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맥거핀이 가득한 강렬하고 낯선 스릴러

꺼진 영화도 다시 보자|첫 번째 영화 '비밀은 없다'(2015)

김혜란 | 기사승인 2021/05/14

민감한 맥거핀이 가득한 강렬하고 낯선 스릴러

꺼진 영화도 다시 보자|첫 번째 영화 '비밀은 없다'(2015)

김혜란 | 입력 : 2021/05/14 [10:00]

[씨네리와인드|김혜란 리뷰어] 사람들은 '작품성', '흥행성' 등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취향에 따라 영화의 흥망을 판단하곤 한다. 어떤 이의 '인생 영화'가 다른 이에겐 일명 '망작'이라고 치부당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기획 기사를 쓰기로 결정했을 때, 어떤 제목을 붙일지 오래 고민했다. 자칫 많은 이들의 땀과 열정이 녹아든 영화를 부정적으로만 낙인찍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구구절절한 서문도 이 기사가 그렇게 비칠까 하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꺼진 영화도 다시 보자'는 작품성에 비해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한,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작품들을 다시 조명해보고자 하는 의도와 애정을 담았다. 이 기사를 통해 불씨가 채 타오르기도 전에 아쉽게 숨이 꺼져버린 영화들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 영화 '비밀은 없다'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으레 봐왔던 정치 스릴러 영화를 예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지인에게 대뜸 이런 영화가 있더라 하면서 내용을 줄줄 읊었을 정도로 스토리가 충격적이었던 건 차치하고, 권력과 남성성의 통렬한 붕괴가,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믿을 수 없이 통쾌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이는 <비밀은 없다> 특유의 신경질적인 연출에서 기인한 감정이기도 했지만, 콕 집어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복합적인 것이었다. 인상적이었던 필자의 감상과 달리 아쉽게도 <비밀이 없다>는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변론과 추천의 마음을 담아 첫 번째 '꺼진 영화도 다시 보자|<비밀은 없다>'을 시작한다.

 

▲ 영화 '비밀은 없다'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손예진 배우의 하나뿐인 연기

 

<아내가 바람났다>에서 이미 부부로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손예진 배우와 김주혁 배우는 8년 만에 <비밀은 없다>에서 다시 부부로 만나 훌륭한 연기 호흡을 보여준다. 김주혁 배우의 단단하고 성실한 연기는 폭발적인 영화의 균형을 잡는 데에 크게 일조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눈이 가는 배우는 단연 손예진 배우다. 그녀는 <비밀은 없다>에서 국회의원 입성을 노리는 '종찬'의 아내 '연홍'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대중에게 주로 청순한 이미지로 각인된 손예진 배우는 사실 이전에도 <백야행>, <해적: 바다로 간 산적>, <공범> 등의 영화에서 다양한 얼굴을 시도해왔다. <비밀은 없다>'연홍'은 그런 도전의 정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손예진 배우의 얼굴을 내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운전대를 부여잡고 생각하자고 되뇌던 붉게 충혈된 눈, 경찰서에 쳐들어가 화이트보드를 바닥에 던지곤 위에서 발을 구르는 모습은 '연홍'의 처절함과 광기를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손예진 배우의 낯선 연기의 짜릿한 최고조이기도 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빼놓을 수 없는 영화의 몰입 조건이다. 배우의 개인 역량도 있겠지만, 감독이 어떻게 그들의 매력과 눈빛을 끌어내는지도 상당히 중요하다. 이경미 감독이 손예진 배우에게서 끄집어낸 집요함과 살기는 그 자체로 영화의 강렬한 색채를 끼얹음과 동시에 묘한 쾌감을 선사했다. 손예진 배우의 가장 파워풀한 필모그래피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비밀은 없다>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 영화 '비밀은 없다'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폭발적이고 변칙적인 연출

 

이경미 감독은 장편 데뷔작이었던 <미쓰 홍당무>의 재기 발랄한 연출로 충무로에 한 차례 강렬한 눈도장을 찍었던 바 있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인 <비밀은 없다>는 전편의 쾌활함을 조금 걷어내고, 그 자리를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로 대신했다. 공통점은 역시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의 시점으로 작중 모든 사건을 그린다는 점이다. 이는 이경미 감독이 만드는 세계에 더 애착이 가는 이유이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깊은 고찰이 척박한 한국 영화계에서 이토록 색다른 여성을 필두로 영화를 그리는 것 자체가 감독만의 독특한 연출과 메시지의 한 부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게다가 이경미 감독의 이야기는 대체로 여성 캐릭터들이 사회적으로 보편타당한 성격과 선택에서 빗겨 감으로써 더 큰 매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활용은 큰 시너지를 낸다. 바로 <비밀은 없다>가 대표적인 예이다.

