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의 세계에서 멋지게 복수하는 법

<크루엘라>(2021) : 디즈니, 계급이 아닌 지위를 말하다

최나윤 | 기사승인 2021/05/28

지위의 세계에서 멋지게 복수하는 법

<크루엘라>(2021) : 디즈니, 계급이 아닌 지위를 말하다

최나윤 | 입력 : 2021/05/28 [10:00]

▲ 크루엘라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

 

[씨네리와인드|최나윤 리뷰어]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판 중 이토록 현대적인 작품이 또 있었던가영화 '크루엘라'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놀랍게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디즈니의 여타 실사판 영화들에 비하면 그나마 최근인 편에 속한다저건 억지인가 마법인가 헷갈리는 부분 역시 그 장면만을 위한 장치일 뿐판타지적 요소가 영화를 크게 좌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현실과의 위화감이 줄어들었다'크루엘라'가 선과 악의 싸움’, ‘주인공이 빌런으로 거듭나는 과정’, 그러나 어딘가 동화스러운 선에서 마무리되는 권선징악을 모두 포함하는 그야말로 디즈니적인 실사판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그러나 이 작품이 유달리 현대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바로 작품에 녹아있는 현대적인 지위의 세계’ 때문이다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1970년대 후반의 런던정확히는 크루엘라가 갈망하던 그들의 삶에 있다크루엘라는 상위계층에 도달하고자 한다결혼으로도 국가적 영웅으로도 아닌 자신의 직업적 커리어를 통해서 말이다.

 

영화 속 런던 상류층을 이루는 절대적인 계급틀은 굳건하나 분명 거기에는 직업적 지위도 함께 작용한다'크루엘라'의 악당 바로네스는 이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인물이다그녀는 남작의 부인이라는 계급을 가졌으나 그와 동시에 런던 패션계를 꽉 잡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로도 통한다크루엘라가 바로네스에게 복수하는 방법도 무척이나 현대적이다재스퍼는 크루엘라가 바로네스를 죽일까 염려하지만크루엘라는 전혀 다른 방법을 택했다죽음이나 패가망신추방신분 박탈 따위가 아니다바로네스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는 것, 즉 그녀의 사회적 지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크루엘라가 선택한 복수였다크루엘라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베로네스의 커리어를 철저히 무너뜨린다. 그리고 패션계의 떠오르는 루키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크루엘라는 자신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는다. 지위를 위해서라면 딸도 죽일 수 있는 바로네스의 잔혹함을 만천하에 공개하며 그녀가 가졌던 런던 상류층으로서의 위신을 경찰차와 함께 보내버린다. 신사적이면서도 꽤나 합법적인 이 복수는 다른 복수극에 비해 통쾌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네스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무너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타격을 받았다그녀가 진정 사랑했던 것은 남작 부인으로서의 저가 아닌 패션 디자이너로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인정받은 선망의 눈길들이었기 때문이다모성애를 포기한 디즈니는 고전적 악녀가 대신 현대적 악당을 얻었다. 그리고 고전적인 계급의 틀에서 벗어난 주인공의 복수는 그만큼 더 세련돼졌다.

 

▲ 크루엘라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

 

'크루엘라'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저와 닮은 강아지를 키운다. 강아지들은 곧 주인의 사회적 위치를 말해주었다. 크루엘라는 에스텔라이던 시절 길에서 강아지를 줍는다. 잘 씻지도 못해 꼬질꼬질한 강아지는 학교에서 쌈박질을 하고 커서는 도둑질을 일삼던 에스텔라와 비슷해 보인다. 심지어는 그녀가 바로네스 밑에서 일하며 나름 가능성을 엿보았을 때조차 그녀의 위치는 여전히 강아지가 있는 아지트였다. 반면 바로네스의 달마시안들은 상위계층을 대변한다. 그들은 잘 가꾸어졌으며 목욕을 하러 샵에 맡겨지기도 한다. 상류층의 달마시안들은 가진 게 없는 어린 에스텔라를 충분히 공격할 수 있었으며, 그녀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가기도 했다. 그러나 종국엔 어떻게 되었는가. “앉아.” 크루엘라는 자신에게 달려들던 그 달마시안들을 완벽하게 길들였다. 상위계층으로의 완전한 발돋움을 알리는 순간이다.

 

계급은 저물고 지위는 뜨고 있다. 신분은 빛을 다해가지만 개인의 역량은 이제 시작이다. 비록 크루엘라가 저택을 되찾은 데에는 계급의 영향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것은 크루엘라가 아닌 에스텔라의 몫에 불과하다. 에스텔라는 죽었고, 여기엔 크루엘라만이 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거기에 있다.

 

▲ 크루엘라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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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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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5.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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