뜀박질이 멈추었다, 그 다음은?

Culture Review|연극 '소년이 그랬다' (2021)

최나윤 | 기사승인 2021/06/14

뜀박질이 멈추었다, 그 다음은?

Culture Review|연극 '소년이 그랬다' (2021)

최나윤 | 입력 : 2021/06/14 [10:00]

[씨네리와인드ㅣ최나윤 리뷰어] 청소년극을 볼 때 이 극이 왜 청소년극인지 생각해본다. 올해 국립극단의 「소년이 온다」를 보면서도 생각해봤다. 촉법소년 이야기를 다루어서가 아니다. 극의 리듬이 청소년과 닮아있었다. 민재와 상식은 달린다. 달리고 또 달린다. 이유가 있어서 달린다기보다 원래 그런 거라는 듯 달린다. 멈추면 안 될 것처럼, 멈추면 세상이 멈추기라도 할 것처럼 달린다. 그러다 그들은 정지한다. 그들의 걸음이 멈춘 곳은 돌을 던진 육교 위, 경찰서 창살 안, 그리고 법정 앞이었다.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그들의 뜀박질에 이유가 붙기 시작했다. 그들은 앞으로 멈추게 될까 아니면 더 힘껏 뛰게 될까. 

 

▲ 연극 '소년이 그랬다'     ©국립극단

 

소년은 왜 뜀박질을 멈췄을까

 

무대를 중심으로 양옆은 관객석이다. 민재와 상식은 무대를 뛰어다니다 관객석 사이를 가로지른다. 그렇다고 그들의 뜀박질이 관객과의 소통이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들이 뛰어다닌 공간이 하필 관객석이었을 뿐이다. 소년들은 그날의 사고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하필' 운전자가 지나갔다고, 그래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말이다.

 

쉼 없이 달리던 소년들의 얼굴에서 땀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 열기는 뜨겁지가 않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맴돈다. 습하고 답답하다. 청소년기'답게' 밝게 타오르지도 분출되지도 못한 그들의 달리기는 끈덕한 찝찝함으로 남았다. 그들의 뜀박질은 청춘도 열정도 아니었다. 아무런 의도 없는, 그저 그맘때 애들이 가질 법한 에너지 그 자체일 뿐이었다. 이를 두고 방황이라 하기에도 모호하다. 소년들의 방황은 시작도 전에 끝나버렸을지도 모른다. 가장 뜨거운 온도를 향해 가던 불씨는 발화 직전에 제압되었다. 다행인가?

 

▲ 연극 '소년이 그랬다'     ©국립극단

 

촉법소년을 바라보는 시선

 

촉법소년은 어렵다. 함부로 정의 내릴 수도 없다. 그래서 이 극은 무겁다. 국립극단에서 본 청소년극 중 가장 무거웠다. 민재와 상식은 자신을 괴롭히던 폭주족 ‘돼지’에게 복수할 계획을 꾸민다. 즉흥적인 계획이었다. 그들은 육교로 올라가 차도를 향해 돌을 던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장난은 사고가 되었다. 놀이터를 이루던 철물구조는 취조실이 되었다. 소년들의 유쾌함을 대변하던 DDR식 조명은 어느새 그들의 불안한 심장 소리를 대변하고 있었다. 범죄 현장을 지켜본 관객들. 나름의 사연들. 촉법소년 이야기에 목소리를 높이는 형사들. 그 안에서 관객이 취해야 하는 스탠스는 무엇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렇게까지 확실한 대답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하기에 극은 70분 내내 관객을 압박했다.

