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전쟁 속 피어난 작은 희망이 전 세계에 울려 퍼지다 [JIMFF]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망명자 바이올리니스트 아라 말리키안’

오승재 | 기사입력 2019/08/19 [14:09]

끊임없는 전쟁 속 피어난 작은 희망이 전 세계에 울려 퍼지다 [JIMFF]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망명자 바이올리니스트 아라 말리키안’

오승재 | 입력 : 2019/08/19 [14:09]

▲ 영화 ‘망명자 바이올리니스트 아라 말리키안’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아라 말리키안(Ara Malikian)은 레바논 베이루트 태생의 아르메니아 혈통을 갖고 있는 스페인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중동의 아라비아 음악부터 유대음악, 집시, 탱고, 플라멩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장르를 융합하여 독창적 음악영역을 구축한 아라 말리키안은 현 바이올린 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인이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연주 속에는 슬픈 과거가 자리 잡고 있다. 그가 겪은 고난과 노력은 단단한 굳은살이 되어 성공의 토대가 되었다. 영화 망명자 바이올리니스트는 아라 말리키안이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까지 그가 겪은 전쟁과 역사적 맥락 그리고 방랑하는 유목민으로서의 삶을 조명한다.

 

 

레바논 전쟁 속 피어난 희망의 꽃

 

아라 말리키안의 어린 시절은 전쟁의 연속이었다. 레바논 내전은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레바논 내 기독교도와 회교도 간의 대립과 더불어 시리아, 이스라엘, 미국, 이라크 등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끊임없는 분쟁 선상에 놓여있었다. 레바논인들에게 보편적 권리와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생존이 목표인 국가에서 교육기관은 사치에 가까웠으며 가난하고 고난의 연속인 삶을 탈출할 창구가 없는 상황이었다. 해당 상황에서 말리키안은 피아니스트인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로 결정한다. 음악은 그를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한다.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 위해 매일 바이올린을 연주, 음악을 분석한다. 하루도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으면 잠재의식 속에서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말리키안의 삶에 바이올린은 깊게 침투했으며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행했다. 그 결과 12살 때 첫 콘서트를 열게 된다.

 

이후 음악적 소양 향상을 도모하고 많은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14세에 독일 하노버 음악원의 초청을 수락하고 레바논에서 독일로의 이주를 결정한다. 영화 중반부에는 말리키안이 선진국에 적응하면서 겪는 고된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기존 독일 학생들과 동일한 노력과 동일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면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성공할 수 없음을 직시한 그는 매일 14시간 바이올린 연습을 행한다. 하지만 독일인의 관점에서 아르메니아 혈통을 지닌 레바논인의 출처는 불분명했다. 독일에 거주할 명분이 없던 말리키안은 결국 레바논으로의 복귀를 결정하나 레바논으로 돌아갈 직항이 없어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편도제거수술을 한 후에나 독일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말리키안은 우여곡절이 많던 독일에서 영국의 런던 길드홀 음악 연극 학교로 거취를 옮겨 공부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프랑코 굴리(Franco Gulli), 루지에로 리치(Ruggiero Ricci), 헤르만 크레버스(Herman Krebbers) 등의 지도를 받으며 실력이 일취월장한다. 전쟁 속에 묻혀있던 원석이 점차 완벽한 보석으로 다듬어지는 순간이다.

 

 

하나의 범주로의 종속을 거부한 아라 말리키안

 

아라 말리키안의 음악은 하나의 범주로 정의할 수 없다. 그가 겪은 역사적 맥락은 음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중동(아랍과 유대인), 중부 유럽(집시와 클레즈머), 아르헨티나(탕고), 스페인(플라멩코) 등 다양한 음악 범주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융화했다. 말리키안은 사회적, 음악적으로 하나의 범주로 사람을 가두고 평가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지닌다. 국가, 문화적 특징으로 인해 많은 오해와 차별을 받으며 자랐다. 공항에서 그의 악기 케이스는 언제나 소총으로 오해를 받았고 수많은 검문에 걸려 장시간의 조사와 신분확인 후에나 타국으로의 이동이 가능했다.

 

▲ 레바논 아이들에게 희망이 된 아라 말리키안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그에게 달리는 수많은 꼬리표도 음악 그 자체를 평가받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많은 이들은 음악 그 자체를 평가하기보다 레바논 출신으로 정의내리기 바빴다. 더 나아가 사회는 사람을 하나의 부류로 정의내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말리키안은 이러한 현대 사회의 특성에 의문을 던진다. 본인의 음악장르를 하나로 정의내리고 평가하려는 수많은 대중 혹은 비평가들에게 다양한 음악 스펙트럼을 제시함으로서 포괄적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아버지, 선생님에게 배운대로 수동적으로 하나의 장르만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했다면 대체가능한 인재가 되었을 확률이 농후하다. 주체적으로 음악의 방향성에 대해 고뇌하고 장르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태도가 지금의 아라 말리키안을 만든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위험과 약점이라고 여겨지는 요소를 강점으로 승화한 태도는 현대인들에게 귀감을 제공한다. 아라 말리키안은 레바논인이라는 이유로 방랑하는 유목민으로 살아야했고 선진국에 도달해서도 많은 차별과 노력에 시달렸다. 해당 아픔을 자신만의 음악스타일로 치환한 그는 서열 매기기에 강박을 가진 이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에 대해 생각해볼 긍정적 계기를 제공한다. 서열의 우위를 정하고 낮은 계급으로 여겨지는 이들을 하대하는 태도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양한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할 수 있는 포괄적 시각이 중요한 시점에서 아리 말리키안의 일대기를 다룬 망명자 바이올리니스트 : 아라 말리키안은 긍정적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씨네리와인드 오승재] 


보도자료 및 제보 : cinerewind@cinerewind.com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