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내 못 털어놓고 SNS서 이중생활, '해피엔드' 속 가면 쓴 인간들

[프리뷰] 영화 '해피엔드' / 6월 20일 개봉예정

김준모 | 기사입력 2019/06/19 [18:30]

속내 못 털어놓고 SNS서 이중생활, '해피엔드' 속 가면 쓴 인간들

[프리뷰] 영화 '해피엔드' / 6월 20일 개봉예정

김준모 | 입력 : 2019/06/19 [18:30]

현대사회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와 반(反)권위주의이다. 다원주의는 다름을 인정하고 다원적, 주관적인 것을 인정한다. 다원주의를 통해 현대사회는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반권위주의는 지적 엘리트들의 권위적, 비민주적 방식을 지양하며 특정 집단의 진리나 타자를 지배 대상으로 보는 시선을 견제한다. 두 번째는 자기표현의 시대이다. SNS 등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개인은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자신에 대해 소개할 수 있다.

 

▲ <해피엔드>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이를 잘 보여주는 매체가 유튜브 그리고 개인방송이다. 유튜브를 통해 지식은 더 이상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아마추어들의 놀이터가 되었으며 개인방송은 한 개인이 지닌 끼와 재능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소통의 문을 넓히고 솔직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사회는 여전히 위선적이고 이중적이다. 거장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전혀 '해피'하지 않은 이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 <해피엔드>를 통해 가면을 쓴 인간들의 혐오스러운 모습을 조명한다. 

  

프랑스 칼레 지역의 부르주아 '로랑' 가문에 어린 소녀 '에브(팡틴 아흐뒤엥)'가 다시 일원으로 합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에브를 중심으로 각 가족이 숨긴 비밀을 파헤친다. 하네케 감독은 이 비밀을 SNS를 통해 더욱 냉철하고 신랄하게 담아낸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개인방송 화면으로 시작되는 도입부에서는 어머니가 먹는 우울증약을 에브가 자신이 키우는 햄스터에게 먹인다. 뒤이어 어머니가 약을 먹고 정신을 잃고 소파에 누워있는 모습을 촬영하는 걸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에브는 채팅창을 통해 아버지와 이혼 후 짜증이 늘어난 어머니에 대한 불만과 자신이 겪는 불안을 드러낸다. 이 도입부만 보았을 때 에브는 잔인하고 냉혈한 소녀처럼 느껴진다. 이브의 캐릭터성을 통해 잔혹한 혹은 슬픈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다. 그리고 아버지 토마스(마티유 카소비츠)를 따라 로랑 가에 들어간 에브는 사랑이 받고 싶고 행여나 자신이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하지만 에브는 그런 마음을 쉽사리 표현하지 못한다.

 

지식인의 위선-이중성 풍자하는 하네케의 <해피엔드>

 

에브가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로랑 가문이 지닌 위선 때문이다. 아버지 토마스는 SNS를 통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 그의 아내 아나이스(로라 베린덴)는 에브를 향해 적대심을 표한다. 그녀가 에브에게 보이는 과민반응이나 구겨진 표정이 이를 증명한다. 에브는 토마스와 아나이스 사이의 아기를 보며 아기 때 죽은 오빠를 떠올린다. 에브는 아기를 좋아하고 아기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아나이스와 또 바람을 피우는 토마스의 모습은 다시 버림받을 수 있다는, 자신처럼 아기도 불행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을 지니게 만든다. 

  

토마스의 누나인 앤(이자벨 위페르)은 공사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인부가 다친 문제 때문에 곤혹을 겪는다. 그 곤혹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아들 피에르(프란츠 로고스키) 때문이다. 그는 과격하고 거칠다. 사고 현장에 온 감독관에게 보여주는 그의 태도는 앤을 곤란하게 만든다. 앤은 회사에서 중책을 맡고 있지만 직위에 어울리지 않게 행동하는 피에르가 불만이다. 반면 피에르는 애정 없고 차가운 앤의 태도에 불만을 품는다. 그는 피해자 가족을 만나러 갔다 폭행을 당한 자신을 오히려 나무라는 어머니의 태도에 염증을 느낀다.  

 

▲ <해피엔드>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하네케 감독은 정보화 사회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이자 산물인 SNS를 통해 현대사회의 위선과 이중성을 꼬집는다. 딸과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는 토마스는 페이스북 메신저로 다른 여자와 정열적이고 야한 대화를 나누고 에브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만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식탁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지만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형식적인 대화와 시선은 가면을 쓰고 서로를 응시만 하는, 막상 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표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위선과 이중성에 반응을 보이는 이가 로랑 가문의 가장 조르주(장-루이 트린티냥)이다. 조르주는 자살을 꿈꾼다. 그는 많은 부를 지니고 있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불편함도 외로움도 없을 것만 같은 그이지만 허세와 위선으로 가득 찬 가족의 모습에 염증을 품고 더 이상 이들과 얼굴을 마주할 용기도 생각도 없다. 그는 자신과 같은 염증을 품고 있을 것이라 여기는 손녀 에브에게 진심을 보여주나 에브조차 가면을 쓴 채 할아버지에게 진실 된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다. 

  

SNS에서 진정한 자신을 숨기고 보이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듯이, 인터넷 세상에서는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은 조소 섞은 댓글로 무시하는 일도 빈번하다. 영화는 부르주아의 위선이 디지털 세계에 들어서며 더욱 냉철해지고 은밀해졌음을 보여준다. <해피엔드>는 지식인이 지닌 위선과 이중성을 풍자하는 하네케의 시선의 진화를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기자]

 

 

보도자료 및 제보 : cinerewind@cinerewind.com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