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가상세계가 있다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마주친 한계

한솔지 | 기사승인 2021/01/22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가상세계가 있다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마주친 한계

한솔지 | 입력 : 2021/01/22 [10:00]

[씨네리와인드|한솔지 리뷰어] 지금 현재,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한 세계는 단순히 산업 분야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정치, 사회, 문화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그중에서 과학기술의 변화를 시각적이고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마 SF 영화가 아닐까 싶다. 특히나 공상과학 영화들은 현재의 변화뿐만 아니라 고도의 특수효과와 편집기술을 통해 미래사회 혹은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할리우드와 블록버스터 영화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2018)’ 또한 미래사회를 그리고 있으며, 현실과 가상세계에 대한 담론을 다루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스티븐 스필버그는 SF 영화를 통해 문화적 충격과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그런 거장이 만든 영화인 만큼, ‘레디 플레이어 원’의 누적 관객수는 200만이 넘으며 45회 새턴 어워즈에서 최우수 SF영화상까지 받기도 했다.

 

▲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포스터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

 

영화 속에서 드러난 현실의 모습과 가상세계가 등장하고, 두 세계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첫 번째로는 당연히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모습이다. 영화를 보면 한눈에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과 가상세계 간의 괴리가 굉장히 큰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웨이드 와츠’가 살고 있는 현실은 트레일러 빈민촌이다. 배경의 색은 거의 흑백에 가깝거나 채도가 낮으며 주로 차가운 푸른색을 띠고 있다. 그리고 빈민촌의 건물들이나 주거 환경들을 보면 굉장히 지저분하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반면 가상세계는 흑백의 빈민촌과 다르게 굉장히 컬러풀하며 화려하다. 여러 행성들 속의 세계는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무엇 하나 낡은 것이 없다. 또한 가상세계의 모습을 보여 줄 때에는 사운드도 풍부하다. 마치 연주하는 것과 같이 소리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두 번째는 현실 속 ‘웨이드 와츠’와 가상세계 속 ‘파시발(웨이드 와츠의 캐릭터)’의 모습이다. 현실에서의 웨이드 와츠는 고지식해 보이는 직사각형의 안경을 쓰고 있고 옷도 체크남방에 청바지만 입고 다닌다. 즉, 패셔너블해 보이기는커녕 속된 말로 ‘찌질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웨이드 와츠 자신도 알고 있다. 게임에서 만난 여자친구인 아르테미스를 생각하는 장면에서 ‘집구석에 틀어박혀 허송세월하는 별 볼 일 없는 날 상대해 준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웨이드 와츠가 런닝 머신이 달린 기기 위에서 VR 헤드기어를 쓰고 장갑을 끼는 등 인터페이스를 통해 가상세계에 접속을 하면 ‘파시발’로 변신한다. 웨이드 와츠가 만든 아바타인 파시발은 날렵하게 생겼으며 최신 유행하는 머리를 하고 입고 있는 옷도 나쁘지 않다. 또한 팔이나 얼굴에 문신 같은 것이 있기도 하다. 이렇게 웨이드 와츠와 파시발의 괴리감은 그가 미션을 성공하고부터 더 심화된다. 미션을 성공하고 난 파시발은 사람들에게 온 관심과 집중을 받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에서의 웨이드 와츠는 너무 보잘 것 없고 못났지만 파시발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외에도 아르테미스와 아르테미스를 조종하는 현실세계 속에 있는 사만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차이를 보고 있으면 현실은 매우 고통스럽고 가상세계는 이상적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에게 주어지는 퀘스트와 웨이드 와츠와 사만다의 사랑을 중심이 되어 내러티브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 내러티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무래도 그들이 퀘스트를 깨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가상세계, ‘오아시스’이다. 그렇다면 먼저 가상세계인 ‘오아시스’의 시뮬라크르 양상을 살펴보자.

 

