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이라는 구덩이에서 헤엄치는 우리들, '메기'

전세희 | 기사입력 2019/10/01 [09:30]

의심이라는 구덩이에서 헤엄치는 우리들, '메기'

전세희 | 입력 : 2019/10/01 [09:30]

▲ <메기> 포스터     © 네이버 영화

 

- 주의! 이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으십시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의심이 피어난다. 그만큼 내 의지대로 되지 않고 알쏭달쏭한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존재이다.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믿고 있는가? 재치 있고 엉뚱하게 이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 <메기>가 26일 개봉했다.

 

 

▲ <메기> 스틸컷     © 네이버 영화

 

- "이 이야기 믿을 수 있겠어요?"

 

공식 포스터에 쓰여있는 문장처럼, 영화 <메기>는 믿을 수 없는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주인공 '윤영'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남녀의 민망한 엑스레이 사진이 등장하고, 직원들이 약속이라고 한 듯이 출근을 하지 않는다. 갑자기 도심 한복판에 싱크홀이 생겨나더니, 평생 백수로 지낼 것 같던 남자 친구 '성원'에게 일자리가 생긴다. 또한 여기, 모든 이야기를 바라보는 수족관 속의 '메기'가 있다.

 

상영시간 89분 동안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놀라운 사건들에 처음에는 당황할지 모른다. 하지만 걱정은 마시길. 메기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 믿을 수 없던 이야기의 종착점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 <메기> 스틸컷     © 네이버 영화


- 이제는 믿고 보는 조합 : 2X9

 

당신이 이옥섭, 구교환 조합의 열렬한 팬이었다면, 영화가 시작할 때 등장했던 '2X9'마크에 환호하였을 것이다. 여러 단편으로 훌륭한 호흡을 보여주었던 이들이 마침내 장편 작품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메기>는 감독의 이전 작품의 연장선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4학년 보경이>의 김꽃비, <걸스 온 탑>의 이주영과 천우희 등 반가운 얼굴들이 등장하고 굴삭기, 선인장 등 전작의 익숙한 아이템도 찾아볼 수 있다.

 

강한 색감과 키치 하게 꾸며진 공간, 통통 튀는 음악은 특유의 재치 있는 감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과하지 않게 빵빵 터지는 유머 코드는 덤. 감독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메기>를 통해 순식간에 그들에게 매료될 것이다. 장편에서도 역시 자신들의 강점을 잘 보여준 이들, 이제는 '믿고 보는 2X9'라는 지칭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되었다. 

 

 

▲ <메기> 스틸컷     © 네이버 영화


- '인권 영화'로서의 <메기>

 

<메기>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원을 받아서 제작된 '인권 영화'다. 줄거리만 보고서는 '이게 어떻게 인권을 이야기하는 영화인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메기>는 작품 속 여러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면을 드러낸다.

 

먼저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이다. 특정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피해자에 주목하는가 아니면 가해자에 주목하는가? 방사선 실에서 찍힌 남녀의 엑스레이 사진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병원 한복판에 사진을 걸어놓고 그 대상이 누구인지 찾아내려고 한다. 이것이 명백한 '불법 촬영'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사진을 찍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현실도 이와 별반 다를 것 없다. 다들 그 피해자를 알아내기 위한 '탐정놀이'에 심취해 있을 뿐이다.

 

영화는 청년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주인공 윤영과 성원은 모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년이다. 하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집에서 놀기만 하거나 재개발이 진행되어서 갑자기 이사 갈 집을 알아보아야 하는 등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다. 또한 토익 900점을 받고도 직업을 갖지 못하다가 천재지변에 의해서 일자리를 구하게 된 성환의 동료는 노력한 만큼 되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메기> 속 인물들은 구직난, 주거난 등 갖가지 어려움에 놓인 청년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또한 성원의 전 여자 친구로부터 성원이 자신을 때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윤영을 통해 '데이트 폭력' 문제를 드러낸다. 윤영은 자신의 남자 친구가 폭력을 저질렀고, 자신 또한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불안해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여전히 데이트 폭력이 만연한 현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애인에 대해 갖는 불안감과 의구심을 보여준다.

 

 

▲ <메기> 스틸컷     © 네이버 영화

 

- 믿거나 혹은 의심하거나

 

<메기> 속 인물들은 모두 누군가를 믿지 못하고 있다 사건의 시작인 엑스레이 사진이 등장하자마자, 병원의 모든 사람들은 서로를 용의 선상에 두고 의심한다. 또한 부원장 '경진'은 그 불신의 정도가 심하다. 그런 그를 위해 윤영이 '믿음 교육'을 진행할 정도이다. 그렇다고 윤영이 의심 없이 타인을 그대로 믿는 인물은 아니다. 윤영 역시 성원의 전 여자 친구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자 자신의 남자 친구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세상 아무 걱정 없을 것 같던 성원 또한 윤영과의 커플링이 없어진 후, 같이 일하는 동생에게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다.

 

의심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영화 속에서는 의심을 통해 범죄자를 잡아 영웅이 되기도 하지만, 의심을 통해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아무리 믿으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피어나면, 그것은 모든 것들을 잡아먹어 버린다. 또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의심을 숨기거나 상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다고 해도 그것 역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마음속에 불신이 들어선 순간부터 우리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여버리는 것이다.

 

 

▲ <메기> 스틸컷     © 네이버 영화

 

끝없이 누군가를 의심하며 살아가는 우리. 우리는 어째서 이 의심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인가. 윤영이 우연히 발견한 포스트잇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일까. 싱크홀이 발생하기 전에 뛰어올랐던 메기처럼, 우리도 구덩이에서 있는 힘껏 점프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씨네리와인드 전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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