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시인은 왜 죽어야 했나..시대가 놓친 진범을 다루다

[프리뷰] 영화 '열 두 번째 용의자' / 10월 10일 개봉 예정

김준모 | 기사입력 2019/09/30 [10:47]

1953년 시인은 왜 죽어야 했나..시대가 놓친 진범을 다루다

[프리뷰] 영화 '열 두 번째 용의자' / 10월 10일 개봉 예정

김준모 | 입력 : 2019/09/30 [10:47]

 

▲ 영화 '열 두 번째 용의자' 포스터.     © 인디스토리



 

* 주의! 이 글에는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1953년 명동의 오리엔타르 다방, 모자부터 구두까지 검은색으로 통일한 남자가 들어온다. 이곳은 시인, 소설가, 화가 등 예술가들이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장소다. 각자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 사이에 한 가지 화두가 던져진다. 남산에서 유명한 시인인 백두환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에 그들은 당황한다. 그리고 검은 옷의 남자는 자신이 그 사건의 수사관 김기채임을 밝힌다. 그는 백두환이 자주 다녔다는 이 다방에서 '진범'을 밝혀내고자 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물들이 장면이 아닌 대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에 다가서는 영화의 구성은 연극과 같다.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처럼 한정된 용의자를 대상으로 펼쳐지는 고딕풍의 추리극이 될 것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백두환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에 다방 안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신들의 일상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들은 기채가 정체를 밝힌 순간부터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감독이 1953년을 배경으로 한 이유

 

▲ <열두 번째 용의자> 스틸컷.     © 인디스토리



다방 주인 석현은 부엌으로 이어진 작은 창을 통해 서늘하게 기채를 응시한다. 백두환의 살인에 사고 가능성을 언급했던 화가 인성은 온몸으로 불안을 표출한다. 평소 백두환의 재능을 질투했던 시인 행출은 자신이 술에 취해 그를 폭행했단 사실이 드러나자 흥분한다. 머리에 붕대를 감싼 수상한 모습으로 등장한 화가 기섭은 수사 내내 침묵을 지키다 백두환과 문인들과 사이가 좋던 여학생 최유정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갑자기 화를 낸다.

 

이런 용의자들의 모습은 범인잡기에 중점을 둔 서스펜스 추리극의 느낌을 준다. 하지만 중반 이후 영화는 깜짝 놀랄 반전을 선사한다. <열두 번째 용의자>는 추리극 구성 안에 시대극의 정신을 담아낸다. 1953년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1953년은 한국전쟁이 막 휴전 상태로 접어들어 나라가 어수선했던 때다. 표면적으로는 평화의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사상과 분단 문제로 내부에선 더 치열한 전쟁이 펼쳐지던 때이다.

 

감독은 이 시대의 아픔이 확실한 마침표를 찍지 못했음에 주목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독립 후 친일파들에 대한 처벌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일제의 잔재가 남은 상태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기회주의자들은 반공을 외치며 빨갱이 색출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감독은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작품에는 이후 군사독재정권을 연상시키는 코드가 존재한다.

 

시인이 죽은 장소는 군부독재 시절 고문수사로 악명이 높았던 중앙정보부 6국이 있던 곳이다. 명과 암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다방의 흔들리는 조명은 고문실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작품 속 백두환 시인이 쓴 시 '풍(風)'의 '풍(風)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 주체 없이 이리저리 헤매이노라'라는 구절은 시대의 매서운 공포와 억압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이에 굳건히 맞서지 못하고 흔들리고 방황하는, 그리고 피하기에만 급급한 이들의 자조 섞인 의식을 드러낸다.

 

호러에 가까운 긴장감이 준 극적 재미

 

▲ <열두 번째 용의자> 스틸컷.     © 인디스토리



<열두 번째 용의자>는 거대한 규모의 시대극에 담아낼 정도의 이데올로기와 시대정신을 102분의 짧은 시간 안에 연극 형식으로 풀어냈다. 여기에 심리 추리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거북하지 않게 주제의식을 소화한다. 내적으로는 시대극이지만 외적으론 심리 추리극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인물 간의 갈등과 복선을 설정해 후반부에는 호러에 가까운 긴장감으로 극적 재미를 느끼게 한다. 

 

여기에 배우들의 열연은 제한된 공간에서 이뤄지기에 정적일 수 있는 극에 활력과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기채 역의 김상경은 물론 석현 역의 허성태, 인성 역의 김동영 등 작품 속 모든 배우들이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색을 충실하게 만들어 냄은 물론 포인트가 되는 장면에서 폭발력을 드러내며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예술가는 개인의 내면과 상상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직업이지만 때로는 시대가 지닌 메시지를 작품에 투영시킨다. 이런 예술가의 죽음은 한 시대의 비극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품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왜 시인이 죽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잘 그려냈다. 저예산 영화였던 만큼 규모에 있어 한계가 있었지만 그 정해진 규모 안에서 담아낼 수 있는 모든 걸 집어넣었다고 본다. '시대가 놓친 진범'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 흥미로운 추리극이라 할 수 있다.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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