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후를 내다본 '블레이드 러너'의 철학적 함의 ①

영화 '블레이드 러너 1982'

오승재 | 기사입력 2019/06/19 [10:00]

20여년 후를 내다본 '블레이드 러너'의 철학적 함의 ①

영화 '블레이드 러너 1982'

오승재 | 입력 : 2019/06/19 [10:00]

 

▲ 영화 '블레이드 러너 1982'     © 워너 브라더스

 

현대사회에서는 인공지능이 점차 발달하면서 보다 효율적이면서도 인력을 줄일 수 있다는 낙관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로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제할 수 없을 경우 인간의 설자리를 잃게 만들 수 있다는 불안감이 점차 고조되었다. 1982년 제작된 <블레이드 러너>는 포스트휴먼이 초래할 위기를 이미 예견했다. 영화는 미래의 재현이다. 특히SF영화는 현 사회를 냉철히 고찰한 후 미래 사회에 대한 예측 및 전망을 제공하는 당대사회의 은유(Metaphor)이다. 1982년 미국은 외연적으로 당시 신자유주의 정책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로 스테그플레이션을 벗어나 호황을 맞이한 상태였지만, 무자비한 개발로 인한 환경문제, 빈부격차 심화와 사회보장제도 축소 등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었다. 특히 자연정복 결과로 얻어낸 기술발달 진보 뒷면의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이상 의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았다. 인간은 특정 계급이 특정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였다. 스콧 감독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특정 시공간인 201911LA에 대입하여 인류의 참혹한 미래를 표현했다. 개봉 당시 아메리칸 드림이 팽배했던 미국사회에서 디스토피아(dystopia) 세계관은 공감을 얻지 못하여,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외면 받았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팽배로 사회의 중심축이 자본이 되면서 인간소외가 구조화된 비극의 시대를 맞이했다. 이 과정에서 스콧감독이 미래사회를 상상하며 제시한 기표 중 상당수가 현실화되며 해당 영화가 던지는 인간에 대한 경각심은 많은 함의를 지니게 되었다.

 

 

인간의 정체성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성된 인조인간 레플리컨트(Replicant)가 폭동을 일으키며 지구로 침입하자 인간 블레이드 러너 릭 데커드가 이들을 은퇴(Retirement)시키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초반부 인간과 기계 간 이항대립을 구성하여 이들의 행동과 의미체계를 구별했다. 레플리컨트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가진 존재이며 외관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수명이 4년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지구의 황폐화로 인한 우주개척, 행성 식민지 작업, 성 노예 등 3D 직종에 배치시킨다. 인간은 기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만 하에 복제인간을 하나의 도구로만 치부한다. 레플리컨트의 짧은 수명은 지극히 인간의 이익 중심적 사고에서 기인한다. 인간의 도구로만 여겨지는 불평등한 처우에 불만을 가지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시기에 도달할 때쯤 사망에 이르게 하려는 의도와 더불어 수요적 측면에서도 짧은 수명 탓에 고객들의 지속적 소비를 촉진하기 위함이다.

 

 

▲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는 임무를 가진 인간 데커드     © 워너 브라더스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는 인간의 삶에 위협요소가 될 수 있는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충실히 수행한다. 이때 레플리컨트를 살해하는 행위를 은퇴로 지칭한다. , 이들은 인간의 상징계에 영원히 융화되지 못할 '타자'이다. 데커드가 대면하는 레플리컨트는 총 4명인데, 이들의 행동과 태도는 기존에 부여된 기계라는 기표의 기의와 대조된다. 인간에 복종하는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인간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졌던 상호 간 감정교류와 가족의 역할, 사랑행위의 주체가 된다. 먼저 레이첼은 인간의 특질인 사랑을 위한 희생을 감행하는 레플리컨트로 자신을 인간으로 믿었으나 보이스-캄프 테스트(VOIGHT-KAMPFF Test)로 타이렐 회사의 산물임을 자각하며 좌절한다. 레온은 끈끈한 가족애를 지닌 레플리컨트로 자신의 동료 조라가 살해되는 씬에서 그녀를 살해했음에도 무덤덤한 인간 데커드와 달리 사망을 목격한 그는 극도의 분노를 표출한다. 프리스와 로이는 상호 간 사랑이라는 감정을 교류하는 커플이다.

 

특히 프리스는 타이렐 회사 직원에게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을 인용한 대사를 건대며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데카르트는 비인간과 확연한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인간의 특성을 정의하였는데, 레플리컨트 또한 생각하는 주체이다. 오랫동안 인간을 규정해오던 데카르트의 정의는 근본적인 오류에 직면하게 되었다. 프리스의 연인 로이는 프리스가 데커드에 의해 살해당하자 눈물을 흘리며 분노의 감정을 느끼며, 더 나아가 데커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동정이라는 감정이 그를 지배하게 된다. 반면 복제인간을 생명제로 존중하지 않고 레플리컨트를 살해하면서도 죄책감이 전혀 없어 보이는 데커트와 레플리컨트의 존재론적 위기에 대해 무지한 창조주 타이렐 회장의 모습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는 물음을 던지며 인간적 면모를 많이 함유한 레플리컨트보다 비인간적으로 비춰진다.