 

▲ 영화 '비밀은 없다'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초반부, 여느 평범한 정치 스릴러 영화와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이던 영화는 민진의 실종부터 전혀 다른 연출로 우회하기 시작한다. 의도적으로 변주된 편집, 비틀린 유머, 게다가 하나같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여성 캐릭터, 어느 하나 마음 둘 곳 없는 영화적 장치 안에서, 이야기는 눈을 가리는 덤불을 하나씩 쳐내며 나아가는 방법으로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이는 미스터리를 주로 다루고 있는 영화에 끊임없이 궁금증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서사와도 조응이 뛰어난 화법이다

 

파격적인 내용을 다룸에 있어서 전혀 거리낌 없는 이 영화는 오히려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섬뜩하고 낯선 연출로 관객을 혼란하게 한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할 생각도 없다. 호쾌한 액션과 정치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기대했던 사람에겐 전혀 다른 갈래의 형용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신파를 예상했던 사람에겐 당황스러울 정도의 잔혹함을 안겨준다. 여기에서 <비밀은 없다>가 흥행에 실패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흔한 한국형 정치 스릴러와 전혀 다른 노선을 택한 이 영화는 흥행에 있어서 훨씬 더 까다로운 길을 택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면에서 혹자들에게 비판받는 이 영화의 과잉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한국 영화계에서 보석같이 빛나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전형성을 탈피하고, 도전적인 연출을 통해 또 한 번 충무로에 잊히지 않는 자취를 남겼음은 확실하기에 

  

▲ 영화 '비밀은 없다'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한국 사회의 깊은 어둠에 가닿은 통찰은 맥거핀일 뿐

 

'연홍'은 남편의 선거를 성실하게 서포트하지만,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져 곤욕을 치른다. 그녀의 딸인 '민진'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동성 애인 '미옥'과 함께 담임 선생님을 협박하여 시험지를 얻어낸다. '종찬'은 딸의 담임 선생님과 불륜을 저지르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죽이게 된다.

 

위와 같이 글로만 인물들을 나열해도 <비밀은 없다>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꼬집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홍'이 딸의 실종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갈수록 이런 문제들이 복잡하고 촘촘하게 엮인 채로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계속해서 개입하는 소수자 문화는 그 자체로 이 영화가 무엇을 더 말하고자 하는지를 나타낸다. '정치', '선거'라는 소재를 갖고 왔음에도 영화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위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보다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불쾌와 분노로 더 수월히 읽히는 이유다. 이런 면에서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를 필두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사회적 문제를 중점으로 두지 않은 건 더 흥미로운 일이다. <비밀은 없다>는 정치는 고사하고, 영화 내내 같이 달려온 선거의 결과에도 관심이 없다. 심지어 어느 시점부터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년 남성들의 선거는 그저 중학생 소녀들의 과거 이야기에 살짝 곁들여진 양념에 불과해진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무지'라는, 어찌 보면 케케묵은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는 연출부터 주인공, 모든 것이 생경한 이 영화를 이해하게 만들고, 무시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딸의 실종, 나아가선 죽음을 파헤치는 엄마의 이야기를 이토록 민감한 맥거핀들을 곁들여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고, 결국 상영관에 걸었다는 건 짐작만으로도 쉽지 않다. 필자가 이토록 이 영화가 쉽게 묻히면 안 된다고 부르짖는 까닭이기도 하다.

 

▲ 영화 '비밀은 없다'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결말에 다다라서야 '연홍'이 딸의 애인인 '미옥'과 반듯하게 마주 안은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미옥'의 입을 빌린 '엄마는 멍청해서 자신이 지켜줘야 한다'던 '민진'의 말이 일순간 아주 깊숙히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가난하고 왕따인 애인 미옥’, 바람피는 남편을 성심껏 서포트하는 엄마 연홍’. 자신의 소중하고 가여운 사람들을 지키려 했으나, 결국 희생당하는 '민진'. 오늘날 사회에서 이름조차 내세울 곳 없이 희생당하는 수많은 소수자. 2시간이 채 안 되는 영화에서 쏟아진 문제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산재되어 영화가 끝난 후에도 혼란을 지울 수 없다. 두 번 생각하고, 세 번 생각하고, 끊임없이 곱씹게 된다. 이는 분명 번거롭고, 당혹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그동안 필자의 마음을 흔들었던 여느 훌륭한 영화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김혜란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cinerewind@cinerewind.com

Read More

  • Posted 2021.05.14 [10:00]
  • 도배방지 이미지

비밀은없다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