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블란쳇의 '1인 13역'은 돋보이지만..아쉬웠던 한 가지 [Newtro]

2019 뉴트로시네마 기획전 상영예정작, '매니페스토'

김준모 | 기사입력 2019/07/25 [09:30]

케이트 블란쳇의 '1인 13역'은 돋보이지만..아쉬웠던 한 가지 [Newtro]

2019 뉴트로시네마 기획전 상영예정작, '매니페스토'

김준모 | 입력 : 2019/07/25 [09:30]

▲ <매니페스토> 포스터.     © 찬란



두 여성의 사랑을 다룬 <캐롤>을 통해 국내에서 많은 팬을 확보한 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커리어 내내 다양한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이룩한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를 연기한 <엘리자베스>는 물론 전설적인 포크 록 가수 밥 딜런의 7가지 자아를 표현한 <아임 낫 데어>에서 유일하게 여배우로서 밥 딜런의 자아 중 하나를 표현해 내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우디 앨런의 영화 <블루 재스민>으로 골든 글로브-배우 조합상-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올킬한 그녀는 최근에는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악역 헬라를 소화해내며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매니페스토>는 케이트 블란쳇의 팬이라면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인 13역을 소화해 낸 그녀는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진정한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선언'을 선포한다.  

 

▲ <매니페스토> 스틸컷.     © 찬란



매니페스토(Manifesto)는 개인이나 단체가 대중에게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밝힐 때 사용하는 것으로 연설이나 문서의 형태를 일컫는 단어다. 영화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예술과 관련된 선언문(매니페스토)을 13명의 케이트 블란쳇을 통해 읽게 한다. 그녀는 각기 다른 화장과 말투, 표정, 직업과 직위 등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해낸다. 부랑자, 은행가, 실험실 직원, 과부, 인형제작자, 가정주부, 공사장 인부, 화가, 락가수, 무용수, 아나운서, 리포터, 선생까지 그녀가 표현해낸 13개의 직업은 각각의 선언문을 쏟아낸다. 

  

작품은 이 상황들을 코믹하게 묘사해낸다. 도입부부터 등장한 부랑자는 이런 시대에 예술가의 역할이란 혁명가가 되는 것이라는 강한 주장을 내뱉는다. 장례식 장면에서는 마치 고전 예술의 종말을 알리듯 다다이즘에 대해 설파하며, 교실에서는 어린 학생들에게 누벨바그에 대해 설명하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 식사자리에서 예술은 똥일 뿐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선언문의 내용과 장면의 표현이 묘한 연관성을 주며 웃음을 유발해낸다. 

  

이런 유머 코드와 케이트 블란쳇의 혼신을 다한 1인 13역 연기는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선언문이 중심이 된 대사가 정신없이 읊어짐에도 불구 이 두 가지 요소는 관객들이 스크린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호불호가 갈릴 지점은 이 영화의 대사를 이루는 선언문이 주는 함정에 있다. 선언문은 말 그대로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밝히는 글이다. 이는 이야기를 통해 깊은 생각과 감상을 유도해내는 영화의 성격과 다르다. 

 

▲ <매니페스토> 스틸컷.     © 찬란



한 마디로 관객과 영화의 상호작용이 아닌 일방통행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13명의 인물을 통해 13개의 선언문이 읊어지는 만큼 각각이 지닌 성격이 다르다. 예술에 관심이 있고 깊은 사유를 지닌 관객이라면 이 선언문 하나하나의 내용이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다다이즘, 팝아트, 플럭서스 등 다양한 예술에 관한 지식을 요구하는 성격을 지닌 만큼 작품 자체를, 이야기를 통한 재미를 지닌 영화로 받아들이기 힘든 구석이 있다.

  

이런 일방통행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경멸을 담아 말한다. 우리를 심판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의 심판은 언젠가 당신을 심판할 것이다'라는 대사로 절정을 이룬다. 예술을 다루되 관객과 어설픈 합의를 보기 보다는 선언문을 통해 예술을 이해하는 이들과의 깊은 사유와 교감을 시도하는 게 <매니페스토>가 지닌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지닌 센스 있는 유머와 독특한 표현은 자칫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희석시키지만 영화에 깊게 몰입하거나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가진 못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을 하던 13명이 함께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마지막 장면은 형태만 다를 뿐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새로운 것을 향한 열망은 누구나 같다는 걸 보여준다. 표면적인 내용만을 이해하는 단계에 그치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 될 수 있겠지만 더 깊이를 지니고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에 관한 높은 지식을 요구한다는 점은 이 작품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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