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마치 영화처럼 우리 곁을 떠난 '룻거 하우어'

19일 네덜란드 자택에서 별세..'블레이드 러너'에서 인상 깊은 악역 선보여

김준모 | 기사입력 2019/07/26 [21:00]

2019년, 마치 영화처럼 우리 곁을 떠난 '룻거 하우어'

19일 네덜란드 자택에서 별세..'블레이드 러너'에서 인상 깊은 악역 선보여

김준모 | 입력 : 2019/07/26 [21:00]

▲ <영화> 삼손 스틸컷.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1982년 개봉한 리들리 스콧의 SF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리플리컨트'라 불리는 복제인간과 이들을 폐기하는 임무를 지닌 블레이드 러너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리플리컨트 로이 배티와 리온, 조라와 프리스는 4년 남은 자신들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파견된 행성에서 탈출해 지구로 온다.

복제인간 로이 배티는 자신들을 만든 기술자를 찾아내고 그에게 더 살고 싶다는 간절한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 바람을 이룰 수 없다는 말에 그는 눈물을 흘리며 기술자를 죽인다.

 

<블레이드 러너>가 그려낸 2019년의 미래인 현재, 로이 배티 역을 맡았던 배우 룻거 하우어의 죽음은 묘한 느낌을 준다. 조금이라도 더 살기를 바랐던 로이 배티의 간절한 열망이 담긴 눈빛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룻거 하우어는 19일 네덜란드 자택에서 항년 75세로 생을 마감했다. 1944년생인 그는 1969년 드라마 <플로리스>로 데뷔 이후 2019년까지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팬들과 마주했다.

 

네덜란드의 거장 폴 버호벤 감독에 의해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1981년 <나이트호크>를 통해 할리우드에 들어섰다. 이 작품에서 잔혹한 테러리스트를 연기한 그는 당대 최고의 액션스타 실베스터 스탤론과 좋은 호흡을 보이며 눈도장을 찍게 된다.

 

이 작품은 이후 룻거 하우어가 할리우드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강렬한 연기 덕분에 그는 악역을 대표하는 배우로 올라서게 된다.  

 

▲ <블레이드 러너> 스틸컷.     © (주)해리슨앤컴퍼니

 

 

이런 룻거 하우어의 매력이 잘 드러난 작품이 <블레이드 러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섬뜩하면서도 처절한 악역 연기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SF영화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하였다. 특히 빗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그의 모습은 감정적으로 공감하게 한 데다, 여운을 주었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카리스마와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룻거 하우어의 연기는 스릴감이 느껴지는 잔혹함과 폭발력이 느껴지는 감정적인 힘을 지닌 '스릴러의 거장' 폴 버호벤 감독 아래에서 제대로 발현되었다 할 수 있다. 비록 흥행에는 참패한 중세 배경의 사극 <아그네스의 피>에서 용병대 대장 역을 맡은 그는 잔인하고 악한 캐릭터임에도 자신이 지난 카리스마와 힘을 통해 잘 그려냈다.  

 

▲ <사랑을 위한 죽음> 스틸컷.     © Verenigde Nederlandsche



마틴은 살인, 납치, 강간을 지시하는 극악무도한 캐릭터지만, 중세라는 배경과 힘이 폭력이 되어 지배와 살육을 반복하는 작품 속 세계관 아래에선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런 폴 버호벤과의 호흡에서 빠질 수 없는 영화가 그의 영화 데뷔작인 <사랑을 위한 죽음>이다. <원초적 본능>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폴 버호벤 특유의 에로틱과 폭력으로 귀결되는 잔혹함이 담겨 있다. 

  

이 작품에서 룻거 하우어는 사랑의 고통과 아픔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에릭을 연기한다. 성적으로 문란했던 에릭은 올가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지나친 열정은 집착으로 바뀌게 되고 두 사람은 파국을 향해간다. 이 작품은 세련된 연출과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결말로 네덜란드 흥행의 역사를 새로 쓴 건 물론 폴 버호벤 감독의 할리우드 입성에 큰 역할을 했다. 

  

롯거 하우어는 에릭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청춘이 지닌 강렬함이 집착과 폭력으로 인해 결국 다 타버린 장작처럼 허상과 슬픔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그는 이 영화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비 오는 날 밖에서 와인을 마시는 에릭과 올가의 로맨틱한 장면, 에릭이 상상에서 올가를 잔인하게 살인하는 집착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폭 넓은 감정 표현을 선보이며 다채로운 매력을 선사했다.

 

▲ <드라큐라3> 스틸컷.     © Dimension Films



1990년대 들어 많은 관객들의 머리에서 룻거 하우어의 이름이 멀어진 건 우연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꾸준히 관객들과 만남을 가졌으나 동시에 가지지 못하였다. 198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악역배우로 입지를 굳힌 그였지만 1900년대 들어 팬들마저 등을 돌릴 만큼 작품 운이 좋지 못하였다. 물론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는 그의 열정 덕분에 수많은 작품들에 출연할 수 있었지만 그 중 관객들에게 룻거 하우어라는 이름을 인식시킬 만큼 인상적이었던 영화는 드물었다. 

  

최근까지도 <드라큐라> 시리즈,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2047: 지구 최후의 날> 등을 통해 관객들과 만남을 가졌던 그는 비록 70~80년대 네덜란드와 할리우드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때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꾸준히 자신이 맡은 배역을 소화해내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2019년, 마치 <블레이드 러너>의 복제인간 로이처럼 우리의 곁을 떠나간 그는 악역이 지닌 매력을 보여준 배우라 할 수 있다.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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