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령의 화가가 그린 묘령의 작품

영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모든 것

한수진 | 기사승인 2021/09/24

묘령의 화가가 그린 묘령의 작품

영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모든 것

한수진 | 입력 : 2021/09/24 [10:45]

[씨네리와인드|한수진 리뷰어] 미켈란젤로, 고흐, 마네와 모네, 달리와 피카소. 세상에는 수많은 미술가가 있고, 실루엣만 보더라도 작가와 제목 모두를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작품도 많다. 그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있고,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있다. 그런데 여기, '모나리자'만큼이나 유명하지만 누가 그렸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작품이 있다. 바로 오늘 다룰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이다.

 

▲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캔버스에 유채,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 소장  © //dbscthumb-phinf.pstatic.net/2765_000_74/20181118182706096_02DA9S67O.jpg/57744.jpg?type=m250&wm=N

 

미술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꼽히기도 하는 그림 속 소녀는 이름도, 나이도, 국적도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 한 인물이다. 이 소녀만큼이나 미스터리 한 인물이 바로 작가 '요하네스 베르네르'인데, 생애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별로 없으며 남긴 작품의 수가 37점뿐이라 많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했다. 베일에 가려진 화가가 그린 사연 있어 보이는 작품. 소설이 되기에 충분한 소재가 아닐까?

 

실제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라는 제목의, 그림의 뒷이야기를 담아낸 소설이 1999년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이후 2003년에는 소설을 바탕으로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였다. 묘령의 화가 베르메르 역에는 콜린 퍼스가, 그만큼이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델, 흐릿 역에는 스칼렛 요한슨이 캐스팅되었다. <킹스맨>, 그리고 <어벤저스 시리즈> 속 강인한 두 배우의 현재 이미지와는 매우 상반되는 캐릭터를 감상하는 것도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과 더불어 묘령의 작가 베르메르와 그의 작품 세계, 그리고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작품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17세기의 네덜란드 델프트의 풍경과 영화 곳곳에 배치된 베르메르의 작품들을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작품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 영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영문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영화의 줄거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큼, 영화의 줄거리 역시 소설과 맥을 같이 한다. 영화 속에서 그림의 모델은 베르메르 가족의 하녀로 일한 '흐릿'이라는 이름의 소녀이다. (소설에서는 '그리트'라는 이름을, 영화에서는 '흐릿'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델프트 출신의 소녀 흐릿에게는 가난한 집안의 첫째로, 타일 제조 기술자로 일하던 아버지가 사고로 시력을 잃으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 화가 베르메르는 작업실을 청소할 하녀를 구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작품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 인물을 원했다. 베르메르 집안의 하녀로 고용된 흐릿은 정식 미술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빛과 색채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 베르메르의 눈에 띄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하녀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베르메르의 아내는 그녀와 베르메르의 사이를 의심하고 질투하며, 베르메르의 딸 중 하나인 코넬리아는 흐릿을 괴롭히고 주인에 밉보이게 하려 애쓴다. 게다가 베르메르의 후원자는 수시로 그녀를 성추행하지만, 하층민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베르메르와 흐릿의 관계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데, 베르메르는 그녀를 단순히 재능 있는 젊은 소녀로서가 아닌 뮤즈이자 여자로 보기 시작한다. 흐릿은 푸줏간집 아들인 페터와 연애를 시작하지만, 어쩐지 그녀의 마음도 페터보다는 베르메르에게 향하는 것 처럼 보인다.

 

어느 날 베르메르의 후원자는 흐릿과 자신을 모델로 베르메르에게 그림을 그릴 것을 요청한다. 이는 곧 성적인 착취를 의미했고, 베르메르는 후원자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지만 한 프레임에 둘의 모습을 담는 것 대신 흐릿의 단독 초상화를 그리기로 한다. 그림에 좀 더 관능적인 느낌을 추가하기 위해 베르메르의 장모는 직접 딸의 진주 귀고리를 그리트에게 건네고, 베르메르는 이런 흐릿을 뮤즈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완성해 나간다. 하지만 그림이 완성된 후, 그리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던 베르메르의 아내는 그림을 본 후 외설적이라며 오열한다. 이를 계기로 베르메르의 집에서 쫓겨난 흐릿. 시간이 얼마 지난 후 어느 날, 그리트는 베르메르에게서 온 선물을 풀어 보고 흐릿한 미소를 짓는다.

 

원작 소설과 영화의 결말 부분이 약간 다르다. 소설에서는 그리트가 베르메르의 집에서 쫓겨난 이후 푸줏간집 아들 페터와 결혼해 아이를 낳아 살다가, 베르메르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다시 베르메르의 집에 찾아간다. 베르메르의 아내는 그가 유언으로 진주 귀고리를 그리트에게 줄 것을 부탁했다고 말하며 그녀에게 전한다.

 

미술 작품을 다룬 영화답게 전반적으로 아름다운 색감과 영상미를 느낄 수 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두 배우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이다. 특히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누고 예술적으로 교감하는 두 캐릭터 간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영화를 관통하는 큰 줄기로 작용하며 극의 재미를 더해준다. 이번에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다른 이야기들을 살펴보며,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의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보도록 하자.

 

▲ 영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누구인가?

