 조엘의 기억 지도를 역추적하면서 진행된다. 가장 처음 삭제되는 기억, 즉 가장 최근의 현실은 최악 그 자체이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툭하면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로 싸우고, 언성을 높이고, 눈길을 피한다. 그리고 악몽이 시작된다. 기억이 삭제되면서 주위가 무너지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얼굴이 뭉그러진다. 기억의 지도 속 조엘은 무언가 점점 잘못되어간다는 것을 느낀다.

 

▲ 영화 '이터널 선샤인' 스틸컷     ©노바미디어

 

기억에는 감정의 핵이 있다. 이 핵을 뽑아내면 기억이 삭제된다. 핵을 둘러싼 것들, 배경, 장소, 주위 사람들, 물건들이 없어져도 감정의 핵이 존재하면 기억은 남아있다. 그리고 조엘에게 감정의 핵은 클레멘타인이다. 헤어질 무렵의 클레멘타인은 고통이었으나, 사랑을 시작할 무렵의 클레멘타인은 행복 자체였다. 그래서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기억의 지도 밖으로 숨기면서 그 행복했던 기억을 지키고자 한다. 기억 속 클레멘타인은 자신을 없애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붙잡고 무너지는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몇 번 성공하는가 싶다가도, 결국 조엘은 기억 속 클레멘타인과 함께 지도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둘이 처음 만난 곳, 그곳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이제 더 이상 클레멘타인은 기억 속에서 살아남으려 하지 않고, 조엘 역시 무너져가는 집을 두고 걸어 나온다.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으로 ‘몬톡에서 만나’라는 말을 남긴 채, 그렇게 둘은 마지막 인사를 한다.

 

다시 아침이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둘은 몬톡에서 사랑에 빠진다.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이전의 실수가 찾아온다. 바로 기억이 지워지기 전 둘의 모습을 담은 녹음테이프다. 모든 걸 알아버린 후, 이전의 실수가 반복될 거라고 말하는 클레멘타인에게 조엘은 담담하게 답한다. ‘Okay’ 둘이 다시 사랑을 시작할지, 끝낼지는 영화를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영화 포스터 속 문구처럼, 사랑은 그렇게 다시 기억된다.

 

▲ 영화 '이터널 선샤인' 스틸컷  © 노바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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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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