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세상의 끝'에서 가족을 마주하다

노윤아 | 기사승인 2021/01/12 [10:00]

'단지 세상의 끝'에서 가족을 마주하다

노윤아 | 입력 : 2021/01/12 [10:00]

 

  ▲ '단지 세상의 끝'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씨네리와인드|노윤아 리뷰어]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가족에게 곧 닥칠 자신의 죽음을 전하기 위해 만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의 끝>(2016) 자신의 죽음을 전하기 위해 아주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는 루이의 이야기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들은 루이에게 오랜 시간 동안 묵혀온 감정들을 쏟아낸다. 방문의 목적이 매우 명확한 루이는 어떻게 알려야 할지 알지 못한 채로 그저 묵묵히 가족의 토로를 듣는다. 12년 만에 만난 가족은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고, 많은 부분에서 여전하다. 루이는 처음으로 형의 아내, 카트린을 소개받고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만신창이가 된 가족관계를 회복하려 애쓴다.

 

자비에 돌란은 자신의 영화 속에서 가족과의 관계, 특히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를 변주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익히 알려졌다. <아이 킬드 마이 마더><마미>에서 보여주었던 인물의 감정과 그가 처한 상황을 표현하는 미장센과 함께 활용되는 음악은 <단지 세상의 끝>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어 관객이 루이에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장뤼크 라가르스가 쓴 동명의 희곡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슬로우 모션과 함께 사용되는 적절한 음악사용은 자비에 돌란 특유의 개성을 부각한다.

 

자비에 돌란은 상황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과 전개 보다 인물의 감정에 집중한다. 이는 <단지 세상의 끝>에서도 적용된다. 관객은 루이의 가족들이 모르는 사실을 알고 루이의 여정을 함께 한다. 루이의 죽음은 관객과 루이만 아는 비밀이다. 따라서 관객은 루이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루이와 가족이 맺는 관계와 루이의 상황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돌란은 희곡의 언어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슬로우 모션은 배우의 작은 표정도 놓치지 않고 가감 없이 보여주며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인물의 감정 상태를 유추하게 만든다. 관객은 화면 전체를 채우는 배우의 표정을 통해 그가 말하지 않는 것을 읽어내야 한다. 무엇이 표면에 나타나고 무엇이 심층에 잔류하는가, 그리고 무엇이 발화되고 무엇이 발화되지 않는가에 집중하면서 영화를 읽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희곡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 '단지 세상의 끝'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루이는 그동안 가족과 매우 표면적인 관계를 맺고 살았다. 연을 끊고 산 것이 아닌, 가족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만 수행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이사한 곳의 주소도 알려주지 않고 의무적인 소식만 전했던 루이가 12년의 공백을 깨고 갑자기 나타나자 가족들은 그를 반가워하면서도 어색해한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어떤 말을 하려 찾아온 건지 궁금해하면서도 가족을 등진 그에게 노골적인 원망을 표현한다.

 

쉬잔은 루이와 나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루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다. 쉬잔에게 루이는 그가 쓴 글처럼 자유롭고 똑똑한 지식인이지만 가족을 떠났기에 동경인 대상인 동시에 원망의 대상이다. 루이가 없는 동안에도 잘 살았다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루이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상충하여 나타나며 루이에게 잘 보이려 노력한다. 그런 쉬잔과 반대로 루이의 형인 앙투안은 루이가 떠난 가족의 화합을 도모해야 했던 가장이다. 앙투안은 가족을 등지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루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가 떠난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장남인 앙투안의 몫으로 남았고 그 무게를 버거워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가족을 위해 많은 희생과 인내를 감내한 앙투안의 노력은 갑작스러운 루이의 등장으로 인해 평가 절하되고 가족들은 뜻하지 않게 앙투안에게 상처를 입힌다.

 

어머니는 쉬잔과 앙투안보다 루이를 더 많이 이해하는 인물이다. 쉬잔과 앙투안이 루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으며 루이가 그들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 가족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책임감을 언급하며 가족을 떠났다고 해서 가족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어머니는 루이와의 대화의 대화에서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도,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미래를 생각하라는 말도 남기지만 관객들은 이미 루이에게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단지 세상의 끝'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가족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루이를 부정하듯 영화에서는 루이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소도구로써 시계가 반복하여 등장한다. 루이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강조하며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가 영화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 루이가 들여다보는 손목시계 역시 그가 남은 시간은 가늠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거울 역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마주 보는 행위는 그를 향해 다가오는 죽음을 직면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루이의 과거 회상은 몽타주 기법으로 나타난다. 아득하고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집을 떠나기 전의 기억은 어렴풋이 루이가 가족을 애틋하게 느꼈음을 짐작하게 한다. 루이가 어떤 이유로 집을 떠나게 됐는지 영화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인물의 대사를 통해 밝혀지는 루이가 게이라는 사실과 루이의 과거 회상에서 등장하는 방탕한 삶, 그리고 과거 연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는 있다.