 

▲ 테스트를 통해 인간과 로봇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데커드     © 워너 브라더스

 

인조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기의의 미끄러짐을 반복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인간과 기계의 구분의 모호함을 자아낸다. 해당 과정에서 블레이드 러너’, ‘’, ‘경험은 인간 사회가 규정한 기계에 대한 기의를 고정하여 기표의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anchoring point이다. 경찰 블레이드 러너는 적극적으로 인간과 기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며 레플리컨트를 은퇴시킨다. 그는 레플리컨트를 살해하는 행위를 단순히 은퇴로 지칭하며 인간 상징계 진입을 억제하였으며,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만 레플리컨트를 판단하여 기계는 영원한 인간의 도구임을 강조한다. 레플리컨트를 구별하는 보이스-캄프 테스트에서의 판단기준은 이다. 질문을 던진 후 동공의 흔들림과 홍채 반응을 분석한다. 레이첼이 테스트를 거치며 레플리컨트임을 자각할 때 좌절에 빠지며 레이첼의 눈이 갈색에서 주황색으로 변하는 씬은 인간과 기계가 눈을 통해 구별됨을 명확히 한다. 마지막으로 경험은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가장 큰 구별점이다. 인간은 삶을 영위하며 스스로 경험을 축적하지만 레플리컨트들은 인간이 주입한 경험에 의존한다.

 

하지만 레플리컨트는 위의 Anchoring Point을 통해 자신이 인간의 산물임을 자각하며 정체성에 대한 지속적 고찰을 행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현존재(Dasein)이며 죽음을 향하는 존재(Being-towards-the-end)이다. 우리는 한정된 삶 속에서 탄생과 죽음까지의 필연성을 지니며, 자신의 유한성에 대해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 해당 불안을 느끼면서 인간은 존재에 대한 회의 및 의문을 가지며, 자신의 본질을 발견한다. 레플리컨트는 자신을 상징계에서 은퇴시키려는 데커드의 존재와 자신에 부여된 4년이라는 짧은 수명으로 인해 항상 죽음이라는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힌 채 삶을 영위한다. 레플리컨트 로이는 수명연장을 위해 자신을 제작한 타이렐 회장을 찾아가나, 철저히 인간의 이기주의적 이익추구를 위해 탄생한 본인의 존재를 재확인하며 죽음에 대한 필연성을 재차 확인하고 평소 자신들이 아버지라고 여기던 타이렐 회장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자신의 죽음을 자각, 수용하며 추격의 대상이었던 레플리컨트는 데커드를 역으로 추격하는 능동적 주체가 된다. 이후 로이는 데커드를 죽음직전까지 내모는데 성공하지만 낭떠러지에 매달린 데커드를 구하며 인간보다 뛰어난 윤리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로이는 수명은 끝에 도달하게 된다. 로이는 굳어가는 자신의 손을 계속 사용하기 위해 손에 못을 박는다. 이와 더불어 성당 종소리 BGM이 흘러나온다. 로이의 형상은 예수의 미메시스(Mimesis)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행복한 삶의 영위를 욕망하며 친구와 연인을 살해한 주체를 구원한 그는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인간상이다. 로이는 곧 예수이며, 그가 서양 인류의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정도의 숭고함에 도달하였음을 의미한다.

 

, 레플리컨트는 현대인의 환유(Metonymy)이다. 현대인들은 대타자의 욕구충족에만 집중하고 자신의 욕구로 체화한다. 특정 목표를 왜 수행해야 하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할 여유도 없이 기계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를 성취하지 못할 시 대타자와 지속적 갈등이 초래되며 사회에서 낙오될 확률이 농후하다. 이는 타이렐이 레플리컨트를 제작한 궁극적 이유와 상당히 유사하다. 레플리컨트는 인간이 부여한 업무만 기계적으로 수행해야하며, 인간과 다른 처우에 불만을 가질 시 더 이상 상징계에서의 존재 가치가 없어져 은퇴 당한다. 데카르트는 불완전성을 자각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요소를 의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데커드도 외형상으로 구분할 수 없는 레플리컨트를 구분하고 은퇴시키기 위해 모든 인간을 의심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한 의심과 고찰은 누락한다. 영화상으로 레플리컨트는 인간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주체이다.

 

 

편에서 계속

 

[씨네리와인드 오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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