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후를 내다본 ‘블레이드 러너’의 철학적 함의 ②

영화 '블레이드 러너 1982'

오승재 | 기사입력 2019/06/19 [11:00]

20여년 후를 내다본 ‘블레이드 러너’의 철학적 함의 ②

영화 '블레이드 러너 1982'

오승재 | 입력 : 2019/06/19 [11:00]

▲ 조명과 샷을 통해 극심한 양극화를 효과적으로 표현     © 워너 브라더스


 

시각적 효과와 서사

 

<블레이드 러너>는 스콧감독이 상상한 미래사회가 인간들의 삶에 어떻게 접목되고 재현되는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2019LA의 시공간을 경험해본 적 관객들은 스크린에 의존하며 미래사회를 파악한다. 레이거노믹스가 초래한 가장 큰 문제는 빈부격차와 사회낙오자에 대한 미비한 복지다. 비관적 미래를 재현하기 위해 느와르 영화에 주로 쓰인 기법인 Low key 조명을 통해 답답하고 불안한 미래사회를 강조한다. 그리고 도입부 롱 샷으로 미래사회의 형상을 시각적으로 제공한다. 두 개의 고층 피라미드 구조의 타이렐 기업 빌딩이 강한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다. 빌딩의 표면은 LED 및 칩으로 형성되어 2019년 기술발전의 결과를 보여줌과 동시에 복잡한 부속품 및 환경오염을 조명하며 황폐된 지구의 모습을 보인다.

 

환경의 유한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자비한 개발은 지구의 황폐를 초래하여 어둠으로 가득한 지구에는 빈민층만이 속하게 되었는데, 해당 영화는 관객에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을 부여해 먼 미래에 대한 이질감을 완화함과 동시에 자본주의의 폐해를 강조한다. LA는 오리엔탈화된 도시로 변모하였으며 하층부에는 동양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카메라도 하이앵글로 화려한 미래사회를 비춘 후 점차 아래를 비춘다. 상류층이 우주, 피라미드 상층으로 옮겨간 반면 하층민은 어둠만이 남은 하단부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공간은 지독하게 폐쇄적이다. 로우키 기법과 폐쇄적 공간은 현실과 자본주의 구조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우리 미래에 대한 은유이다.

 

 

▲ 1인구도로 부각되는 인간의 비인간성과 2인구도로 표현되는 레플리컨트의 인간적 면모    

© 워너 브라더스

 

또한 샷(Shot)을 통해 인간의 비인간성, 레플리컨트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했다. 인간의 경우 1인 구도로 카메라에 담아내어 자본주의가 초래한 주체성 상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강조된 반면, 레플리컨트들은 대체적으로 2인 구도로 구성하여 그들의 상호작용과 끈끈한 우애를 강조했다. 특히 레플리컨트를 살해한 후 1인 구도에 잡힌 데커드는 무자비하며 무서우리만큼 무덤덤하지만, 살해의 대상인 조라와 프리스가 데커드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이 슬로우되어 인간의 이익 중심적 사고가 초래한 생명의 무고한 죽음 및 처량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아리스토텔레스 Poetic을 토대로 봤을 때 블레이드 러너는 비극(Tragedy)의 서사구조를 체계적으로 갖춘 영화이다. 특히 복합플롯(Complex Plot) 미메시스(Mimesis), 고통(Pathos)를 통해 관객들에게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했다. 해당 영화는 레플리컨트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Serious Drama이며 처음(beginning)과 중간(middle)과 끝(end)의 연대순 이야기형태를 보인다. 이때 캐릭터가 불행에 빠지거나 절망하는 인지(anagnorisis)와 반전(peripeteia)의 요소를 삽입하여 관객들에게 연민(Pity)와 공포를 유발한다. , 레플리컨트가 무지의 상태에서 인지의 상태로 전환되는 anagnorisis로 인해 운명이 갑자기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는 reverse가 이뤄졌다. 자신을 다른 인간과 동일한 존재라고 여기며 살았으나 데커드의 추격, 삶의 유한성, 보이스-캄프 테스트와 자신의 기억이 주입되었음을 인지하며 극도의 불안감과 더불어 불행에 빠진다. 이를 통해 관객은 부당하게 불행을 겪는 레플리컨트를 보며 관객들은 연민(Pity)을 느끼며, 은퇴당하는 레플리컨트의 불행이 인간의 환유 혹은 인간의 발전체임을 자각하는 순간 두려움이 초래된다. 또한 자신에게 영화 속 일이 실제 벌어지지 않았음을 안도하면서, 정서적인 위안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있는 완결한 행동 모방(Mimesis)은 비극의 필수적 요소이다. 레플리컨트의 미메시스는 미래사회의 비관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매개체이다. 레플리컨트는 복제품(Replica)에서 유래된 인조인간으로,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며 인간이 되기를 욕망한다. 인간의 산물 레플리컨트는 죽음의 두려움, 욕망의 결핍,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데, 이는 역으로 인류가 맞이할 비관적 미래의 미메시스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는 지속적인 과학 및 산업의 진보와 발달을 이뤄낸 경이로운 시대를 의미하는 한편, 사회의 중심축이 자본이 되면서 인간소외가 구조화된 비극이 초래되었다. 레플리컨트가 겪는 고통(Pathos)은 곧 인류가 맞이할 고통이다.

