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숨기고 살아가는 것

세 가지 질문으로 돌아본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수진 | 기사승인 2021/09/23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숨기고 살아가는 것

세 가지 질문으로 돌아본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수진 | 입력 : 2021/09/23 [10:02]

[씨네리와인드|한수진 리뷰어] 지난 8,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라이프 사진전: 더 라스트 프린트> 전시회를 감상했다. <LIFE>1936년에 창간된 미국의 시사 사진 잡지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속 주인공의 직장이자 영화 전반의 주제와도 긴밀히 연관된 매체였다. 영화를 너무나 인상 깊게 감상했던 탓에, 전시회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가 <LIFE>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기로 했다.

 

▲ <라이프 사진전: 더 라스트 프린트> 전시회 일부분  © 한수진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영화를 감상한 이에게는 어쩌면 너무나도 익숙할, 위의 문장은 영화 속 <LIFE>지의 표어로, 실제 회사의 표어 내용에 영화적 각색을 한 표현이다. 전시회 맨 마지막 구석에서 발견했던 <LIFE>의 실제 표어는 다음과 같았다.

 

  “인생을 보기 위하여, 세상을 보기 위하여 대사건의 증인이 되고 가난한 자와 거만한 자의 거동을 관찰하자. 기이한 물건들, 기계, 군대, 집단, 정글과 달에 걸린 그림자를 보자. 수천 킬로씩 떨어진 먼 곳의 일들, 벽 뒤 방 속에 숨겨진 일들, 위험해질 일들, 남성에 의해 사랑받는 여자들, 또 수많은 어린이를 보자. 보고, 보는 것을 즐거워하자. 보고 또 놀라자. 보고 또 배우자” - 헨리 루스, 발간사 중

 

▲ <라이프 사진전: 더 라스트 프린트> 전시회 사진 일부. 뉴욕 베델 병원에서 개최된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글을 쓰고, 타자를 치거나 전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 1969  © 한수진

 

과연 이 표어처럼, 전시회 속 <LIFE>는 정말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포착한 결과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때로는 준비가 미흡했던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때로는 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을, 또 때로는 세계적인 혁명가와 예술가의 모습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내며 다양한 형태의 삶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영화의 주인공 월터의 모습은 어떠할까? 영화와 실제 <LIFE>의 표어처럼, 세상에 적극적으로 나아가 삶의 정수를 직접 느끼면서 살아가던 인물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극 초반의 월터는 위의 멋진 문장과는 영 다른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인다. 맘에 드는 이성이 같은 회사에 다니지만 직접 말을 걸기보다는 데이트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표할 정도로, 그는 몹시 소심하다. 또 다른 그의 특징은 시도 때도 없이 상상을 한다는 것인데, 심지어는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상대를 잠시 잊고 상상에 빠져들길 반복한다.

 

▲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1. 월터는 왜 상상하는가?

 

극 초반에서 월터는 애처로울 정도로 타인에게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심지어 자신도 그에 대해 명백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이는데, 이런 그의 답답함은 상상으로 표현된다. 우리는 주로 어떨 때 상상을 하는가?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이 불만족스러울 때, 즉 현실에서 결핍이 있을 때 상상을 통해 그것을 해소하게 된다. 월터의 현실은 자신이 생각해도 답답하고 맘에 들지 않는, ‘완전한 결핍의 상황이었다. 아무도 자신의 노고를 인정해 주지 않고, 심지어 새 직장 상사에게는 머저리로 낙인찍힌 현실에서 그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월터 자신을 스스로 머저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데이트 프로그램에 소개할만한 특별한 경험도, 내세울 것도 없다며 자신을 한심하게 규정해 버리고, 그저 평범한 누군가로 생각해버리면서 자신이 가진 특별함을 찾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지 못하고 점차 위축된 월터는 자신을 조롱하는 상사에게 직접 대꾸하기보다는 상상에서의 결투를 택한다. 또 자신이 동경하는 숀 오코넬과 비슷한 모습으로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탐험가로도 변신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직장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인재였고, 특히나 숀 오코넬이라는 거장 사진작가가 그를 인정할 정도로 출중한 능력을 갖추기도 했다. 또한 영화 초반부의 새로 온 인사 조정 담당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모두 월터에게 호의적이다. 자신만 모를 뿐, 그는 자신이 규정한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자신의 일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강한 책임감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상상과도 같은 현실을 월터가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월터가 그린란드로, 또 아이슬란드로, 히말라야로의 여정을 떠난 것은 결코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에게 내려온 마지막 임무를 다하기 위함에서였으며, 결국 그렇게 떠난 여정은 자신도 모르는 새 월터를 바꾸어 놓았다.

