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를 구원할 순 없어도 잠시 기댈 순 있겠지

Review|'데이팅 앰버'(Dating Amber, 2020)

류수연 | 기사승인 2021/07/19

우리가 서로를 구원할 순 없어도 잠시 기댈 순 있겠지

Review|'데이팅 앰버'(Dating Amber, 2020)

류수연 | 입력 : 2021/07/19 [10:00]

▲ <데이팅 앰버> 스틸컷   © 왓챠

 

[씨네리와인드|류수연 리뷰어]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규율 사회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일이다사회적 결속력을 지키기 위해 인간 사회에는 반드시 규율이 필요하지만, 규율이 강해질수록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개체성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결국 규율이라는 것은 국가 혹은 시스템이 사회 구성원을 통제하기 용이하도록 모두가 비슷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한 인간이 규율 사회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그것을 깨닫지 못한 자는 스스로 불행하다는 사실을 얼추 알고는 있지만 깊이 고민하려 들지 않는다그를 둘러싼 주변 모두가 비슷한 정도로 불행하게 살고 있다고 안도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여기사회가 강요하는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두 아이가 있다. 95년도 혼인 관계에 있던 두 남녀가 헤어지는 것을 국가에서 금지시킬 정도로 보수적이었던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이 영화는 그 속에서 방황하던 에디와 앰버에 대한 이야기이다.

 

▲ <데이팅 앰버> 포스터   © 왓챠     

 

우리의 청소년기를 떠올려보자

 

인간관계가 인생의 전부였던 그 시절남들이 보는 내가 세상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그 시절또래 집단에서 배척당하지 않기 위해 에디는 남자를 좋아하면서도 여자에 환장한’ 남자를 연기한다학교에서는 친구들의 압박에 못 이겨 여자와 억지로 키스하고 집에서는 사령관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군인이 되어야 하는 삶. 가정과 학교 내에서 묵묵히 자기 자신을 감추며 살아가는 에디를 유일하게 삐딱하게 보는 한 사람이 있다여자를 좋아하면서도 자신은 레즈비언이 아니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모두가 기피하는 앰버다.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너무나 명확해서 조금이라도 그 범주를 넘어가버리면 바로 비정상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는 곳.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에디와 앰버는 (비록 손조차 마주잡기 싫지만) 계약 연애를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관계는 각자가 가진 슬픔을 뒤로한 채 '평범함'을 가장한다.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만 하는 지옥같은 상황에서 나를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손을 맞대고 잠시 동안 이 진절머리 나는 진흙탕이 편평하고 부드러운 평지라고 상상할 순 있지 않을까? 우리가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이 모든 것들이 실은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고, 언젠가 나(에디)는 자랑스러운 군인이 되고 너(앰버)는 아나키스트를 위한 펑크 잡지를 간행하면서 행복한 우연이 반복되는 상상의 나래 속에서 괜찮은 척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앰버는 무언가 어긋났음을 느낀다. 

 

▲ <데이팅 앰버> 스틸컷  © 왓챠

 

남들이 보는 나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위해 앰버는 용기를 낸다. 에디와의 계약 연애를 끝내고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앰버. 그렇지만 에디는 그런 앰버를, 아니 자기 자신을 아직 받아들일 수가 없다. 연인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앰버와 달리 에디는 길을 잃는다. 영화는 가부장제의 희생자에는 여성 뿐만이 아니라 남성도 포함되어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숱한 세기 동안 여성은 오랫동안 묵살되어 온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여성은 응당 이래야만 한다는스테레오 타입을 부수기 위해 또한 생존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피를 토해왔던가다른 한쪽에서는 시대가 만들어 낸 남성성에 부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홀로 눈물을 흘려왔던가정상성이라는 환상에 집착하게 되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실체 없는 어떤 것을 좇는 것만큼 사람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데이팅 앰버>에서는 에디와 앰버 뿐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압박으로 인해 불행한 채로 머물러 있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한 해의 절반을 파병 나가 있는 남편으로 인해 외로운 가정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에디의 엄마, 너무 엄격했던 아버지 밑에 자라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어 어떻게 아들을 사랑해주어야 할 지 모르는 에디의 아버지, 부모의 이혼이 두려워 이혼 금지 법안을 지키려 뛰어다니는 에디의 동생, 남편의 자살 이후 무기력해진 앰버의 엄마...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복해지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걸까?

 

언제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헤드셋을 귀에 꽂은 채 오로지 앞만 향해 달려나가는 에디를 이번에도 앰버가 멈춰 세운다. 

 

▲ <데이팅 앰버> 스틸컷    © 왓챠    

 

 "이 도시가 사람을 죽게 해."

 

이 시대가,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껍데기가 사람을 죽게 해.
홀로 떠나버린 아버지를그가 마지막을 보낸 나무를 기억하며 앰버는 에디에게 자신의 전부였던, 언젠가 런던으로 도망갈 때 쓰일 경비 2000파운드를 기꺼이 내어준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선택지에는 반드시 죽음만이 잊지 않다는 것을, 벼랑 끝에 몰린 에디에게 앰버는 한 가지 길을 제시해준다. 

 

"아일랜드를 떠나."

(...)

"그럼 어디로 가라고?"
"어디든."
"나랑 같이 가자."
"안돼. 이건 너 혼자 해야 할 일이야."
"...무서워."
"당연하지. 겁나게 무서운 일인데. 잘 할 수 있어. 내가 잘 가르쳤으니까."

 

그런 앰버에게 에디는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입 밖으로 꺼내본다. 그 말을 여태 기다려왔다는 듯 활짝 웃어 보이는 앰버. 진흙탕에 빠진 나를 누군가 건져내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순 없다. 진흙탕 너머에 다다르기 위해선 먼저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아야 한다. 고통스러울지라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결국 우리를 불행으로부터 구원해 줄 이는 우리 자신밖에 없다그러나 나와 같은 슬픔을 알아챈 이에게 모든 질타와 괴로움을 뒤로 한 채로, 잠시 동안 기댈 순 있지 않을까. 그 기억으로 사람은 오늘도 생을 버텨 나간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늘이 걷어지고 우리의 발목을 에워싸던 늪지대가 양지가 될 날이 정말로 올지도 모르니까. 에디가 새로운 여정을 떠나고 정확히 20년 뒤인 2015년, 아일랜드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것처럼 말이다. 

 

▲ <데이팅 앰버> 스틸컷 ©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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