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실종(4)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1/09 [09:40]

[단편/소설] 실종(4)

김준모 | 입력 : 2020/01/09 [09:40]

혜정 : 어머님, 어머님에게 감사한 게 참 많아요. 그이를 대신해서 곁에 있어주시고, 병원 입원비도 대신 내주시고, 매일 반찬도 해다 주시고. 제겐 너무 큰 힘이 되어주세요. 그래서 이 말을 꺼낼지 말지 고민 많았어요. 전에 어머님이 화장실에서 통화하시는 거 우연히 들었어요. 어머님,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희수라는 사람이 누구죠?

유림 : 그래, 이제 와서 거짓말을 해봐야 뭐하겠니. 희수를 찾으라고 했어. 진석이가 그 애를 찾으러 갔을 거 같아서.

혜정 : 그 사람이 누구이기에 만나러 갔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유림 : 진석이가 결혼하기 전에 만난 여자애가 있었어. 만났다고 해도 오래 전 일이지. 그 애가 중학생 때였으니까. 내가 전에 이야기했지만 진석이는 공부를 아주 잘했단다. 전교에서 5등 아래로 떨어진 적 없고 학부모들끼리 장난으로 자기 딸 시집보내고 싶다고 했던 애야. 그런 애가 집에 여자친구라고 데려온 애가 희수였어. 빨간 비니 모자에 축 늘어진 체육복을 입고 있었는데 첫 인상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어. 치킨이랑 피자를 시켜줬는데 며칠 굶은 사람마냥 게걸스럽게 먹더라. 주변 엄마들을 통해 알아보니 기초생활수급자인 애였어. 아버지는 병으로 일찍 죽었고 어머니는 인형공장에서 일하느라 집에 없어서 폐지 줍는 할아버지랑 인형 눈 붙이는 할머니랑 같이 산다고 하더라고. 그 애 몸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났어. 뭔지 알 수 없지만 불쾌한 그런 냄새를 품고 툭하면 우리 집에 와서 피자며 치킨이며 먹었단다. 그래, 거기서 멈췄다면 내버려뒀을 거야. 학창시절에 여자친구 사귀는 거 싫어할 만큼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혜정 :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유림 : 침대 이불을 갈아주려고 보니 냄새가 났어. 진석이를 추궁하다 알게 되었지. 콘돔도 끼지 않고 섹스를 했다더라. 희수가 순진한 아이를 꼬드겼던 거지. 갖가지 생각이 다 들었어. 그 중 최악은 그 애가 임신하는 경우였지. 진석이를 심하게 혼낼 순 없었단다. 겁에 질린 그 애의 얼굴을 보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어. 그래서 희수를 이 동네에서 쫓아내기로 결심했단다. 그 애가 사라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어. 문방구점 광식이 엄마랑 친했는데 그 집 남편이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어. 내가 부탁해서 일부러 희수 그 애 가방에 물건을 집어넣고 도둑으로 누명을 씌웠어. 아저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뺨을 때리는데 멀리서 보는데도 오금이 지렸단다. 이 동네에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최대한 모욕을 주고 싶었어. 코랑 입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애를 벌을 세웠어. 문방구 입구에서 두 손을 들게 했지. 옷이 찢어져서 가슴이 반쯤 보이는데도 광식이 엄마는 신경도 쓰지 않았어.

혜정 : 그래서 그 희수라는 아이는 동네에서 떠난 건가요?

유림 : 그 뒤에 광식이 엄마가 전화를 걸었어. 늙은 노부부가 뭘 할 수 있겠니. 고래고래 소리 질러대는 광식이 아빠 앞에서 빌고 또 비는 수밖에 없었지. 여태까지 도둑질 당한 물건이 모두 희수가 그런 거라며 거액을 요구했어. 그것도 모자라서 소문까지 냈단다. 희수는 다음 날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전학을 갔어. 그래, 그렇게 끝났다면 진석이만 며칠을 울고 끝냈을 거야. 광식이 그놈이 말하지만 않았다면.

혜정 : 그이가 알아버렸군요.

유림 : 울면서 그러더라. 왜 그랬냐고. 그 애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가혹했냐고 고함을 질러댔지. 가출을 했다 3일 후에 돌아왔어. 물어보니 희수를 찾으러 갔다더라. 애 아빠한테 무섭게 혼나고 나서야 평소처럼 돌아왔어. 그게 끝이라 생각했지. 시간이 지나면 다 잊을 줄 알았어. 설마 혜정이 너랑 결혼하기 전까지 누구도 만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단다.