 

 

 

정신분석학적 함의

 

▲ 인간성을 지속적으로 상실하며 눈물을 보이는 레플리컨트 레이첼     © 워너 브라더스

 

<블레이드 러너>에서 레플리컨트들은 더 이상 인간에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이분법적 기호는 모호해지고, 인간과 레플리컨트 간 통념적 구분이 이중으로 뒤틀린다. 인간은 레플리컨트임을 자각하지 못한 레플리컨트이다. 자신이 레플리컨트임을 입증하는 데커드 앞에서 한없이 낙담하는 레이첼에서 블레이드러너가 궁극적으로 내포한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테스트를 거치며 레플리컨트는 인간성을 상실하며 절망을 겪는데, 인간이 될 수 없음을 자각한 후에도 인간이 되고자하는 무한한 욕망을 추구한다. 또한 상징적 질서에 종속되는 주체화(Subjectivity)’에서 벗어나 자신(Self)의 존재에 대한 지속적 고민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한다. 반면 데커드는 타이렐 회장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체화하여 상징계에만 충실한다. 따라서 인간에 의해 주입된 기억을 활용하여 자신의 개인 신화를 창조하는 레플리컨트는 인간보다 명확한 정체성을 지닌다.

 

초자아(Super Ego)는 사회적 맥락에서 영향을 받은 전통적 가치관, 사회규범에서 내제되어 도덕과 양심의 기능을 수행한다. 데커드는 신자유주의의 맥락에 놓였던 캐릭터이다. 복지의 미비, 빈부격차로 인한 낙오자가 속출되는 가운데 대타자의 욕망을 체화하여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남았다. 타이렐의 이익에 기여하는 행위가 자신의 욕망이 된다. 그래서 레플리컨트를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행위는 정당화되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레플리컨트는 인간과 동일한 존재라는 높은 자아 이상(The ego ideal)을 갖추고 있었으나 인간과 다른 타자임을 깨달으며 절망에 빠졌었다. 하지만 자기 욕망과 자신(Self)이 누구인가에 대해 꾸준한 고찰을 행함과 동시에 대타자인 아버지 타이렐 회장을 살해하며 대타자의 욕망에서 해방되었다. 순수한 주체가 된 레플리컨트는 인간보다 훨씬 높은 도의적 기능을 수행했다.

 

 

 

인간과 기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

 

현재 알파고와 시리(Siri)와 같은인공지능(Artificial Inteligence) 발달은 인간의 질 높은 삶을 보장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프로그래밍에 의한 완전한 통제가 전제되어있다. 로봇 스스로 사고를 하고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는 인공의식(Artificial Consciousness)을 갖추게 된다면, 인간과 로봇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블레이드 러너에 제시된 바와 같이 인간이 로봇을 통제하고 우월한 존재라는 안일한 생각만을 가진다면 로봇의 지배를 받을 수 있는 위험한 단계까지 도달할 수 있다. 라캉은 the conscious and unconscious is structured like a language” 라고 주장했다. 이때 무의식은 언어를 통해 만들어지고 언어의 구조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는 가정 하에 로봇이 언어적 구조를 갖추게 된다면 의식을 갖출 수 있다는 생각에 놓인다. 이에 미국 인문학자 그렉 램버트(Gregg Lambert) 교수는 인간의 알고리즘과 기계의 알고리즘은 명확히 달라 현재로서는 불가능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거듭된다면 충분히 구현될 여지가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간과 기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기보다 상호보완관계로 인식하고 포스트휴먼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야할 시점이다.

 

 

우리는 상징계에서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미, 학벌, 명품, 차 등의 유사한 욕망을 추구한다. 본인이 진정 원하는 욕구가 아닐지라도 대타자의 욕구를 성취하도록 강요받는다. 이를 성취하지 못할 시 사회에서 우리는 부정적인 응시를 받는다. 사실 레플리컨트와 같이 상징계의 억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대타자인 가족의 욕망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고 최선을 다할 의지가 있다면 자신의 욕망을 피력해보는 강단은 필요하다.

 

[씨네리와인드 오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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