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사라진 세계를 그리는 아포칼립스

류수연 | 기사승인 2021/05/20

사랑이 사라진 세계를 그리는 아포칼립스

류수연 | 입력 : 2021/05/20 [11:15]

▲ 영화 '러브리스'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씨네리와인드|류수연 리뷰어] 1947,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발행한 격월 과학 잡지 불리틴」은 지구 종말 시계라는 개념을 소개했다핵전쟁이 일어나 인류가 종말로 치달을 시점을 자정이라 상정한 과학자들은 다가올 인류의 위기를 계산하며 위태로운 시곗바늘 속에 위치시켰다. (출처: 두산백과) 50여 년이 흐른 지금,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공포를 남겼지만 낙관적이게도 인류에게 종말은 아주 먼 이야기만 같다. 그러나 영화 <러브리스>는 자정에 다다른 시간의 고요하지만 비참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다른 행성의 이야기도 아니고, 먼 미래의 이야기도 아니다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시대, 사랑이 사라져 버린 세계야말로 아포칼립스와 다름없지 않은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종말의 풍경 - 아이의 실종으로 대변되는 아포칼립스

 

영화는 사랑의 종말이 도래한 세계의 풍경을 한 아이(알로샤)의 실종을 통해 그리고 있다. 알로샤는 부모의 이혼 과정 중에 엄마(제냐)와 아빠(보리스), 그 누구도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다음 날, 아이는 학교를 나선 뒤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의 남겨진 흔적을 더듬어 가는 제냐와 보리스는 알로샤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서로를 저주하는 데 열중한다. 알로샤의 실종으로 가정이 파국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그 파국의 결과가 바로 알로샤의 실종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는 이미 병들었으며 그러한 병리적 징후로 사랑의 결실이어야 할 아이가 사라진 것이다.

 

알로샤가 사라진 뒤 맞이하는 제냐와 보리스의 일상은 마치 처음부터 알로샤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부재의 공간이 일상을 뒤흔들 만큼 커다랗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제냐와 보리스가 아이의 실종 이후에도 알로샤와 함께 살던 아파트로 돌아가지 않고 각자의 연인의 집에 머무는 것으로 극대화된다. 제냐와 보리스가 살던 아파트는 알로샤가 사라지기 전에도 이미 으로써의 구실을 잃어버린 후였고 아이가 머무를 곳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바로 그런 모습이 한 가정 이윽고 한 세계가 무너지는 아포칼립스적 정경이다. 영화는 지구가 폭발한다거나 외계인이 침공해온다거나 죽었던 이들이 살아나 산 자들을 먹잇감 삼는 스펙타클을 통해 인류가 처한 재난 상황을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마저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 모습 그리고 온갖 종류의 증오로 점철된 뉴스가 가득한 우리의 일상이 바로 재난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 영화 '러브리스'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계속된 수색에도 성과가 없자 제냐와 보리스는 혹시라도 알로샤가 외할머니 댁에 가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곳으로 향한다. 그러나 제냐는 진작에 알로샤를 낙태시키고 보리스를 버렸어야 했다며 한 톨의 동정도, 사랑도 내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마주하고는 참담한 심경을 느낀다. 영화는 알로샤의 실종으로 비유되는, 사랑이 사라진 세계가 결코 단일한 사건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러브리스세계 속 파국의 기미는 너무나 오래되어서 썩어 들어가는 고목의 내부처럼 세대를 타고 점점 더 번져만 간다. 이는 영화 후반부에 새로운 연인 마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마저도 방치하고 돌아서는 보리스를 통해 더욱 잘 드러난다.

 

일상 속에 부재하는 사랑

 

영화 속 인물이 살아가는 곳곳에는 사랑에 대한 불신이 도사린다. 감독은 그것을 교묘하게 혹은 드러내 놓고 관객에게 보여준다. 보리스가 차 안에서 틀어놓은 비관적인 라디오 뉴스 속에서,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가 사라졌음에도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마샤의 말 속에서,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은 채 요새 같은 집에서 홀로 살아가는 제냐의 어머니에게서, 연인을 앞에 두고 다른 남자와 은밀하게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여인의 모습에서, 친구의 생사보다 비밀기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아이의 침묵에서, 어린이 실종 사건을 대하는 냉소적인 경찰의 말투에서 그리고 민간 수색 단체에게 사건을 일임해버리는 국가 권력 속에서 우리는 도처에 존재하는 사랑의 부재를 읽을 수 있으며 이 부재가 너무나 편재하는 탓에 인물들 중 누구도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리하여 <러브리스>를 감상하는 관객은 그 안으로 들어가 세계의 종말을 함께 맞이하며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풍경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처럼 인물의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

 