시뮬라크르의 단계는 크게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1단계는 이미지는 실재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 나오는 오아시스 또한 자동차 경주, 코인이라는 재화로 굴러가는 세계 등 현실을 반영하거나 현실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할 수 있으며 파시발과 아르테미스 사이에서 무언가 기류가 흐르거나 친구들을 사귀어 친목도모를 하는 등 감정적 교류 또한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의 이미지는 여전히 모방 세계로서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2단계로 넘어가면서 이미지는 실재를 감추고 변질시킨다. 와츠의 삼촌이나 길거리 사람들이 ‘오아시스’ 속 생활에 점점 집착하는 것이다. 즉, 현실과 가상세계를 혼동하게 된다. 3단계가 되면 이미지는 실재의 부재를 감춘다. 실재가 없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하여 허구와 상상의 세계를 연출하며 실제인 것처럼 속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4단계, 이미지는 어떤 실재와도 관계를 가지지 않게 된다. 실재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다. 가령, 이 영화에서 파시발이 오아시스 속에서 자신의 실제 이름을 언급하자 아르테미스는 가상 닉네임만 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실재는 마치 언급되는 안 되는 것처럼 상황을 만들고, 사람들은 이미지와 기호만을 소비하게 된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면 마지막 5단계인 이미지는 순수한 ‘시뮬라크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순수한 ‘시뮬라크르’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오아시스’를 감독은 어떻게 이용했는가. 오아시스는 현실에서는 보잘 것 없지만 할리데이의 덕후였던 웨이드 와츠(파시발)가 미션에 성공하고 사랑을 얻게 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이아손의 황금 양털 찾기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처럼 미션을 하나둘 씩 성공하고 사랑을 얻게 되는 서사를 보고 있자면, 웨이드 와츠에게 오아시스란 별 볼 일 없는 자신을 한순간에 영웅으로 만들어 준 은혜로운 존재이다.

 

그렇게 미션에 성공한 파시발은 엔딩에서 게임을 만들어낸 장본인, 할리데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할리데이는 고백한다. 오아시스를 만든 것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다고. 그리고 깨달았다고. 현실은 무섭고 고통스러운 곳인 동시에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말한다. 그 후 오아시스의 소유주가 된 웨이드 와츠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오아시스를 닫는다. 사람들이 현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말과 함께 현실만이 유일한 진짜라는 깨달음을 보여 준다. 즉, 이 영화는 VR의 가상세계는 ‘가짜’이며 현실은 ‘진짜’라는 관계를 설정하기에 이른다.

 

▲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

 

하지만 조금만 더 이 영화를 곱씹다 보면, 어쩐지 영화의 서사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톱니바퀴가 삐그덕거린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주인공인 웨이드 와츠의 현실 모습은 정말 평범했다. 아니, 평범 이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상세계인 오아시스에 몰두하여 결국 3가지의 미션을 완수했고 그로 인해 오아시스의 소유주가 되며 사랑을 얻는 등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즉, 오아시스가 아니라면 현실에서의 웨이드 와츠는 발전 없이 별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에 가서는 가상세계보다는 현실을 더 중요시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과연 웨이드 와츠가 그 메시지를 던지기에 적합한 인물일까? 오아시스를 통해 성공을 거둔 웨이드 와츠가 현실을 중요시하라는 말을 던지는 이 아이러니함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뿐만 아니라 ‘레디 플레이어 원’ 또한 다른 공상과학 영화들과 다를 바 없이 상투적이라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웨이드 와츠의 모습은 찌질하지만 가상현실 속에서는 화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파시발이 되는 장면. 그리고 파시발의 친구 H가 아르테미스의 현실 모습을 추측하는 장면에서 남자일 수도 있으며 돼지 꼴통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모습을 통해, 가상현실은 나쁜 것이라는 디지털에 대한 통상적인 생각을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확고히 다지도록 한다.

 

즉,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고 있으면 데이비드 웨버먼이 「메트릭스, 현실과 시뮬레이션의 사라지는 경계」에서 말한 ‘실재 세계는 진실, 자유, 자율, 본래성 등 좀 더 의미 있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고상한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세계인 반면, 가상세계는 자기기만의 죄를 개의치 않는 천박한 쾌락주의자들이 선호할 만한 세계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로 영화를 읽을 때, 우리는 케케묵은 할리우드 식 교훈극 하나를 얻게 된다. 그것은 매우 비(非)포스트모던적이다.’ 이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결국 이 영화 또한 고전적인 할리우드 교훈을 전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레디 플레이어 원’은 특수효과와 편집 기술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준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기성세대의 교훈을 담고 있다.

 

물론 사람들이 점점 이미지와 기호에 의존하여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있으며, 그것은 곧 허무주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어느 정도 있지만, 첨단산업과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디지털(가상세계)에 대한 허무와 공허를 돋우기보다는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관과 대안, 희망을 전해 주었다면, ‘레디 플레이어 원’이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거울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서 알 수 있듯 시뮬라시옹 세계에 갇혀 있어도, 누군가는 ‘네오’와 같이 그 미디어 안에서 실재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즉,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도 단순히 가상세계인 오아시스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오아시스를 인류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현실과 가상현실과의 공생에 대한 고민을 던져 주었다면, 눈만 즐거운 영화가 아닌 더욱 더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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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지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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