혜정 : 끔찍해요. 어머니가 한 행동도 그렇지만 그이는 더 끔찍해요. 왜 잊지 못했던 거죠? 이해할 수 없어요. 중학생 때 있었던 일이잖아요. 아픈 기억으로 묻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데 왜,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머님은 그이가 희수란 여자를 찾으러 갔다 생각하신 거죠? 그래서요? 그 여자를 찾았어요? 그 여자 옆에 그이가 있대요?

유림 : 광식이 엄마가 수소문해서 알아봤는데 죽었다고 하더라. 그 일 이후에 우울증이 심하게 왔나 봐. 없는 살림에 피해보상비에 이사에 병원비에. 집안 전체가 생활고에 시달렸대. 그래서 희수 걔가 모두 다 자기 때문이라고........

혜정 : 설마, 설마 아니죠? 설마 그거 때문에, 그걸 그이가 알아서 사라진 건 아니죠?

유림 :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단다. 나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어. 광식이 엄마도 그러더라. 겨우 하루인데, 우리는 겨우 하루 그 애를 괴롭혔을 뿐인데 인생이 파괴돼 버렸어. 진석이는 아닐 거다. 그 애가 알 리가 없어. 알았다면 진즉에 알았겠지.

혜정 : 이상해서 그래요. 사실 그이를 찾아달라고 부탁한 친구가 있어요.

유림 : 규선이 말이지? 전화해 봤단다. 몇 달째 행방불명이라고.

혜정 : 규선이란 사람은 뭔가 알고 있는 듯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그이를 데려오지 않을까 했는데....... 설마 같이 실종이 될 줄 몰랐어요. 그 사람도 차가 사라졌대요. CCTV에 보니 몇 번 길을 오고가더니 갑자기.......

유림 : 그만! 그만하렴. 신경 쓰지 말거라. 지금 넌 네 뱃속에 아기만 신경 쓰렴. 진석이는 돌아올 거란다. 그때 그 애한테 아기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니. 진석이는 사라지지 않았어. 알 수 있단다. 내 뱃속에서 함께 심장박동을 나눈 애야. 그런데 내가 모르겠니? 그러니 넌 건강만 잘 챙기렴. 희수는 이미 죽었어. 규선이는 네가 알 바 아니다. 넌 부탁했을 뿐이고 그걸 들어준 건 걔야. 규선이가 실종된다면 그건 걔의 잘못이란다. 넌 아무 잘못 없어.

혜정 : 돌아와야 해요. 아이에게 아버지가 없으면 너무 불행하잖아요. 남자아이에겐 아버지가 중요하다 들었어요. 그이 없이 혼자서 애를 키울 자신이 없어요.

유림 : 왜 혼자니! 네 가족도 있고 나도 있단다. 그리고 진석이는 돌아올 거야.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잠깐 방황할 수 있는 법이야. 그 애는 한 번도 중심을 놓친 적 없단다. 잠시 머뭇거린 적은 있어도 다시 돌아왔어. 네가 그 증거란다. 난 그 애가 다시는 여자를 사귀지 못할 줄 알았어. 그런데 결혼까지 했잖니. 책임감 있는 아이야.

 

혜정은 말을 멈추고 유림의 손을 꼭 잡는다. 두 번째 만남이었다. 진석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오랜 미래에 대한 소망이겠거니 여겼던 생각은 빠른 종착역을 그리고 있었다. 조금은 더 만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혜정의 말에 진석은 표정 없이 답했다. 확신이 없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진솔함이 좋았다. 이 사람이라면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사랑을 보여줄 거라 생각했다. 진석은 빠르게 결혼일자를 잡았다. 양가 부모님께는 더 오랜 시간 만났다는 거짓말을 했다. 결혼을 앞두고 다가온 감정은 공허와 슬픔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심장은 더 빠르게 가슴을 두드렸다. 온몸을 긴장시켜 빠르게 적응시키려는 듯 반응을 유도했다. 연인이 되고 싶었고 인연으로 묶이고 싶었으며 부부라는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빈 공간을 메우려 안간힘을 썼다. 애정을 부어넣었고 조그마한 관심 하나에도 행복이란 가치를 부여했다. 만약 행복에 총량이 있다면 진석은 빼앗기고 혜정은 얻기만 했을 것이다. 지친 게 아닐까. 사랑을 주기에 지쳐 도망친 게 아닐까. 처음부터 사랑이 없었다면 조금 품고 있던 애정이란 게 떨어진 지금 진석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게 아닐까. 혜정은 알 수 없는 희수의 얼굴을 그리며 심장에 또 하나 못을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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