 

<소년이 그랬다>는 촉법소년들의 시점을 보여준다. 피해자를 많이 비추지도 않으며, 형사들은 관계자일 뿐 당사자가 아니다. 그렇게 이 극은 소년들을 한 번만 더 생각해보라 이야기한다. 청소년 시기의 나라면 그들을 이해했을지 모르겠으나(이마저도 확실치 않다), 유감스럽게도 관객석에 앉아있던 나는 이미 형사(정도)와 같은 생각을 하는 어른이 되었다. 연극은 1시간이 넘게 촉법소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토해냈으나 정작 이를 보는 나는 ‘모르겠다’를 일관하며 무책임했다. 결국 불편함과 죄책감을 안고 극장을 나왔다. 편들어주지 못한 그저 그런 어른으로 나왔다. 후련치 못하다. 그러나 궁금증은 들었다. 그들이 결국 피워낼 불은 방화였을까, 불꽃놀이였을까.

 

▲ 연극 '소년이 그랬다'     ©국립극단

 

박제된 소년

 

2021년 <소년이 그랬다>는 꽤 파격적인 더블캐스팅이었다. 2인극으로 진행되는 이 연극에는 총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배우 한 명당 소년과 형사를 하나씩 맡아 연기해야 한다. 더블캐스팅은 김우진, 윤동원 / 남수현, 이문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전자의 캐스팅은 청년이고 후자는 중년이다. 즉 이들은 더블캐스팅으로 청년과 중년이 같은 역할을 연기한다. 내가 본 소년들은 중년이었다. 중년이 연기하는 촉법소년은 희한하게 이상하지 않았다. 어쩌면 저 모습이 소년들의 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를 친 소년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이를 먹을 테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사회로부터 낙인찍힌 그들은 과연 더 나아갈 수 있었을까? 사회의 눈초리 속에서 그 시절에 박제되어버린 소년들. 그 모습이 중년의 배우가 연기한 소년이었다. 이러한 생각이 든 순간부터 시공간이 뒤틀렸다. 내가 보고 있는 저들은 정말 소년일까? 아니면 그 시절에 갇혀버린 올드보이일까?

 

올드보이는 뜻밖의 극적 재미를 가져다주었다. 위화감 없이 소년을 연기한 중년 배우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청년 배우들이 연기한 소년들은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지금보다 더 얄미웠을지도 모르겠다. 세월은 무시할 수 없다. 삶에 대해 수없이 생각하고 경험하고 판단했을 중년 배우들이다. 그들이 표현한 소년은 소년보다 더 소년스러웠고, 그래서 소년스럽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알게 되는 당시의 감정들도 있다. 소년들은 과연 배우들이 연기한 만큼의 감정을 그 당시에도 느끼고 있었을까? 어른이 연기한 촉법소년에는 ‘책임’이라는 무게가 실려있었다.

 

순간의 장난으로 어른들의 사회에서 심판받아야 했던 소년들. 법적 용어 하나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두려움에 갇혀야 했던 소년들. 아직 자신의 내면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어 그럴싸한 자기방어도 하기 힘들었던 소년들. 소년들은 ‘무섭다’라고만 표현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더 많은 감정과 생각이 담겨있다. 엇비슷한 시기를 이미 거쳐온 어른들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어쩌면 그들보다 그들의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도 있다. 광해처럼 어린 날의 실수라며 그들을 감싸지는 않더라도 그들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시도쯤은 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소년이 그랬다>는 ‘죄를 저질렀다’, ‘나쁘다’, ‘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평면적인 기삿거리에서 벗어나 어른으로서 ‘생각’을 해보자고 말한다. 극장을 나서며 그 불편하고 답답한 마음을 잘 가져가라고 말한다.

 

▲ 연극 '소년이 그랬다'     ©국립극단

 

결국 소년들의 달리기는 다시 시작된다이제 그들의 뜀박질에는 충분한 이유가 생겼다사회의 눈 속에서 최대한 웅크리기 위한 달리기이다오고 가는 발자국 속에서 그들은 뛰고 또 뛰어야 한다일찌감치 소년들을 낙인찍은 그 날의 사고는 벗겨지지도멈추지도 않는 빨간 구두가 되었다. 그들은 계속 달린다. 앞으로도 달릴 것이다. 바로 우리 옆에서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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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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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6.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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