  

▲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2.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온갖 고생을 한 월터는 우여곡절 끝에 숀을 찾아내고야 만다. 히말라야 중턱에서 수일을 기다리며 유령표범을 찍으려고 했던 숀은, 카메라 앵글에 나타난 표범을 그저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난 개인적으론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우선 사진을 찍는 행위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진기를 중심에 세워두고, 사진기가 찍는 대상인 피사체(객체)와 그것을 찍고 있는 나, 즉 주체가 구별된다. 주체가 객체를 찍는 것은 객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셔터를 누르는 것은 주체로부터 객체를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객체와 주체는 구별되어버리는 것이다.

 

<LIFE>의 표지 모델이라는 것도 그러하다. 그간 이 잡지의 표지 모델이었던 유명인들 역시 일반 대중, 즉 주체들이 생각하기에 뭔가 멋지고 특별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객체로서 대중들과 구별되는 위치라는 것을 각인시키면서 사진 속에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진이란, 객체를 현실 세계(주체의 세계, 일반적인 세계)에서 분리해내는 작업이 된다. 그러므로 사진을 찍는 동안에는 객체와 주체가 실제로는 한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갔는데, 공연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를 찍는행위에 집중해 그 순간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경험을 떠올려 보자.

 

하지만 숀 오코넬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유령표범을 찍지 않고 그냥 보내버렸다. , 유령표범이라는 객체와 찍고 있는 자신(주체)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의 공간에 머무르게 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유령표범을 자신과 다른 차원에 있다고 간주하지 않고, 자신과 같은 공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온전히 느끼기 위한 행동이었다. 유령표범의 사진을 찍어 그것을 우상시하기보다는, 자신의 세계에 둠으로써 그와 자신을 비롯한 모든 것이 아름다운 세상 속 일부분이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 숀은 유령표범을 놓아준 것이 아닐까.

 

▲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3. 월터가 25번 필름의 주인공인 이유는 무엇일까?

 

<LIFE> 마지막 표지는 반드시 25번 필름으로 해야 한다는 숀의 요구에 따라 잃어버린 이 필름을 찾기 위해 고생했던 월터. 노력 끝에 찾아낸 필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월터 자신이었다.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은, 이처럼 그간 <LIFE>에 헌신해 왔던 직원들을 위한 헌정이었다. 월터를 25번 필름의 주인공으로 설정해 객체화시켰다는 것은 곧 그를 우상화했다는 말이 되고, 일부러 셔터를 누름으로써 숀과 월터를 분리해 그간 <LIFE>의 일원이자 자신의 동료로서 열심히 일해줬던 월터에 대한 존경을 나타낸 것이 된다.

 

25번 필름은 험난한 여정을 떠나 멋있게 변한 월터가 아닌 언제나처럼 고군분투하며 일을 하던, 하지만 자신은 그 가치를 몰랐던 월터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감추고 살아가며, 심지어 스스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삶의 대부분을 살아간다. 어쩌면 인생이란 우리 내면의 비범함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발굴해 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결말에서의 월터는 이제는 상상하지 않는다. 상상보다 더 상상같은 현실을 겪은 그에게 있어서, 더 이상의 상상은 무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상상의 대상이었던 셰릴과의 데이트를 이룬 그 시점에서, 현실에서의 결핍을 완전히 해소한 월터는 그 누구보다도 특별하고 멋진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자기 자신의 신념이 자신을 가두는 가장 무서운 감옥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을 깨고 나아가는 데는 수많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자신을 직시해야만 하는 고통과 두려움을 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인내의 결과는 분명 달콤할 것이다. 서두에 이야기했듯이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의 숨겨진 비범함을 찾아내는 것은 그 어느 것보다도 달콤한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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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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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9.2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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