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실패로 점철된 기억

영화로 배우는 감정수업 / 이제 그만 끝낼까 해(I'm Thinking of Ending Things, 2020)

김준모 | 기사승인 2021/01/14

후회와 실패로 점철된 기억

영화로 배우는 감정수업 / 이제 그만 끝낼까 해(I'm Thinking of Ending Things, 2020)

김준모 | 입력 : 2021/01/14 [10:00]

▲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스틸컷  © 넷플릭스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존 말코비치되기>로 유명한 찰리 카우프만 감독은 한 번만 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드는 걸 선호한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상징적인 소재가 사용되며, 표현에 있어서도 한 꺼풀을 벗겨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해하기 힘든 영화의 공통점은 개인적인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내면은 심연과도 같다. 한 명의 인간을 작은 우주라 부를 만큼 수많은 기억과 감정, 시간이 뒤섞여 있다.

 

그의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한 여자가 남자친구 제이크와 헤어질 생각을 지니고 그의 부모님과 처음 만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차에서 제이크와 수많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머릿속에는 이별만을 생각하던 여자는 어쩌면 시부모가 될지 모르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공포를 느낀다. 이들의 이상한 행동에 겁에 질린 여자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제이크는 그녀를 데리고 집을 향한다.

 

눈 속에서 차를 운전하던 제이크는 한 아이스크림 매장 앞에서 멈춘다. 제이크는 자기 대신 여자한테 주문을 시킨다. 매장 내 두 명의 여직원은 소위 말하는 노는 무리 같은 느낌을 준다. 이들을 대신해 아이스크림을 주러 온 여성은 어딘지 모르게 위축되어 보인다.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주면서 여자에게 무언가 신호를 준다. 이 신호를 눈치 채지 못한 여자는 집 대신 남긴 아이스크림을 버려야 한다는 제이크를 따라 모교를 향한다.

 

▲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스틸컷  © 넷플릭스

 

모교로 들어간 제이크는 나오지 않는다. 이상함을 느낀 여자는 학교로 들어가던 중 쓰레기통에 아이스크림통을 버린다. 이때 쓰레기통에는 같은 아이스크림통이 가득 차 있다. 여자가 학교 안에서 만나는 존재는 작품에서 제이크-여자 커플과 교차로 등장했던 늙은 청소부다. 이 청소부는 말없이 학교를 청소하는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준다. 잠깐, 장면 하나를 되짚어 보면 청소부가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던 의기소침해 보이는 여학생이 아이스크림 가게의 점원과 비슷해 보인다.

 

이 청소부에게 여자는 한 남자가 클럽에서 자신을 기분 나쁘게 쳐다봤고, 그를 피해 나왔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녀는 마치 청소부가 그 남자인 거처럼 화를 내며 말한다. 이쯤 되면 눈치 챌 사람은 눈치 챘을 것이다. 왜 작품은 주인공인 여자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으면서 제이크의 이름만 등장하는 걸까. 설정이 아닌 정말여자의 이름을 몰랐던 게 아닐까. 이 작품의 주인공이 여자가 아닌 제이크라면 말이다.

 

작품 속 제이크는 물리학자로 등장한다. 물리학은 그 학문적인 깊이를 생각하면 설명하기 복잡하지만, 사전적인 의미로 보자면 물질의 물리적 성질과 그것이 나타나는 모든 현상,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제이크는 한때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꿈꾸었지만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 청소부로 남게 된다. 그는 지난 인생을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며 자신의 인생이 왜 실패했는지 알아내고자 한다.

 

그 안에는 사랑도 포함된다. 제이크는 기억 속에서 여자를 몇 번이고 소환해 사랑의 공식을 찾고자 한다. 그 공식은 자신의 꿈이 실패한 원인이라 여기는 부모와 그런 부모 앞에서 꿈을 망친 자신으로 인해 몇 번이고 또 다시 실패라는 답을 얻는다. 우리의 삶은 성공의 순간보다 실패와 후회를 더 많이 기억한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빠지고는 한다.

 

▲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스틸컷  © 넷플릭스

 

인간의 뇌는 앞으로 인류가 만들어낼 그 어떤 컴퓨터보다 뛰어난 성능을 지닌다. 시공간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한 공간에서 수 만 명의 캐릭터를 조합할 수 있다. 수 억 개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며 그 경우의 수를 합쳐 최적의 결과를 찾고자 한다. 고도화된 이 작업을 우리는 흔히 망상이라 부른다. 망상과 상상의 차이는 그 결론에 있다. 상상이 미래를 그린다면, 망상은 이미 끝난 미래를 다른 결말로 채워 넣으려 한다.

 

기억은 증명의 도구다. 누군가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 답을 찾는 창고가 기억이다. 그 기억이 후회와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면 증명의 시간은 길어진다. 성공은 그 자체가 답이 되지만, 실패는 이유를 묻기 때문이다. 후회와 실패를 이겨내는 건 순응이다. 내 삶에서 지금의 모습이 최선이라는 잔혹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기에 우리는 후회의 감정이 묻은 기억 속에서 망상을 반복한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이제 그만 끝내고 싶은 기억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잊고 싶지만 잊힐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미련한 집착이란 걸 알면서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최선의 결말을 만들어 끝을 내고자 하지만 그 결말을 향한 관계나 법칙을 요구하는 내면의 질문을 외면하지 못한다.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맹세보다 기억에서 지우겠다는 말이 더 지키기 힘든 다짐임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기획취재부
rlqpsfkxm@cinerewind.com

Read More

  • Posted 2021.01.14 [10:00]
  • 도배방지 이미지

이제그만끝낼까해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