 

가족과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은 루이는 가족이 자신에게 바라는 모습과 매우 다른 판국인 자신의 모습과 갈등한다. 12년 동안 묵히고 쌓인 상처를 하루 만에 치유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기에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의 사정을 모르는 가족들은 원망, 그리움, 동경, 미움, 사랑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을 쏟아내기만 한다. 자신에게는 없을 미래를 가정하는 쉬잔과 어머니의 말, 그리고 옛 애인의 죽음을 전하는 앙투안의 말을 듣고 루이는 모든 것이 너무 늦었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

 

  ▲ '단지 세상의 끝'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루이는 자신의 죽음을 가족에게 전하기 위해 가족을 방문했다. 이토록 말하기 어려운 얘기를 전해야 하는 루이의 심정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모순적인 마음으로 카트린을 통해 나타난다. 앙투안의 아내인 카트린은 가족 구성원에 속해 있어도 유일하게 피가 섞이지 않은 남이다. 루이는 앙투안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아 카트린을 처음으로 만났고, 따라서 조카들을 본 적도 없다. 루이는 자신이 가족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다 하지 못했기에 자신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조카들을 데려오지 않은 카트린에게 화를 내지 못한다. 루이는 가족들에게 돌아온 탕아이자 다시 떠날 사람이 된 것이다. 루이가 화장실에서 누군가에게 아직 가족에게 얘기하지 못했다는 통화를 끝내고 나오며 만난 사람은 카트린이다. 카트린이 루이에게 묻는 시간이 얼마나 있으세요?’라는 질문은 중의적이다.

 

카트린은 루이가 언제 떠날 예정인지 물어본 것이겠지만 루이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에겐 루이가 앞으로 살날이 얼마나 남은 것인지 물어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감정이 폭발한 앙투안을 달래러 쉬잔과 어머니가 앙투안의 뒤를 따른 후, 루이는 카트린을 마주 보고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댄다. 카트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족들에게로 향한다. 여기서 루이의 제스처 역시 중의적으로 해석된다. 루이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지켜달라고 한 것일 수도, 카트린에게 조용히 떠나고 싶다는 뜻을 전한 것일 수도 있다. 끝까지 루이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사람은 관객뿐이다. 루이가 중의적으로 받아들인 다른 인물들의 말은 슬로우 모션을 통해 그 중의성을 관객에게도 함께 느끼도록 종용하고 결국 관객은 루이의 시선에서 루이에게 동화된다.

 

결국 루이는 죽음 앞에서 모든 노력이 무용하다는 사실을 확인받는다.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틀어졌을지 모르는 깊은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도 바뀌는 것이 없음을. 설사 무언가가 바뀐다고 하여도 이미 늦었음을. 영화의 프롤로그에서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환상을이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비행기 뒷좌석에 앉은 아이가 루이의 눈을 가린 것은 강제적인 체념을 상징한다. 루이는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대신, 가족의 의무를 피상적이나마 다하기 위해 어머니의 조언대로 그들이 자신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을 한다. 그가 뱉는 약속들은 하나같이 지킬 수 없는 것들이기에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가족들이 루이에게서 등을 돌린 후, 뻐꾸기시계가 울린다. 갑자기 새가 집안에 난입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루이는 마음 정리를 마친 후 집을 나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새가 죽어있다. 자유로아 날아다녀야 하는 새가 집안에서 죽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루이의 예술성은 새의 자유로움으로 표상되고 집은 그를 가두는 공간, 그리고 죽게 만드는 공간으로 나타난다. 죽은 새는 루이의 확정된 죽음과 체념을 상징하고 죽음을 앞둔 인간의 체념과 무기력함은 그를 세상의 끝으로 인도한다.

 

<단지 세상의 끝>은 결국 너무 늦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아이러니와 함께 언어가 감정을 완벽하고 적확하게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역설하며 대사보다 그 심연에 숨은 감정에 집중하게 한다. 죽음이라는 이유가 없었다면 루이는 가족을 방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에게 루이의 방문은 달가우면서도 이해되지 않았고 루이의 빈자리는 어린 루이로 채워졌다. 깊은 애증으로 이루어진 그들 모두는 어떤 무엇으로도 루이가 집을 떠나기 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렇기에 루이는 죽음을 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죽음은 단지 세상의 끝에서 루이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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