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걱정은 하지 마세요

류수연 | 기사승인 2021/05/11

내 걱정은 하지 마세요

류수연 | 입력 : 2021/05/11 [10:10]

[씨네리와인드|류수연 리뷰어]

 

          사진 © 류수연



쌀쌀한 날이 줄어들거나 땅 위의 열기가 옅어지기 시작하는 날이면 익숙한 전화가 온다.

 

김치 좀 보내주까?”

 

끝자락에 사투리가 묻어나는, 이 사소한 물음이 내게는 엄마가 계절마다 보내는 안부인사처럼 느껴진다. 별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엄마가 무엇을 묻는지 알고 있다그렇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냉장고에는 아직 다 먹어 치우지 못 한 파김치가 계란 곽 뒤에 숨겨져 있고 봄에 보낸 오이소박이는 어느새 노각 김치가 되어 있지만, 딱히 거절하지 않는다.

 

. 근데 너무 많이 보내지는 마.”


나 또한 역시 행간 속에 하고 싶은 말을 숨겨놓는다.

쑥스러운 경상도 모녀는 서로가 원하는 답을 쉽사리 내놓지 않는다. 엄마는 내 당부에 건성으로 답하고는 푹 익은 김치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는다. 요즘 우리 모녀의 대화 주제는 건강이다. 그 말인즉슨, 이제는 나도 건강을 일구어야만하는 나이로 슬슬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나이 듦에 대한 인지는 신기하게도 거울을 통해 보이는 내 모습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다. 이제 더는 엄마의 혹은 나의 일방적 이야기로 대화가 끝맺음되지 않는다는 것에서.

 

모녀의 통화 루틴은 이러하다.

하루에 한 번 꼭 해를 쬐어 비타민 D를 얻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어디엔 무엇이 좋고 또 무엇이 어디엔 좋고와 같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몇 마디 시시한 이야기를 중얼거린다. 그러다 지난번에 결말을 듣지 못한 파렴치한 이웃의 소동을 마저 이야기해주거나 매년 반복되는 도돌이표 같은 주제로 약간의 언성을 높이다가 마무리는 언제나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고로 전화가 끊긴다.

 

, 지내느냐고.

 

아마도 엄마는 처음부터 그게 궁금했을 테지만 언제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전화가 끝난다. 그렇지만 뱃속에서부터 엄마를 읽어온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이 엄마 나름의 배려라는 걸. 이제 더는 품 안에 자식으로 거둘 수 없는, 너무나 장성해버린 딸의 영역으로 자신을 밀어 넣지 않으려는 배려. 그럼에도 완전히 놓아버릴 수 없기에 (자취를 시작한 지 무척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여전히 비닐로 꼭꼭 싸맨 택배 상자 안에 철마다 다른 김치를 보내준다. 냉장고에는 다 먹지도 못 할 김치들이 하나 둘 쌓여가지만 나는 엄마의 마음을 거절하지 않는다. 이것은 늙은 엄마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지켜주려는, 함께 늙어갈 딸 나름의 배려이다.

 

계절이 지나고, 어떤 김치는 끝내 제 할 일(딸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다 마치지 못한 채 냉장고 안에 오도카니 남겨지지만 어쩐지 슬프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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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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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5.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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