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 대한 믿음, 간절한 소원을 들어줄까요?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 <오늘> <천국을 향하여>로 바라본 신에 대해

김준모 | 기사입력 2019/08/30 [11:15]

신에 대한 믿음, 간절한 소원을 들어줄까요?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 <오늘> <천국을 향하여>로 바라본 신에 대해

김준모 | 입력 : 2019/08/30 [11:15]

대학교에 합격한 후 지금 다니는 교회에 처음 나갔다. 그 교회에는 어머니가 다니고 계셨고 교회 사람들은 얼굴도 모르는 나를 위해 열심히 기도를 통해 합격을 기원해주셨다고 한다. 그 교회에서 한 친구를 만났다. 그 동갑내기 친구는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준비하던 친구였다. 수능 전날 청년부 교인들이 다 같이 모여 그 친구의 합격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몇 달 뒤 누구보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 친구는 또 다시 대학에 떨어졌고 몇 주간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종교는 창조주인 신이 인간들에게 깊은 사랑을 지니는 것은 조건 없는 부모의 사랑과 같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부모를 믿고 따르듯 신을 믿고 따르는 이유는 이 점에 있다. 전지전능한 신에게 믿음을 보이고 순종을 증명하면 행복과 기쁨이 찾아올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간절한 소원을 꼭 이뤄줄 것이란 열망이 신을 향한 믿음에 존재한다.

▲ <나는 예수님이 싫다> 스틸컷.     © 싸이더스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신을 처음 접한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시골로 전학 온 유라(호시노 유라)는 기독교 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신의 존재를 처음 알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유라가 친구가 생기게 해달라고 처음 기도를 드린 날 그의 앞에는 조그마한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난다. 유라가 기도를 드릴 때면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나고 그때마다 소원은 이뤄진다. 유라는 기도 후 카즈마(오오쿠마 리키)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어린 소년에게 낯선 환경의 적응과 한적한 시골생활에서 자신에게 집중된 가족의 기대는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런 유라에게 나타난 예수는 든든한 존재이자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영적인 구세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라의 정말 간절한 소원이 외면을 받았을 때,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주고 있다 여겼던 신이 부름에 응답을 주지 않았을 때, 사랑은 증오와 분노로 변질되고 만다.

 

영화 <오늘>이 말한 용서

▲ <오늘>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누군가를 향한 큰 사랑은 그 크기만 한 분노와 증오로 바뀌게 된다. 애증이라는 말의 의미처럼 증오는 사랑의 감정에서 피어난다. 자신의 간절한 기도가 무시당했을 때 유라는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긴 한 것이냐고. 사랑한다면 왜 나의 간절함을 무시했느냐고 말이다. 이런 증오의 감정은 선택의 순간 오직 '용서' 밖에 선택지에 없었던 다혜(송혜교) 역시 느꼈을 감정이다.

 

영화 <오늘>의 주인공이자 다큐멘터리 PD인 다혜는 1년 전 자신의 생일에 약혼자를 교통사고로 잃게 된다. 종교의 힘으로 아픔을 치유하던 다혜는 사고를 낸 소년이 17살이라는 걸 알게 되고 목사를 비롯한 주변 교인들은 소년을 용서하고 다혜 스스로에게 아픔을 치유하라 말한다. 상대를 증오하고 원망하면 자신의 아픔 역시 커지지만 용서하게 되면 그 아픔을 잊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그녀는 믿는다.

 

1년 뒤 '용서'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찍던 다혜는 한 소식을 듣게 된다.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여겼던 그 소년이 또 다시 사고를 쳤다는 소식이다. 만약 그때 자신이 그 소년을 용서하지 않았다면 소년이 다시 세상에 나와 다른 누군가를 해치고 상처를 입히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다혜는 그 순간을 후회하며 목사에게 말한다. 만약 그때, 용서가 아닌 다른 선택을 알았다면 절대 용서를 택하지 않았을 거라고.

 

때론 종교는 신의 이름을 빌미로 선택을 강요하곤 한다. 성경을 보면 신의 이름으로 행한 기적들이 등장하지만 무조건적인 믿음이 무조건적인 성취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약속은 없다. 또 성경에 등장하는 말씀을 인간은 무조건 따르고 순종할 수 없다. 성경 속 많은 인물들이 믿음과 현실 사이의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였으며 신의 사랑을 배신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종교는 신의 이름으로 지나친 믿음과 감당하기 힘든 선택을 강요한다.

 

영화 <천국을 향하여>

 

▲ <천국을 항하여> 스틸컷     © 유레카픽처스



 

<천국을 향하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두 청년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1948년 여러 번의 중동전쟁을 통해 수립된 국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국경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팔레스타인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압제와 차별정책을 내세운 이스라엘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빈곤 속에서 미래가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팔레스타인에서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은 자신의 몸을 희생시켜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뿐이다.

 

어린 시절부터 형제처럼 지내온 자이드(카이스 나시프)와 할레드(알리 슐리만)는 저항군 조직의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로 폭탄 테러를 가기 위해 떠난다. 그들에게 주어진 소명은 자신들의 몸을 희생시켜 국제사회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알리고 이스라엘에 직접적인 불안과 겁을 주는 것. 하지만 두 청년은 종교적인 임무 앞에서 망설인다. 그들에게는 '천국을 향하는' 길보다 '지옥 같은 현실'이 더 큰 미련이 남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죽는다 하더라도 팔레스타인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여태껏 수많은 젊은이들이 순교라는 이름으로 저항을 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가슴에 폭탄 띠를 두른 순간 과연 신이 부른다는 이 길이 영광과 승리로 가는 길인지에 대한 의심이 자리한다. 순교라는 사명을 앞둔 두 청년의 48시간을 다룬 이 작품은 종교를 위한 희생이 과연 신의 뜻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만물의 조물주인 신이 과연 자신이 만든 조물이 괴로워하고 힘들어 하는 걸 바라고 있는 건지, 이런 희생을 통해 얻게 되는 평화와 행복이라면 과연 신은 올바른 정의와 수호의 집행자인지, 과연 신의 사랑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에 관해 심도 높은 질문을 던진다. 신의 사랑에 대한 의심은 그 사랑을 전하는 대행자를 자처하는 이들에 있다.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하고 희생과 정성을 기울여야 복이 오고 행복이 온다고 전파하는 이들에게 말이다.

 

신의 존재는 정신적인 믿음과 안정,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사랑에 있다. 종교가 돈벌이나 개인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 남용되고 변질되는 순간 신을 향한 믿음은 강요가 되고 이 강요에 따른 배신은 증오로 바뀔 수 있다. 이 세 작품은 누군가를 통한 신의 사랑이 아닌 자신의 마음에 있는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그 목소리를 통해 선택을 하고 행복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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