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으로 시작해 전 세계를 손에 넣은 위대한 밴드 ‘오아시스’

영화 '슈퍼소닉'

오승재 | 기사입력 2019/05/27 [11:00]

빈 손으로 시작해 전 세계를 손에 넣은 위대한 밴드 ‘오아시스’

영화 '슈퍼소닉'

오승재 | 입력 : 2019/05/27 [11:00]

 

▲ 밴드 오아시스    © 오프 더 코너 필름

 

누군가가 영국을 상징하는 밴드에 대해 묻는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저 없이 비틀즈와 더불어 오아시스를 꼽을 것이다. 오아시스는 잉글랜드 맨체스터 출신의 얼터너티브 록밴드로 형제관계인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노엘 갤러거와 프론트맨인 리암 갤러거가 주축을 이룬 밴드이다. 시니컬하면서도 감각적인 사운드와 시대비판 그리고 긍정적 가사는 한 시대, 한 국가를 초월하여 전 세계에 현재까지도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1994년부터 19961집부터 3집까지 오아시스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인기를 구사했다. 1가 전 세계에서 15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후 해당 성공을 뒤이은 22200만장을 팔아치우며 메가히트를 기록한다. 특히 그들의 성공을 가장 잘 증명할 수 있는 지표는 바로 전설의 넵워스 공연이다. 이 공연을 보기 위해 티켓 예매를 시도한 이들은 260만 명에 달했고, 오로지 오아시스를 보기 위해 이틀에 걸쳐 25만명에 달하는 관객이 넵워스 공연장에 찾아왔다. 어떻게 맨체스터 빈민가 청년들이 변두리 지하연습실에서 만들고 부르던 노래가 불과 3년이라는 시간동안 전 세계 거리에 울려 퍼지게 되었을까?

 

 

맨체스터 빈민가 속 피어난 작은 희망

 

맨체스터 빈민가 출신인 갤러거 형제는 어린 시절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아버지 토미 갤러거는 세 아들들에게 폭력을 일삼았고, 노엘 갤러거와 그의 형 폴 갤러거는 말더듬 증상을 겪어 치료를 받기도 했다. 어머니 페기 갤러거는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 아들들과 도망기에 이른다. 아들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운 덕에 세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한 때 페기 갤러거의 병세가 악화되었을 시점에 3집의 수록곡인 <Don’t Go Away>를 만들어 어머니의 호전을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특히 리암의 경우 다른 청년들과 다르게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1991년 친구들과 밴드를 구성한다. 페기 갤러거는 리암의 미래를 걱정했지만 리암은 음악적 성공을 통해 어머니가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형 노엘은 맨체스터 밴드인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매니저로 합류하여 전 세계 투어를 함께 했다. 해당 계기를 통해 노엘은 마음 속 내제된 락스타의 꿈을 확고히 하게 된다. 이후 리암은 본인 밴드에 형인 노엘을 매니저 역할을 맡기려 불렀지만 노엘의 작곡능력을 보고 밴드를 같이 하기로 맘 먹는다. 특히 노엘은 소위 워킹클래스의 일상을 영위하며 번뜩이는 천재성을 발휘한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만든 Live Forever는 모든 멤버들이 밴드로서의 성공을 확신하게 된 계기가 된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음악적 재능과 더불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감 없이 표현했다.

 

이후 그들은 스스로 밴드로서 요건을 갖췄다는 확신 하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본인들을 홍보했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진전 없던 상황에서 합주실을 공유하던 여성 밴드 시스터 러버스가 스코틀랜드 글라스고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아시스 멤버들은 각자 25파운드 씩을 모아 차를 렌트해 직접 운전하여 글라스고의 공연장으로 공연을 하러 간다. 우연히 그 공연장에는 당시 유명 레코드인 크리에이션 레코드의 사장 앨런 맥기가 있었고 오아시스의 공연을 보고 그들에게 완전히 매료된다. 공연 직후 앨런은 무대에 올라가 계약을 제안했고 위대한 역사는 비로소 시작되었다. 소위 인맥도 없고 돈도 없던 맨체스터의 빈민가 청년들이 메인스트림에 모습을 드러낼 채비를 마친 순간이다.

