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JU IFF|별에서 태어난 아이의 사랑과 가족 그리고 희망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별의 아이' / 연출 오모리 타츠시

김준모 | 기사승인 2021/05/02

JEONJU IFF|별에서 태어난 아이의 사랑과 가족 그리고 희망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별의 아이' / 연출 오모리 타츠시

김준모 | 입력 : 2021/05/02 [11:52]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이마무라 나츠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별의 아이는 오모리 타츠시 감독의 스타일이 잘 나타나는 영화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가족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지만 기존의 방향성과 연출에서 벗어나 가족에 관한 이야기에 중점을 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버니 드롭과 드라마 마더를 통해 일본의 국민 여동생으로 자리매김한 아시다 마나가 있다. 아시다 마나가 7년 만에 실사영화로 돌아온 이 작품은 위기의 가족을 통해 그 사랑과 유대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 '별의 아이' 스틸컷  ©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별에서 온 아이

 

치히로는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극심한 습진에 시달린다. 그녀의 부모와 언니 마이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치히로를 치료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고통에 우는 치히로를 달래줄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치히로의 아버지는 한 사이비 종교단체로부터 모든 질병을 낫게 해준다는 물을 소개받는다. 우주의 기운으로 정수된 물로 치히로의 몸을 씻긴 순간, 기적 같이 습진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한다.

 

치히로가 별의 아이인 이유는 우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주의 기운을 받은 물을 통해 다시 태어난 치히로로 인해 그녀의 부모는 해당 종교를 믿게 된다. 감금 협박 폭력 살인 등 기괴한 소문에 시달리는 그 종교는 사회로부터 손가락질과 질타를 받는다. 치히로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이 사실로 인해 마이는 집을 나가고, 외삼촌 유조는 치히로만이라도 자신의 집으로 들이려고 한다.

 

치히로는 종교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부모를 설득하거나 그 실체를 알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죄책감이 될 것이다. 자신이 별에서 태어나지만 않았더라도 부모가 종교에 빠지고 언니가 집을 나갈 일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은 치히로의 성격이다. 치히로는 짝사랑만 할 만큼 적극적이지 못한 성향이다. 모험이나 도전을 시도하지 않고 현재에 머무른다.

 

이런 치히로의 성향은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한 영화가 보여주는 미스터리의 매력인 종교의 실체를 파고 드는 묘미를 제거한다. 종교에 대한 괴소문만 돌 뿐 그 실체를 알아보려는 노력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장르적인 매력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것이다. 대신 영화가 집중하는 건 치히로가 겪는 고난과 역경, 그 안에서 점점 더 나아질 수 있는 희망이다. 작품은 그 고난과 역경을 보여주기 위해 미나미 선생을 등장시킨다.

 

▲ '별의 아이' 스틸컷  ©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 '별의 아이' 스틸컷  ©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사이비와 짝사랑의 공통점

 

최근 일본영화계가 보여주는 표현의 특징 중 하나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이다.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 속에서 상처 입고 성숙해지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를 필두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날씨의 아이’, 이 작품의 감독인 오모리 타츠시의 마더등이 이런 성향을 보여준다. 치히로가 다니는 중학교에 새로 부임한 잘생긴 수학 교사 미나미 역시 철없고 무책임한 어른이다.

 

치히로는 미나미를 짝사랑하고 수업시간 내내 그의 얼굴을 노트에 그린다. 치히로는 그저 미나미를 옆에서 보고 짝사랑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치히로에게 미나미의 내면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보면 기분이 좋은 얼굴만 바라보고 좋아하는 거니까. 이런 치히로의 짝사랑은 사이비 종교와 연결된다. 사이비 종교 역시 자신이 믿고 싶은 면만 믿고 좋아한다. 주변에서 그 종교(사람)에 대한 평판이 어찌 되었건 내가 좋아하면 그만이라 여긴다.

 

치히로는 짝사랑이 무해하다 여긴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나베와 나베의 남자친구 신무라 역시 치히로의 짝사랑을 나쁘게 바라보지 않는다. 친구가 되었다는 건 그 사람의 이해하지 못할 측면보다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을 먼저 받아들였다는 의미이다. 치히로가 부모를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는 점과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성향이 아니라는 걸 안다는 점에 있다.

 

반면 외부에서 보기에 치히로의 부모는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하면서 무서운 사람들이다. 치히로의 짝사랑 역시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밤늦게 부활동을 한 치히로와 친구들을 집에 데려다 주던 미나미는 밖에서 의식을 치르는 치히로의 부모를 이상한 것들이라 칭하며 조롱한다. 그런 미나미의 시선은 치히로에게도 이어진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는 이유로 학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치히로에게 망신을 준다.

 

미나미는 사랑과 포용력이 없는 이기적인 아이의 성향을 지닌 어른이다. 그 사연과 이유에는 관심이 없고 상대의 행동과 결과를 비난하기에 급급하다. 영화는 미나미로 인해 치히로가 일상에서 벗어날 법할 순간마다 사랑을 통해 잡아내는 모습을 보인다. 미나미가 부모를 조롱해 상처를 받은 순간에도 치히로는 부모를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홀로 온전히 슬픔을 삼키고 다시 하나의 가족이 되고자 한다.

 

나베와 신무라는 미나미에게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은 치히로를 위로한다. 짧은 시간 치히로와 대화를 나눈 학생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 미나미로부터 치히로를 보호하려 하는 모습은 철없는 어른과 성숙한 아이들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사이비 종교와 짝사랑은 모든 이들의 이해를 얻을 수 없고 상황에 따라 섬뜩하게 보인다. 이 점을 교묘하게 엮으며 갈등의 구조를 부각시키는 건 물론, 치히로의 내면이 단단해지는 모습 역시 함께 보여준다.

