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불만족 특집|03. 후각의 결핍: 감각의 결핍을 혐오로 충족하다

영화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2006)

최나윤 | 기사승인 2021/09/01

오감불만족 특집|03. 후각의 결핍: 감각의 결핍을 혐오로 충족하다

영화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2006)

최나윤 | 입력 : 2021/09/01 [11:15]

▲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스틸컷     ©(주)누리픽쳐스

 

[씨네리와인드|최나윤 리뷰어] 시청각을 지배하는 영화가 여전히 숙제로 풀고 있는 감각이 있다면 후각과 미각이 아닐까 싶다. 촉각이야 눈과 귀를 통해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해도, 후각과 미각은 충분한 문장들로 풀고 풀어도 가닥이 잡힐락말락 하는 예민한 녀석들이다. 오감불만족 특집의 세 번째 작품으로는 이처럼 예민한 감각을 다룬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꼽았다. 시큼한 땀 냄새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향수가 된다는 이 영화는 충격적일 만치 우아하다. 아름답지만 충격적이고, 충격적이지만 아름다운 영화 속 결핍의 빈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진 걸까.

 

영화의 원작 소설은 뛰어난 후각 묘사로 극찬을 받은 명작이다. 이 작품이 재밌는 이유는 완벽한 무()와 빈틈없는 유()의 대결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그르누이는 냄새(체취)가 없다. 반면 그를 제외한 모든 것에는 냄새가 배어있다. 소설은 주인공이 배제된 냄새의 세계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마치 시각장애인에게 사과는 빨갛다를 설명하듯 말이다. 명작을 영화화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원작의 위대함을 어떻게 살려내는가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화는 소설이 묘사한 후각을 풀어내기 위해 시각적 이미지를 이용했다. 원작의 향기는 영화의 미술로 에둘러 표현되었다. 화려하고도 농염한 장면들로 시각적 쾌락을 일구어냈다. 문제는 영화의 주인공이 연쇄살인마라는 점이다. 그의 행동에, 살인의 과정에 예술적이라는 표현이 붙게 되었다.

 

<향수>는 결핍과 충족에 관한 작품이다. 영화는 내내 그르누이가 연쇄살인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친절히 풀어준다. 그르누이의 살인 행위에는 모성의 결핍과 천부적인 천재성, 그리고 그것들이 버무려진 잘못된 사랑의 갈피가 내재되어 있다.

 

▲ <기생충>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냄새는 특정한 상징성을 띤다대표적으로 <기생충>에서 기택에게서 났던 가난의 냄새가 그러했다이 영화는 향기를 사랑(본능에 가까운)으로 치환한다그 사람에게 가까이오래 머물수록 나에게 그의 냄새가 짙게 배기 마련이니 아주 그럴듯한 설정이다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밑바닥에서 태어난 그르누이는 무향 무취다악취의 세계에서 어떠한 냄새도 배지 않았다는 것은 그르누이가 갓난아기 때부터 누구의 손길도심지어는 부모의 온기도 느끼지 못했음을 은유한다무향 무취의 남자는 자신이 갖지 못한 냄새(어머니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를 다른 여성들에게서 풍기는 향기로 충족하려 한다그에게서 체취를 앗아간 신은 그 몫을 후각에 몰방해준 모양이다초월적인 후각을 가진 그르누이는 향수 제조에도 두각을 나타낸다심지어는 향수 재료에 여성의 체취를 사용하는 응용단계에까지 이른다원작 속 그르누이가 여성들의 향을 갖기 위해 향수 제조법을 이용했다면영화 속 그르누이는 그저 지상 최고의 향을 얻기 위해 여성들을 활용했다그렇게 그르누이는 전설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른다.

 

이 과정에서 살인이라는 행위를 자세하게 묘사했다는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그런데당연하다살인을 통해 향수를 제조하는 영화가 아니던가그럼 살인의 과정이 미화를 넘어 마치 예술의 경지처럼 표현되었다는 점은이 역시 당연하다미녀의 체취로 향수를 만들어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건드려보는 심오한 작품이니 말이다결국 이 모든 문제 제기는 원래 그런 영화라는 방패에 가로막혀 볼품없이 떨어진다.

