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흐름 따라 가치관·캐릭터 다양화, 지적 받았던 디즈니의 반가운 변화

김준모 | 기사입력 2019/07/11 [18:06]

시대 흐름 따라 가치관·캐릭터 다양화, 지적 받았던 디즈니의 반가운 변화

김준모 | 입력 : 2019/07/11 [18:06]

과거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은 환상적인 영상미와 가슴 따뜻한 이야기로 수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수십 년간 다양한 캐릭터로 인기를 이어갔고, 특히 1990년대에는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일 만큼 전성기를 맞았다. 

 

최근 디즈니는 마블 스튜디오, 21세기 폭스 등의 콘텐츠 업체를 인수하면서 작품 영역을 더욱 늘려가고 있다. 디즈니는 자신들의 애니메이션을 실사 영화로 제작하기도 하고, 또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나 픽사의 애니메이션, <스타워즈> 시리즈를 이어가며 팬층을 두텁게 만들고 있다.

 

다만 시대가 변하면서 디즈니의 과거 작품 속 가치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구시대적 가치관 담은 여성 캐릭터, 용감하고 주체적으로

 

▲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스틸컷.     © 세기상사



과거 디즈니는 <인어공주>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신데렐라> 등 중세 배경의 동화를 토대로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어왔다. 화려한 영상미와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옛 가치관을 그대로 답습했다. 극 중 여성 주인공은 묵묵히 기다리며 사랑받길 원하는 수동적인 모습을 드러냈고,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보다 공주 등의 직함이 그들의 가치관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이 자기 의지가 부족한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았다. <백설공주> 속 백설공주의 경우 성에서 쫓겨난 뒤 자신의 힘이 아니라 일곱 난쟁이의 도움을 받아 생활한다. <라이온 킹>의 주인공 사자 심바 역시 마찬가지다. 심바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고, 이후 왕국에서 떠났을 때는 티몬과 품바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살아남는다. 왕국의 왕이 되는 과정에서도 주술사 원숭이나 어릴 적 친구인 날라 등 주변 인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과거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적은 할리우드 배우의 입을 통해서도 나왔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2018년 미국 TV쇼에 출연해 자신의 딸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와 <인어공주>를 보지 못하도록 금지했다고 밝혔다.

 

당시 키이라 나이틀리는 두 작품의 시청을 금지한 이유로 "신데렐라는 부자인 남성이 자신을 구해주기를 기다리기 때문", "노래가 매우 훌륭하지만, (인어공주처럼) 남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주어선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보수적 세계관이 주를 이루었던 과거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셈이다.

 

▲ <뮬란> 스틸컷.     © 브에나비스타코리아



디즈니는 자신들의 보수적 가치관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안티 디즈니'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문제를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지적된 문제들 중 첫 번째는 수동적이고 고전적인 미의 기준을 지닌 여성 주인공들이었다. 문제점 해결의 시발점이 된 영화로 <포카혼타스>와 <뮬란>을 꼽을 수 있다. <포카혼타스>의 여성 주인공 포카혼타스는 느낌과 말투, 행동이 모두 당차며 남성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내세울 줄 안다. 이는 <뮬란>의 뮬란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을 하고 전쟁에 참전하는 장면은 뮬란의 주체적이고 용감한 모습을 부각시킨다. 

  

여기에 인종차별을 타파하려는 움직임도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여주인공이었던 백설공주나 신데렐라가 새하얀 피부를 지닌 전형적인 서양의 미인상이었다면, 포카혼타스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이었고 뮬란은 외모가 판이하게 다른 중국인이었다. 현대 제작한 작품에서 기존 디즈니 여성 주인공이 지닌 미의 공식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와 같은 여성 캐릭터의 변화는 최근 애니메이션과 실사화 된 작품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9년 개봉한 영화 <알라딘> 속 자스민 공주의 경우, 애니메이션과는 다르게 비중이 더욱 늘어난 건 물론 악당 자파로부터 왕국을 지키기 위해 직접 왕이 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 <토이 스토리4>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최근작 <토이 스토리4>의 여성 캐릭터 보핍이나 <캡틴 마블> 역시 마찬가지다. 보핍은 기존의 우디와 버즈로 대표되는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4편에서 보핍은 치마 대신 바지를 입고 양을 몰던 지팡이를 무기로 사용한다. 이와 같은 보핍의 모습에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캡틴 마블은 기존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토르'로 대표되는 마블의 강인한 남성 캐릭터들 사이에서 서브로 밀린 여성 캐릭터들을 다시 수면으로 끌어올리는 구심점 역할을 해냈다. <어벤져스 : 엔드게임>에서는 캡틴 마블의 등장과 함께 와스프, 발키리 등 여성 캐릭터들이 힘을 합쳐 싸우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속 강인한 여성 캐릭터의 등장은 여성 캐릭터들이 집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남성에게 보호받는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의 한계를 탈피할 힘이 되었다.