 

▲ '별의 아이' 스틸컷  ©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가족은 계속된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가족 관계에 있어 극적인 해결과 봉합은 일어나기 힘들다. 치히로는 몇 번이고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알게 되는 순간과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를 맞는다. 유조가 물을 바꿔치기 했을 때, 물을 꾸준히 마시지 않으면 걸린다는 감기에 치히로가 걸렸을 때, 미나미에게 부모가 비난을 받았을 때, 마이가 집을 떠났을 때 등등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치히로는 가족 곁에 남는 걸 택한다.

 

이 감정은 단순 죄책감과 부채의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족에게는 복잡한 역사와 감정이 있다. 그들만이 공유하고 이해하는 순간순간이 뭉쳐 가족을 이루기에 그 유대감과 연대의식은 그 어떤 집단보다 끈끈하다. 오모리 타츠시 감독의 영화는 핵심적인 플롯 전개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기 보다는 부차적인 장면까지 담아내며 그 분위기에 젖어들게 만든다. 이런 감독의 연출방법은 영화 속 인물들과 그들을 이루고 있는 세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감독은 치히로와 그 가족을 관객들의 재미를 위한 소모품으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사이비 종교의 실상을 들춰내기 위해 가족을 분열시키거나 파괴하지 않는다. 그들은 계속 가족으로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열린 결말을 택하지만 그 너머에 희망과 기적이 있을 것이란 걸 암시한다. 마이가 집에 연락을 했다는 점, 세 가족이 다 함께 소망을 이뤄준다는 별똥별을 보기 위해 밤하늘을 쳐다본다는 점이 이를 암시한다.

 

암시에 머무른다는 점은 열린 결말이 지닌 미덕이다. 영화가 일정한 결론을 내린다는 건 그들 가족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정 또는 긍정으로 사이비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을 관객에게 남길 수 있다. 열린 결말은 YES OR NO의 선택이 아닌 사유를 통해 가족을 바라보게 하는 여운을 남긴다.

 

▲ '별의 아이' 스틸컷  ©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함축적인 대사와 에드워드 펄롱

 

별의 아이는 우주를 포괄하는 제목만큼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대사들을 통해 깊은 사유에 빠져들게 만든다. 대사 하나하나가 치히로가 처한 상황과 연결되며 과한 문학적 감수성 대신 일상적인 느낌을 담아 자연스럽게 극에 빠져들게 만든다. 특히 결말부에 등장하는 두 개의 대사는 이런 풍미에 더 깊게 빠지게 한다.

 

첫 번째는 종교 모임에서 어머니를 찾아다니는 치히로가 친구에게 듣는 말이다. 처음 어머니와 떨어져 학생부로 가게 된 치히로는 핸드폰을 쓸 수 없는 넓은 모임장에서 어머니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숙소에 돌아와 다시 로비에 나가려는 치히로에게 친구는 지금 나가면 다시 엇갈려 찾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다소 부정적인 말을 한다. 이 말은 치히로가 가족을 떠날 수 없는 이유를 암시한다.

 

마이는 종교에 있어 부모와 상극을 달리면서 결국 집을 나갔다. 한 번 엇갈리다 보니 평행선을 그리게 되었다. 마이는 떠나는 순간에도 종교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그 종교를 부정한 순간 마이의 정체성이 사라질 것이라 여긴 이유에서다. 새로운 삶을 택한 마이의 모습은 잠시의 헤어짐을 의미한다. 반면 부모가 쌓아온 노력과 치히로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건 엇갈림을 의미한다.

 

마이가 아이를 출산했다는 소식을 부모에게 알렸다는 건 그들 가족 사이의 헤어짐이 다시 만남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의미한다. 반면 종교를 부정하고 부모를 탓하는 건 엇갈림을 말한다. 기다림 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 영원히 엇갈려 만날 수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 점에서 두 번째 대사인 치히로의 아버지가 세 사람이 모두 함께 별똥별을 봐야 의미가 있다는 건 가족 모두의 희망을 담은 열린 결말을 택했다는 점을 말한다.

 

만약 영화가 치히로만을 배려했다면 치히로가 혼자 별똥별을 본 순간 열린 결말로 마무리를 했을 것이다. 세 가족이 모두 별똥별을 바라보는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끝으로 열린 결말을 택했다는 점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들이 엇갈림 없이 함께 나아갈 것이란 희망을 전달한다.

 

영화에서 치히로가 미나미를 보고 닮았다며 그리는 배우가 왜 에드워드 펄롱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치히로의 연령대와 맞지도 않고 원작에 충실한 선택을 했다지만 현대에 맞는 배우로 각색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펄롱이 유명해지는 계기가 된 터미네이터2’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AI가 지배한 미래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최후의 전사 존 코너 역이다.

 

존 코너가 미래 인류의 희망이 된다는 점은 치히로를 비롯한 젊은 세대가 미래의 희망이 되어줄 것이란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게 아닌가 싶다. 치히로를 통해 그들 가족은 행복을 찾을 것이다. 치히로는 우주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별의 아이니까. 아역 시절부터 감독들이 요구하는 감정을 정확하게 잡아내며 극찬을 받았던 아시다 마나는 이번 작품에서도 복합적인 심리를 지닌 치히로란 캐릭터를 다층적으로 표현하며 흥미로운 캐릭터를 구축해낸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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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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