 

미스테리한 예술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라고 하는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델프트에서 태어나 일생을 그곳에서 활동하다 세상을 떠났다. 1653, 그는 21세의 나이로 '성 루가 길드'라는 화가 조합에 가입했는데, 당시에는 '도제 시스템', 즉 장인 아래에서 일하며 6년 이상의 수습생 시기를 거쳐야 했기에 늦어도 15세 때부터 그림을 배웠으리라고 추정된다. 이후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점포를 이어받아 그림을 매매하거나 감정하는 업무를 하며 여관도 운영했고, 방직공 일도 했다고 전해진다.

 

1672년에 네덜란드와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미술 시장이 무너져 주요 수입원이었던 그림 매매 사업이 어려워지며 경제적으로 몹시 궁핍해졌으며, 1675년에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향년 43세의 나이였다. 생전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정밀한 구도의 그림을 밝고 깊은 색채로 그린 거장으로 재평가되었으며, 그중에서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우유를 따르는 여인>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상인으로서 활동했던 경험 때문인지 상인 계층의 일상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 많으며, 청금석을 주원료로 한 울트라마린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그의 작품에는 청색 계열의 색이 많이 보이는데, 재료가 보석인 만큼 몹시 비쌌기 때문에 재료비로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그 과정에서 진 빚도 많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울트라마린은 여전히 가장 비싼 원료 중 하나로 현재 kg2,000만 원을 호가할 정도의 최고급 원료라고 알려져 있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에서 소녀가 쓰고 있는 터번의 색을 칠한 염료도 울트라 마린이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작품 중 현존하는 수는 37점이다. 남은 작품만을 기준으로 보면, 1년에 고작 두어 점 정도 그림을 그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 더 존재할 수는 있으나, 이는 베르메르가 예술 시장을 위해 작업했다기보다는 예술 후원자들을 위해 작업했으리라는 추측을 낳게 했다. 특히 12명의 아이를 가진 대가족의 가장이 그만큼의 그림으로는 부양의 의무를 지킬 수 없으므로, 상술했듯 그림 외의 생계 수단으로 생활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의 그림은 색조가 몹시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에서 조도가 약간만 달라져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색감'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작품 초창기에는 명암의 대비를 뚜렷하게 표현하였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이를 완화하여 더욱 부드러운 색채감을 보여준다. <편지를 읽는 여성>, <우유를 따르는 하녀>, <레이스를 뜨는 소녀> 등 주로 자신의 작업실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 많으며, 풍경화보다는 정밀화와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

 

▲ 영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스틸컷  © 네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작품 이야기

 

그렇다면 작품의 모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미술사에서 매우 높은 위상을 자랑하며, 그만큼 이 여인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일단 그녀의 옷차림을 살펴보자. 머리에 쓰고 있는 이국적인 터번과 허름한 옷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녀는 하층 계급이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소설과 영화 속 '그리트'가 하녀로 그려진 배경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 후반부, 베르메르의 아내가 완성된 그림을 보고 '외설적이다'라고 말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어떤 부분이 외설적인가? 21세기적 시각으로 본다면, 아내의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먼저, 그녀의 '머리카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극이 진행되는 대부분 그리트는 그녀의 머리를 두건에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 페터가 머리카락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때에도 완강히 거부하고, 그림의 모델이 된 이후 주인인 베르메르가 두건을 벗으라고 했을 때마저 몹시 머뭇거린다. 17세기, 여성의 머리카락은 욕망과 충동의 상징으로서 이를 드러내는 것은 매우 금기시되었다. 그리트가 베르메르 앞에서 머리카락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몹시 외설적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상징은 바로 '귀고리'에 있다. 이 시대에는 인간의 오감 중 청각이 가장 귀한 감각으로 여겨졌는데, 귀는 곧 신의 말씀을 듣는 감각기관이기에 더 신성시되었다. 종교적으로 볼 때 남성이 아내의 신체에서 처음으로 갖게 되는 부분이자 부인이 충실히 지켜야 할 부분도 역시 귀였다. 성서에서 말하는 동방의 진주처럼 정결하고 감미로운 말이 아닌 이상, 그 어떤 말이나 소리도 귀에 침투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를 염두에 둔다면, 귀고리를 착용하기 위해 귀를 뚫을 때 눈물을 흘리던 그리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귀고리가 '진주'로 만들어졌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 진주는 당시 양면적인 의미가 있는 보석으로, 조개가 이물질의 고통을 받아들여 값진 물건으로 승화시키는 것에 빗대어 정절을 상징한 동시에 허영과 사치를 경고하는 부정적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이런 양가성이 오히려 그림 속 소녀의 이미지를 더 관능적이고 외설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가 작품활동을 하며 그렸던 수많은 일상화와 차별되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만의 구도 역시 이 작품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다. <우유 따르는 여인> 등의 그림을 보면, 감상하는 사람은 그림 속 주인공의 일상을 보고 있지만, 철저히 관찰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그림 속 여인은 직접적으로 관객과 눈을 맞춘다. 어딘가 슬픔 어린 눈망울과 말없이 살포시 벌린 입술까지, 이 모든 요소가 수백 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 그림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 영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최근에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당대 유행하던 '트로니'의 한 종류라는 이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대에는 '트로니'(이국적이며 신비로운 두상 초상화)를 습작으로 그리는 화풍이 존재했는데, 트로니는 실존 인물이 아닌 작가의 상상에 의한 인물을 그린 것이므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말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허구의 인물이었을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묘령의 화가가 그린 이 그림의 신비로움은 잊히지 않고 우리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다시 영화를 틀어서, 영화의 장면들을 제대로 곱씹어 보자.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작품 감상의 깊이를 더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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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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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9.2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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