 

▲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스틸컷     ©(주)누리픽쳐스

 

그르누이가 표적으로 삼은 피해 여성들은 모두 아름답게 묘사된다처녀성을 고집하던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는 매춘부까지 피해자의 범위를 늘렸다이러한 설정이 처녀성(성녀)에 대한 환상을 부정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그르누이의 목표가 성관계가 아닌 향수 제조에 있음을 알려주는 장치라는 의견도 있으나그르누이에게 후각적 페티시가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 역시 썩 시원치 않은 대답이다오히려 연쇄살인마를 향수만 보며 달려가는가만 보면 순수할지도 모르는 인간으로 포장하려 했다는 생각에 반감만 더해질 뿐이다.

 

'Misogyny', 한국말로 번역하면 '여성혐오(女性嫌惡)'이다. '혐오'라는 단어의 평면적인 의미는 어느 한 대상과 접촉하기도 꺼려지는 증오와 불쾌감으로 귀결된다따라서 여성혐오를 단순히 여성을 싫어하는 행위 내지는 현상으로 오인하기에 십상이다이 영화에는 그러한 착각이 반영되었다. ‘아름답게 묘사하면 혐오에서 벗어나 예술로 승격될 수 있는가?’라는 오랜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피해 여성들을 향한 그르누이의 호기심과 학구열얼핏 사랑의 그릇된 방식으로 포장되는 무언가는 결국 인간의 도구적 사용이라는 혐오의 일부다그러나 희생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는 세련된 연출에 감탄하기만 한다인간 본질에 대한 문제의식은 영상미에 가려져 그릇된 성질로 박제되었다.

 

▲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스틸컷     ©(주)누리픽쳐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후반부에 이르러 등장한다여기서 클라이맥스라 함은가장 충격적이고 본능적인 장면을 일컫는다그르누이는 사형수로 많은 이들 앞에 서게 된다이때 그르누이가 완성한 전설의 향수에 매혹된 사람들은 이성을 벗어젖히고 본능에 몸을 맡긴다그르누이가 아닌 그르누이가 만든 향수를 갈망한 것이다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가 창조한 하나뿐인 향수는 자신의 결점(무취)을 완벽히 보완하는 데 실패한다무릇 향수란 게 다 그러하듯 인간의 영구적 체취에까지 도달하지 못했다껍데기에 불과했을 뿐이다그르누이는 자신이 아닌 향수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여전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공허함과 회의감에 사로잡힌다권력자도 제 앞에 무릎 꿇렸던 그는 자신의 원래 자리였던 밑바닥으로 돌아간다향수를 온몸에 붓고 방랑자들의 먹이로 전락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르누이도 타인에게 있어 쾌락과 욕구를 충족시켜줄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다만 그 도구는 너무도 전지전능하여(자신들의 니즈를 완벽히 만들어내니 말이다떠받들어졌을 뿐이다향수를 만들기 위해 그르누이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들과 그런 향수를 욕망하는 사람들에게 찬양받은 그르누이두 가지 경우가 우리에게 비쳐지는 모습은 분명 다르나수단적 위치에 선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찝찝했던 기분의 출처가 뚜렷해진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대우받지 못하는 모습에 대한 불쾌함이었다.

 

그러나 관객에게 더 각인되는 것은 그르누이의 결핍일 것이다피해자들은 향수를 만들기 위한 재료였으니 당연하게 잊혀진다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에게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그 향수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혹은 그들에게서 났던 냄새는 얼마나 황홀했을까?’라는 궁금증만 안고 끝나진 않을까범행 과정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우아한 춤사위로 보지 않았다면 다행일 지경이겠다향수에 홀린 민중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자죄의 심판은 뒷전이 되고 성욕에 눈이 먼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겹쳐 보인다결국 우리는 영상미만큼이나 이성적 판단과 짐승의 욕구가 뒤얽힌 광장에 주목해야 했다영화 속 집단 나체보다는 떠오르는 일련의 사건들에 얼굴을 붉혀야 했다. ‘영화니까라는 말로 모든 것을 수용하기엔 영화가 비춘 현실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다후각의 빈자리가 메꿔지면서 오감이 완전해졌을 때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박수를 보낼 때한 번쯤은 그 자리에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채워진 혐오를 들추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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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윤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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