▲ 영화 '러브리스'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시간이 흐르고 모스크바에 눈이 내려앉는다. 새로운 단서를 얻은 수색대와 함께 보리스는 알로샤의 비밀장소인, 폐허가 된 한 건물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그는 알로샤의 외투를 발견하지만 끝내 알로샤만은 찾을 수가 없다. 카메라는 무너지기 직전의 파편화된 건물의 모습을 세밀하게 비춘다. 이 폐허 속의 풍경은 황폐화된 러브리스속 사랑이 사라진 세계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무너져 내린 알로샤의 마음을 상징한다. 한 세계가 무너져 내렸지만, 시간은 비정하게 흐른다. 이윽고 시체 안치소로 향하는 제냐와 보리스. 이들은 상처로 엉망이 된 아이의 시신과 고통스럽게 마주한다. 알로샤에겐 가슴에 점이 있다고, 이 시신은 알로샤가 아니라며 제냐와 보리스는 울먹인다. 감춰진 타인의 내면을 헤아리지 못하는 제냐와 보리스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시신을 눈앞에 마주하고서야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알로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애를 포기할 생각 없었어. 듣고 있어? 보낼 생각 없었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물리칠 외계인도, 좀비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도, 소행성을 파괴할 핵무기도 필요 없는, 그저 사랑이 사라진 세계를 타개할 방법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이 고요하게 침잠하는 종말의 세계는 그래서 더 비참하고 그래서 더 가슴 아프다. 실종 전단지가 바래질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알로샤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는다. 이후 각자의 생활을 이어가는 제냐와 보리스. 그러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반경을 옮긴들 행복을 쟁취해낸 이는 없다. 이곳은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종말의 세계이고 여전히 티비에서는 암울한 뉴스가 흘러나오며 영화는 끝내 봄이 오지 않는 모스크바의 겨울을 비춘 채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정경이 마무리된다.

 

▲ 영화 '러브리스'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창과 거울의 반영적 이미지

 

<러브리스>는 눈 덮인 숲 속 나무들과 그 모습을 반사하는 호수의 이미지로 시작한다. 이것은 영화가 사랑이 사라진 특수한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그 이미지는 우리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실제 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으며 이러한 거울 이미지를 통해 영화적 세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 픽션의 서사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서늘함을 느끼는 것은 <러브리스> 속 세계가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영화는 우리의 실제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 영화 <러브리스>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 <러브리스>에는 인상적으로 반복되는 샷이 등장한다. 영화 초반부와 후반부에 나오는, 창을 통해 바라본 풍경과 카메라가 보여주는 창밖의 풍경이 경계를 넘나들면서 하나로 이어지는 샷이다. 알로샤는 실종되기 전, 책상에 앞에 앉아 한참 동안 창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카메라는 창이 아니라, 창 너머의 실제 공터와 겨울 숲을 비추지만 이윽고 알로샤의 시점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샷으로 서서히 바뀌며 하나로 이어진다. 창문에는 물기가 어려있을 뿐 바깥의 풍경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 알로샤는 돌아오지 못하고 카메라는 이전 샷의 순서와 다르게 회색의 때가 끼인 창을 먼저 비춘다. 카메라는 서서히 풍경 안으로 진입하지만 순백의 눈이 쌓인 실제의 공터와 회색의 불순물이 가득한 창의 풍경은 영원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알로샤의 실종으로 상징되는 아포칼립스의 병리적 징후가 영원히 하나의 상흔으로 세계에 남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미래를 예감하게 한다. 

 

그렇다면, 사랑이 사라진 원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영화는 사랑이 사라진 원인을 디지털 기술환경의 영향으로 돌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 소통을 어렵게 하는 디지털 기술환경으로 인해 인간은 실제의 인간보다 모든 것이 편집 가능한 가상의 이미지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이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SNS에 할애하는 제냐라는 캐릭터를 통해 잘 드러난다. 그녀는 새로운 연인과 데이트를 할 때에도 연인과 직접 눈을 마주치기보다 SNS에 올릴 사진을 찍는 데 급급하다. 알로샤가 실종되었을 때도 제냐는 알로샤의 추억이 담긴 아이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고 SNS 속 알로샤의 사진을 바라보며 슬픔을 달랜다. 디지털 기술환경이 소통에 장애물이 된다는 것은 제냐가 자신의 어머니 집을 찾아갈 때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유일한 소통 수단인, 배터리가 닳은 핸드폰으로 인해 제냐의 어머니는 제냐가 그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나타나지 못한다. 디지털 기술환경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실제 사람과의 만남을 기피하는 것은 비단 제냐의 가족뿐만이 아니다. 제냐의 연인 또한 포르투갈에서 일하는 딸을 오로지 화상 통화를 통해 마주한다. 모스크바로 자신을 보러 올 것이냐고 묻는 아버지를 향해 딸은 지금도 보고 있는걸요.’ 라고 답한다. 화상 통화를 통해 그는 오로지 파편화된 딸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가상공간의 딸로부터의 연결은 환상에 불과하며  통화가 끝나는 순간 그는 자신의 소외를 더 깊이 체감하고 만다.

 

영화 <러브리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현실을  처절하게 반영한다. 가상의 이미지에 더욱 매료되는 우리 자신과 그 이미지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 외로움은 배가 되고 소통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인간은 언제까지나 사랑의 종말을, 사라져 버린 아이를 그저 목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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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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