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라는 축복과 자연이라는 공포, ‘아쿠아렐라’ [SEFF]

제16회 서울 환경 영화제 개막작

유지민 | 기사입력 2019/05/27 [13:10]

자연이라는 축복과 자연이라는 공포, ‘아쿠아렐라’ [SEFF]

제16회 서울 환경 영화제 개막작

유지민 | 입력 : 2019/05/27 [13:10]

고대의 인간들은 자연을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관찰자로서 자연을 지켜보며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근대가 열리며 인간은 이성으로 자연을 정복하고자 했고 자연을 도구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번 제16회 서울 환경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출된 <아쿠아렐라>는 그런 인간들을 마치 비웃는 듯이, 거대한 자연과 나약한 인간의 대비를 통해 자연의 절대적인 압도력을 보여주고 있다.

 

▲ 영화 '아쿠아렐라' 스틸컷     © 왓챠 이미지

 

전 세계 영화제에서 100개 이상의 작품상을 수상한 러시아 다큐멘터리의 거장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탐색한다. ‘물’이 주인공인 영화로 90분의 러닝타임동안 물로 대표된 자연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영화는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쪽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호’에서 시작한다. 이 장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흔적도 없이 물 밑으로 가라앉아 사라져 버리기도 하며, 얼어버린 호수 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에 주저앉기도 한다.

 

▲ 영화 '아쿠아렐라' 스틸컷, 첫 여정인 바이칼호에서의 모습     © 네이버 영화

 

바이칼호를 지나 물이 다음으로 떠난 곳은 홍수로 고통받고 있는 마이애미 지역이다.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은 스토리 텔링을 추가하는 대신에 물이 모여 홍수가 되고, 홍수가 인간의 영역에 터져나오게 되는 있는 그대로의 과정만을 담는 모험을 택했다. 카메라는 치열하게 물의 동태를 따라다닌다. 거대한 물기둥이 되어버린 홍수는 평화롭던 인간 세계를 덮쳐 모든 걸 휘집어 놓는다. 홍수가 지나간 후 물에 젖어 한 여인의 얼굴에 흐르는 물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관객들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마이애미를 지나 물이 도착한 마지막 종착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베네수엘라의 앙헬 폭포였다. 몇 분 간 지속되는 물 속 유영의 장면이 끝나고 웅장한 베네수엘라 폭포가 한 프레임에 잡힐 때 관객에게 느껴지는 경외감은 절정에 달한다.

 

▲ 영화 '아쿠아렐라' 스틸컷, 물의 유영 장면을 촬영할 때 모습     © 네이버 영화

 

지난 5월 23일에 진행된 제16회 서울 환경 영화제에서 맹수진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개막작 <아쿠아렐라>에 대해 “사실 이 영화는 올해 개막작 선정에 있어 용기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나레이션도 없고 줄거리가 없다. 90분을 대사도 없이 볼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압도적이고 아름다우며 공포스럽기도 한 장대한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가를 보여줄 수 있는 대작이라고 생각했다.” 라고 소개했다. 말 그대로 아쿠아렐라는 어떠한 서사도, 나레이션도, 특별한 맥락도 제공하지 않고 압도적인 물과 얼음의 향연만으로 자연의 경이를 오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영화다.

 

그저 때로는 장대하고, 때로는 아름다우며, 때로는 두려운 물의 다양한 이미지와 사운드의 폭격 속에 90분간 잠겨 있다 보면,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온 ‘근대적’ 인간이 실제 자연 앞에선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제16회 서울 환경 영화제는 <아쿠아렐라>를 개막작으로 선정함으로써 '기후변화'라는 환경 문제에 대해 노골적인 방식이 아닌 오감을 통한 암시를 통해 넌지시 생각해 볼 거리를 던지고 있다.

 

[씨네리와인드 유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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