 

 

에서 시작했지만 모든 것을 원했던 밴드였지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많은 경제성장을 창출했지만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그들 간 계급화 현상이 초래되었고, 관행은 공공연하게 유지되고 있다. 상류층, 중산층, 노동자계급은 뚜렷하게 구별되었고 노동계급에 속한 이들은 낮은 계급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무시와 차별을 감내해야만했다.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는 맨체스터에서 최악의 빈민가에서 자란 노동자 계층 (Working class)의 부류였다. 보편적으로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본가 세력의 행동양식을 따르거나 그들이 부여한 가치를 추구해야한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그 누구에게도 굽신 되지 않고 한 점의 가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노동자 계층임을 가감 없이 드러냄과 동시에 시대비판, 고난 속 희망을 찾는 긍정적 가사를 써낸 진정한 밴드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상류층의 심볼인 왕족을 거침없이 비난함과 동시에 부조리로 인해 초래된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노래로 대중을 위로했다. 대중들은 오아시스의 행보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신선한 캐릭터에 계급불문 전 영국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 산업혁명 이후 부정적 상황이 지속됨을 지적하고 긍정적 변화의 물결을 도모한 오아시스는 90년대를 자신들의 시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타자의 시선에 종속되지 않은 그들

 

▲ 정형화된 틀을 거부한 갤러거 형제     © 오프 더 코너 필름

 

오아시스를 떠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탈정형화이다. 보컬 리암 갤러거는 탬버린을 흔들거나 뒷짐을 쥐고 노래를 부르며, 목소리나 창법 역시 당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신선한 바람이었다. 그리고 갤러거 형제들은 공연 중에 서로 싸우기도 하고 관객과도 갈등이 있을 정도로 감정 표현에 유달리 솔직했다. 기자들에게 그들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항상 그들을 쫒아 다니며 그들의 행동을 카메라 프레임 혹은 기사로 담아내려고 혈안이 되었다. 심지어 기자들은 가정폭력의 주체였던 토미 갤러거를 돈을 주고 섭외해 그들의 감정을 폭발시키도록 유도하는 등 도를 넘는 취재를 하기도 했다. 수많은 시선과 비난 속에서도 오아시스는 자신의 신념을 절대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점이 오아시스를 더욱이 위대하게 만들었다, 과연 정형화된 행동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단순히 틀에 맞춰 작곡, 연주했다면 오아시스가 지금과 같은 위상을 떨칠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아니다. 외형적으로 정말 거칠고 건방져 보일 수 있는 청년들이었지만 반대로 감정표현에 솔직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들이 만든 음악 또한 인위적이거나 가식적이지 않았다. 노엘 갤러거는 어린 시절 겪었던 지독한 가난과 가정 폭력 속에서도 다음 날 어떤 기분 좋은 일이 생길까라는 생각으로 아침을 맞이했을 정도로 긍정적이다. 따라서 그가 만든 음악 속에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직설적이고 진정성 있는 음악은 모든 대중의 귀와 마음을 자극하게 되었다.

 

 

우리는 형제였기 때문에 성공했지 다만 해체하는 원인이 되었지만

 

▲ 리암갤러거(좌측)과 노엘갤러거(우측)     © 오프 더 코너 필름

 

갤러거 형제는 유명한 애증관계이다. 당연히 본질적으로 차이가 존재하는 형제가 합일이 되길 욕망하니 갈등은 필연적이었지만 같은 성장배경 속에서도 갤러거 형제는 유달리 상반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갈등의 골이 극에 달한 2009년 결국 오아시스는 해체를 결정한다. 하지만 수많은 갈등 속에서도 25년간 성공적인 밴드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모순적이게도 갈등의 원인이기도 한 상반되는 성향이다. 그들은 항상 서로를 비난하기 바쁘지만 상호 간의 능력은 존중하고 있었다. 노엘의 천재적인 작곡 능력을 리암은 질투함과 동시에 존경했다. 리암은 형에게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으며 작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오아시스 명곡 중 하나로 꼽히는 Songbird를 작곡하기에 이른다. 더 나아가 오아시스 해체 이후 개설한 밴드 비디아이와 현재 솔로 활동 곡도 리암 갤러거가 만들 정도로 무대 위의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훌륭한 음악성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도 노엘 갤러거가 부여한 자극점 덕택이다. 반대로 노엘 갤러거는 프론트맨인 리암의 무대 위의 카리스마, 장악력을 내재적으로 존중하고 있었다. 2집부터 노엘 갤러거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앨범에 담기를 원했고 이 과정에서 리암과 많은 갈등이 초래됐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노엘의 보컬 참여는 신의 한 수가 되었고 앨범의 질을 더욱이 증진했다. , 서로의 능력을 존중하고 침해하지 않되 상호를 자극으로 삼아 부족한 점을 발전시켰다는 점은 오아시스 성공의 원동력이다.

