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작은 도시락집, '메르스'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SEFF]

[서울환경영화제 상영작] '길모퉁이 가게'

김준모 | 기사입력 2019/05/28 [19:35]

청소년들의 작은 도시락집, '메르스'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SEFF]

[서울환경영화제 상영작] '길모퉁이 가게'

김준모 | 입력 : 2019/05/28 [19:35]

 

▲ <길모퉁이가게> 스틸컷.     © 제16회서울환경영화제

 

2011년 시작된 '소풍가는 고양이'는 대학에 가지 않은 청소년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기업이다. 청(소)년들과 어른들이 모여 8년째 도시락을 만들고 있는 이곳의 이야기를 다룬 <길모퉁이가게>는 2014년 봄을 기점으로 2017년까지 '소풍가는 고양이'의 변화를 담아낸다. 총 5년 동안 작품을 만들었다는 이숙경 감독은 작품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명확한 설정은 하지 않은 채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이 다큐멘터리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2014년 '소풍가는 고양이'에는 4명의 청(소)년과 2명의 어른이 있다. 고용주 씩씩이와 매니저 차차, 그리고 네 명의 직원이 꾸려나가는 이곳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혹은 사회에 나갔을 때 밥벌이를 하기 힘든 아이들에게 자립을 해주기 위한 장소로 처음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곳 직원들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호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염색과 문신, 위생장갑을 안 끼는 건 물론 길게 머리를 늘어뜨린 직원들의 모습은 돈을 벌겠다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강압적이지 않았던 '도시락 가게'

 

실제로 직원들은 업무 중 자유롭게 핸드폰을 하고 늘어지기도 하며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기도 한다. 이 네 명의 직원은 모두 학교라는 집단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스스로 돈을 벌어 자립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소풍가는 고양이'는 강압적이지 않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직원들은 도시락을 만들고 배달을 나선다. 그리고 이들의 도시락은 점점 더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게 된다.

 

주문이 많아지면서 가게는 새로 직원들을 고용한다. 원래 직원 4명에 4명을 더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게 역시 이사를 가게 된다. 더 규모가 커진 '소풍가는 고양이' 앞에는 행복한 꽃길이 놓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5년, 메르스 사태가 터지면서 가게는 위기를 겪게 된다. 적자로 돌아서면서 직원들을 월급 챙겨주기 힘든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에 씩씩이는 새로 개편에 나선다. 전문 조리사인 나무를 고용하고 로고 역시 고양이가 들어간 유아틱한 로고에서 대중적인 시선을 끌 수 있는 로고로 교체한다.

 

▲ <길모퉁이가게> 스틸컷.     © 제16회서울환경영화제

 

이 지점에서 작품은 두 인물을 통해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첫 번째는 '소풍가는 고양이'의 2014년 시작 멤버인 홍아이다. 2014년 홍아는 말 안 듣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 일을 시키면 늘어져 있는가 하면 씩씩이가 중요한 말을 하는 중에도 동료들과 장난을 친다. 씩씩이는 홍아에게 지금 쓰는 지출을 줄여 자립을 하라 말하지만 홍아는 카메라가 꺼지면 그 이야기에 제대로 답하겠다며 문제를 피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전문적인 도시락 업체가 되면서 생긴 변화

 

가게의 확장과 메르스 사태는 홍아에게 큰 변화를 가져온다. 함께했던 동료인 매미와 쫑이 가게의 경제적 위기와 각각 군 입대, 자립 문제로 '소풍가는 고양이'를 떠나게 된다. 규모를 키운 가게는 본격적인 장사와 위기 타파를 위해 조리사 나무를 데려온 후부터 분위기가 바뀌게 된다. 이전에 편하고 여유가 있던 분위기에서 바뀌어 전문적인 도시락 업체가 된 것이다. 분위기는 딱딱해지고 씩씩이는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홍아는 자기가 손 쓸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곧 이곳을 떠날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2017년에도 홍아는 여전히 '소풍가는 고양이'에 있다. 월 매출 1천만 원이 안 되던 작은 가게는 5천만 원을 돌파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홍아는 전문적인 복장을 갖추고 프로의 자세로 일을 하고 있다. 이런 홍아의 변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녀가 전문성을 갖춘 자신의 밥벌이와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점, 두 번째는 본연의 자유로움을 잃어버린 채 자본가에 의해 노동자로 완전히 변해버렸다는 점이다. 

  

씩씩이는 인터뷰에서 '소풍가는 고양이'를 처음 만들 때 가졌던 고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가 처음 목표를 정할 때 액수를 얼마만큼 정하는 게 좋은지 주변에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그때 주변에서 해준 조언은 '고용주 마음대로'였다고 한다. 사업으로 벌 수 있는 돈은 정해진 한계가 없기에 고용주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용주는 조금씩 노동자의 업무 강도를 높여야 하고 이 높아진 업무 강도 속에서 노동자는 숙달된 노동자가 되어 고용주가 원하는 업무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업의 목적인 씩씩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씩씩이는 청년들에게 공평하고 공정한 일터를 제공하고자 이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고용되는 청년들은 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삶의 형태를 살아가는 이들이 아니다. 경제적인 빈곤 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막막한 미래에 갇힌 이들이다. 이들의 자립을 돕는다는 목적이 고용주의 수익을 위한 노동력 착취가 되어가는 과정을 씩씩이를 원하지 않는다.

 

▲ <길모퉁이가게> 스틸컷.     © 제16회서울환경영화제

 

이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이 과정에서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원주다. 원주는 발달장애를 지니고 있어 남들보다 일을 배우는 속도가 느리다. 인턴으로 들어온 원주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소풍가는 고양이'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 이후 일이 많아지면서 원주는 구박의 대상이 된다. 여느 청춘들처럼 왕복 3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일터에 출근하는 원주의 일상은 고되다. 처음 '소풍가는 고양이'는 그런 원주를 위한 공간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씩씩이가 원주에게 소리치며 구박을 반복하는 지점에서 영화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이 다큐멘터리가 영리한 이유는 다양한 판단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누구는 제 몫을 해낼 수 있게 된 홍아를 보며 감동을 느낄 수 있고 또 누구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품처럼 변해버린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도 있다. 원주의 모습 역시 답답하게 느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안쓰럽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느끼는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는 다양성과 공존, 개인의 생존권을 최우선이라 말하지만 실상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경쟁과 도태되는 이들을 향한 냉혹한 시선이 존재한다. 작품은 이 두 가지 시선 중 한 가지를 택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며 선택과 느낌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따뜻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길모퉁이가게>는 자본주의라는 굴레에 갇힌 현대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시선을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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