 

선한 성격의 백인 캐릭터만 주인공? 이제는 아니다

 

디즈니가 지적받은 문제 중 둘째는 전형성이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시작된 디즈니의 부진은 전형적인 이야기 전개와 교훈적 결말에서 비롯되었다. <보물성> <아틀란티스 : 잃어버린 제국> 등의 작품들은 뛰어난 특수효과에도 흥행에 실패했는데, 뻔히 예상되는 스토리가 이유로 꼽혔다. 당시 라이벌 회사였던 픽사가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등 전형성을 탈피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앞서가고 있을 때, 디즈니는 기존의 전형적인 가치관에 묶여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의 디즈니는 그 어떤 콘텐츠 제작회사와 비교해도 진보적이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모아나>의 폴리네시아인 공주나 흑인 히어로를 내세운 <블랙팬서>, 자유분방한 공주들의 모습을 보여준 <주먹왕 랄프2>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말레피센트> 역시 기존 디즈니의 전형성을 뒤집은 모범적인 사례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실사화한 이 작품은 공주를 잠에 빠뜨리는 마녀 말레피센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 <말레피센트> 스틸컷.     © 소니픽쳐스 릴리징



말레피센트의 관점으로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지닌 이야기를 재해석한다는 점, 악역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부분은 기존 디즈니 세계관의 전형성을 완전히 탈피한 것이다. 이는 <겨울왕국> 역시 마찬가지인데, 안데르센의 원작 동화 <눈의 여왕>에서는 악역이었던 여왕 엘사에게 주체적인 캐릭터성을 부여하며 디즈니 영화상 가장 멋진 캐릭터 중 하나를 창조해냈다. 

  

'남녀간 사랑'-'권선징악' 강조하던 '뻔한 결말'서 벗어나는 중

 

디즈니에 제기된 문제 중 셋째는 천편일률적인 가치관이다. 사랑, 우정, 꿈을 강조하는 디즈니의 세계관은 과거에는 큰 사랑을 받았으나 점차 다양한 가치관이 통용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뒤처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주와 왕자가 사랑을 이루고 악을 물리치며 선이 승리하는 권선징악의 결말이 지나치게 반복되며 지루함을 유발하곤 했다. 오늘날 디즈니는 다양성이 지니는 힘을 통해 이런 약점을 지우려고 애쓰고 있다. 

  

이런 노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최근 개봉한 <토이 스토리4>이다. 픽사 시절부터 <토이 스토리>의 설정은 '장난감은 어린 아이들에게 늘 즐거움과 사랑을 주려는 존재'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장난감 우디와 버즈는 주인인 앤디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고, 시리즈마다 앤디에게 다시 돌아가기 위해 모험을 감행했다. 한데 이번 4번째 작품에서 보핍은 그 가치관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물로 등장한다. 

 

▲ <겨울왕국> 스틸컷.     © 소니픽쳐스 릴리징



극 중 보핍은 '왜 장난감은 주인의 사랑을 받아야만 하며, 주인이 없거나 버림받은 장난감은 슬퍼해야만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와 함께 보핍은 장난감도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고, 장난감끼리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준다. 특정한 사물이나 직업, 가정 내에서 개인에게 부여된 역할에 대해 다양한 가치관을 담아 바라보려는 시도다.

 

가치관의 다양화는 <겨울왕국>에서도 나타난다. 물론 <겨울왕국>에도 설정상 공주와 왕자가 등장한다. 다만 기존 디즈니의 작품들은 위기 상황에서 공주를 구하는 존재가 왕자인데, 이 작품에서 엘사의 저주를 푸는 건 그의 동생이자 공주인 안나이다. <미녀와 야수> <백설공주>처럼 남녀 간의 사랑만이 저주를 풀 수 있는 구원의 열쇠가 되었던 기존의 가치관과 달리 두 자매의 진정한 우애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디즈니의 기존 가치관 타파와 캐릭터 변화는 7월 개봉을 앞둔 <라이온 킹>에서도 기대되는 지점이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심바는 주체적인 캐릭터와 거리가 멀었다. 그의 위기는 대부분 주변 다른 동물들의 도움을 통해 해결되었다. 여기에 여성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암사자, 심바의 어머니와 어린 시절 친구인 날라는 각각 심바가 왕위에 오를 수 있게 설득하는 제한적 역할로 등장하며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과연 2019년에 실사화 된 <라이온 킹>이 디즈니의 지향성을 얼마나 잘 담았을지 몹시 기대된다.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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