 

영화에서는 노엘과 리암이 주축이 되어 3년간의 황금기를 설명하는 내레이션을 중심으로 상황이 전개된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촬영당시에도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제작진은 각기 다른 장소, 시간에 그들의 음성을 담아냈지만, 감독은 마치 그들이 함께 해당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플롯을 구성했다. 이는 인위적 구성이 아니다. 당시 상황에서 그들은 누구보다 진지했고 솔직했기에 회상의 기억과 감흥도 많은 유사점이 있었다. 합일이 불가한 일촉즉발의 갈등관계였지만 상반된 요소에서 형성된 상호보완관계이기도 했음을 내포한다.

 

 

260만 명이 원한 전설의 넵워스 (Knebworth Park) 공연

 

▲ 이틀 간 25만명이 찾아온 전설의 공연 넵워스     © 오프 더 코너 필름

 

영화의 시작과 끝은 오아시스 신드롬이 절정에 달했던 1996년 넵워스 공연 씬이다. 해당 공연을 보기위해 무려 260만 명 이상이 공연 예매를 시도했고 810, 11일 양일에 걸쳐 관객 25만 명이 운집했다. 헬기를 타고 등장하는 오아시스 멤버들은 모든 관객을 광란으로 이끈다. 넵워스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다. 교감의 장소이다. 무심한 듯 묵직한 보컬과 사운드, 깊이 있는 가사와 더불어 관객들의 환호성과 합창의 융화되며 넵워스 공원은 절호조의 상태에 다다른다. 실제로 열광하는 팬들의 환호로 인해 지진이 관측되었다고도 한다. 노엘 갤러거는 넵워스 공연을 회상하며 너무 일이 커져서 겁이 났다고도 언급했다. 그만큼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오아시스의 음악을 사랑했고 그들의 모든 행보가 주목받았다. 영국언론도 이를 능가하는 인기는 그 누구도 재현하기 힘들다고 했을 정도로 넵워스 공연은 음악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사건 중 하나이다.

 

 

사막과 같은 매정한 현실 속 진정한 오아시스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오아시스의 가장 큰 무기는 진솔함이다. 워킹클래스에 실업수당을 받으며 삶을 영위했던 그들이지만 그 누구에게도 굽신 되지 않았고 당당했다. 그들은 직설적 어투로 하고 싶은 말은 모조리 했고, 특히 상류층에 대한 반감을 공개적인 인터뷰 자리에서 여러 번 표출했다. 영국 시민들은 억압된 현실 속에서 오아시스의 존재는 그야말로 사막 속 오아시스였다. 노등계층이 상류층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고 싶어도 세상의 중심은 상류층이었고 대다수의 가치는 상류층이 설정한 산물이었으므로, 분노를 억압하고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갤러거 형제는 가감 없이 노등계층으로서 그들이 겪은 사회의 모순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오아시스 최고의 매력은 긍정이다. 당시 산업혁명이후로 노동계급에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지만, 그들은 좋은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오아시스의 메시지는 현대사회에서도 큰 함의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대입, 군대, 취업 등 각 나이별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틀이 정해져있고 이에 구속되는 경우가 많다. 타인과 비교당하며 치열한 경쟁 속의 삶을 영위한다. 그래서 취업을 왜해야하고 취업 후 주어진 업무를 왜 수행해야 하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할 여유도 없이 기계적인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도 찾아볼 겨를이 없을뿐더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사회적 기준과 일치하지 않을 때 이를 표현하기란 더욱이 어렵다. 오아시스의 음악은 탈출구이자 친구이다. 노래 Live Forever에는 당신이 원하는 인물이 되지 못할 수 있으나 낙담하지 말고 삶의 이유를 찾고 함께 영원하자는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노래 Whatever에는 당신이 무엇을 하던 그게 옳다는 걸 저는 압니다. 그러니까 타인이 시키는 대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당신이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고 행동하라는 깊이 있는 울림을 부여했다. 이들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높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쓴 가사와 같이 주관을 가지고 긍정적인 행보를 직접 보여줬기 때문이다. 오아시스 음악이 지금까지 회자되고 높은 순위권에 위치하는 이유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다. 밴드 오아시스는 단순히 9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로 국한질 수 없다. 지금까지 더 나아가 앞으로도 그들이 세상에 선보인 행보와 수많은 명곡은 영원한 사람들의 동반자가 되어줄 거라 확신한다.

 

 

[씨네리와인드 오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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