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불만족 특집|02. 음악의 배제: 불만족이 일구어낸 만족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8)

최나윤 | 기사승인 2021/07/02

오감불만족 특집|02. 음악의 배제: 불만족이 일구어낸 만족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8)

최나윤 | 입력 : 2021/07/02 [14:40]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 해리슨앤컴퍼니


[씨네리와인드|최나윤 리뷰어]
 공포영화를 소리 없이 보면 무서운 감정이 급감한다고 한다. 소리가 주는 긴장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배경음악의 역할은 중요하다. 영화에 들어가는 음악은 극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관객의 몰입을 끌어내고 가끔은 상황을 설정하고 알려주기도 한다. OST 자체가 영화의 정체성이 되기도 하는데 <장화홍련>'돌이킬 수 없는 걸음'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인생의 회전목마'를 들으면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배경음악이 거의 쓰이지 않은 영화가 있다. 배경음악을 최소화하여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졌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관객들은 배경음악이 없는지 몰랐다며 의아해하기도 한다. 오감불만족 특집의 두 번째, ‘청각편으로 배경음악의 삽입을 최소화한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선정했다. 시청각은 기본이요 후각과 촉각까지 총동원되는 영화산업에서 배경음악을 배제한 이 영화는 변수를 이야기한다. 당연한 공식들에 변수를 던진다. 가장 큰 변수는 배경음악과 사이코패스, 그에 대한 파장은 노인을 통해 제시한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 해리슨앤컴퍼니

 

예측은 뻔해지는 지름길이자 긴장감의 원천이다. 관객은 효과음으로 다음 장면을 상상하며 마음을 졸인다. 그런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는 그러한 기능을 하는 음악이 부재한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배경음악이 없다. 영화 초반의 나레이션처럼 격정이 없다. 그렇다면 영화 속 서스펜스의 출처는 어디인가? 이 영화가 음악 대신 선택한 것은 소음이다. 작위적인 음악을 끄니 현실의 소음이 들려온다. 일상 소음은 제법 시끄럽다. 관객들이 배경음악의 부재를 체감하지 못한 것도 비슷한 이유일 테다. 시끄러운 일상의 소음은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다. 르웰린 모스는 여느 때와 같이 사냥에 나섰다. 보안관 에드 톰 벨은 하루하루를 잘 버텨낸 끝에 은퇴를 코앞에 두고 있다. 살인청부업자 안톤 시거의 행위도 일상적인 업무에 지나지 않는다. 추격전과 일상을 같은 선상에 두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이지만 영화는 감행했다. 그리고 낯선 언밸런스를 새로운 공포의 요소로 사용했다. 일상 속 사람들의 바쁜 움직임이 마찰하면서 소음을 내다가 어느 순간 침묵이 찾아온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침묵에 집중했다. 일상의 침묵은 안정감을 주지만, 영화에서는 한없이 불안하기만 하다. 음악 없이도 강렬한 서스펜스가 가능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 해리슨앤컴퍼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는 음악의 부재와 함께 안톤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등장한다. 변수(음악의 부재)를 더 강력한 변수(안톤)로 덮는 것이다. 안톤은 사이코패스다. 침착하고 조용하지만 예측할 수 없다. 그가 왜 화가 났는지, 왜 죽였는지, 갑자기 왜 살려뒀는지 가늠할 수 없다. 예측이 통하지 않는 캐릭터에 스포일러성 배경음악은 독이 될 수 있다. 관객은 아무런 준비 없이 그의 그림자와 마주한다. 어떠한 예고도 없다. 굳이 예고를 찾는다면 사건이 발생함과 동시에 들리는 공기총 소리 정도겠다.


변수를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예측이란 일종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배경음악이라는 데이터를 덜어냄으로써 관객들의 예측이 불가해졌다면, 사이코패스 안톤은 노인들이 일평생 쌓아온 데이터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동전의 앞뒤에 자신의 목숨이 달린 가게 주인, 범인의 족적만 쫓고 있는 베테랑 보안관, 갑작스러운 도망자 신세에도 감사를 잊지 않는 어머니, 선의로 안톤의 차를 고쳐준 행인. 무릇 노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혜와 현명의 이미지로 통해왔다. 그들의 교육 수준과 무관하게 오직 경험이라는 데이터가 축적된 결과물이다. 이 영화에서는 일명 '짬바'라 하는 것들이 통하지 않는다. 영화만이 아니라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변수투성이 세상에서는 경험을 운운할 시간도 없다. 노인을 현명한 존재로 규정해놓고는 정작 이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게 요즘 사회이다. 변수 앞에서 우리는 모두 공평한 인간1’에 불과하다. 1년 반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 시국만 봐도 알지 않겠는가. 영화가 시작하면 늙은 보안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든든한 말과 달리 안톤은 첫 등장부터 경찰을 거뜬하게 해치운다. 광기 서린 안톤의 눈은 보안관의 신념을 비웃는 듯 하다. 그렇게 영화는 여러 변수를 통해 상식이 통하고 경험이 존중되는 노인을 위한 사회가 있을 리 만무하다고 올곧게 말한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 해리슨앤컴퍼니

 

긴장감이 넘쳐야 할 추격전 영화에 배경음악이 빠지고 제목엔 노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영화는 급속도로 차분해진 듯하지만 실상은 긴장의 연속이다. 당연한 것들에 대한 거부는 불안함을 불러일으킨다. 배경음악이 없어 영화를 예측할 수 없다노인들은 한 젊은이를 예측할 수 없다. 변수 앞에 선 우리는 보호막을 잃은 기분이다. 벌거벗은 채로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을 기다려야만 한다. 추격전의 원재료는 욕망과 폭력이다. 인물들은 끝없이 무언가를 탐한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지키거나 빼앗으려 폭력을 자행한다. 에드는 안톤의 범행 흔적을 보며 총알이 없는 총질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그의 물음을 매우 상식적인 물음이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상식 밖의 일들이라는 게 흠일 뿐이다. 결국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 자체가 상징하듯 당연한 것이 부재하는 사회가 도래했다. 그렇게 생긴 공백에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에드의 꿈 이야기는 이제껏 영화가 보여준 현실과 사뭇 다른 결을 한다. 앞서 안톤의 팔을 치료해준 아이들은 돈을 두고 싸웠고, 꿈속에서 에드는 아버지가 주신 돈을 잃어버려놓고서도 꿈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두 번째 꿈에서 아버지는 에드의 길을 밝혀주고자 그를 서둘러 앞지른다. 노인들은 세상이 녹록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그럼에도 전승해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에드의 꿈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희망을 전하는 게 아니다. 노인이 된 그는 아직도 노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는 상식을 비껴간 광경을 목격했고 자신의 경험치가 무력해지는 상황에 마주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달빛과도 같은 불을 밝히려 어두운 길을 앞질러 갔다. 조언자, 꼰대, 현자, ‘라떼’, 소외계층. 우리는 노인을 무엇으로 규정하는가. 정녕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다면, 각자가 생각하는 노인은 누구이며 무엇이 부재하였기에 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말하는가. 영화의 제목과 음악의 배제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에 주목하려는 관객의 시선을 변두리에 있던 노인들에게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 해리슨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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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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