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를 통해 새로운 감정을 탄생시키다

Review|'데몰리션'(2015)

오채림 | 기사승인 2021/07/12

파괴를 통해 새로운 감정을 탄생시키다

Review|'데몰리션'(2015)

오채림 | 입력 : 2021/07/12 [16:04]

▲ 영화 '데몰리션'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씨네리와인드|오채림 리뷰어] 사람은 자신의 내면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계단에서 넘어지면 피부의 상처를 통해 다쳤음을 인식할 수 있지만 내면은 현재 괜찮은지, 상처가 났다면 깊이가 얼마나 큰지 스스로 확인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감정적인 태도보다는 이성적인 것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나의 내면을 알아차리기란 수많은 과정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 영화 ‘데몰리션’ 은 감정에 무감각해진 주인공 데이비스가 내면의 감정에 솔직해지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슬프게도 아내가 죽었는데 괴롭거나 속상하지도 않아요'

 

데이비스는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에도 상실감은커녕 슬픈 감정조차 느끼지 못한다. 죽은 아내를 추모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눈물을 쥐어짜 보기도 하지만 무감각할 뿐이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에 놓여있는 고장 난 자판기 기계에 관심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돈을 넣었지만 초콜릿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판기 회사에 직접 자필편지를 써 내려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편지에 항의라는 명목 하에 데이비스 자신에 대한 얘기를 적어 내려가며 편지를 완성해낸다. 매일 출근길 기차에서 마주친 사람과의 대화, 자신이 일하는 방식과 더불어 아내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던 이야기, 자신이 아내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 그리고 아내의 죽음까지 그동안의 삶 속 모든 것들을 세세하게 나열하며 지금껏 무감각하게 삶을 살아가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열어보는 시도를 한다.

 

▲ 영화 '데몰리션'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해'

 

이 영화의 포인트는 데이비스가 모든 것들을 분해하고 파괴하는 과정에 있다. 감정을 애써 감추고 덮어두려 하던 데이비스는 장인어른이자 자신의 직장 사장인 필의 말을 듣고 모든 것들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꺼내놓기 시작한다. 평상시 미세한 소음을 내던 회사 건물의 화장실 문을 분해하기도 하고 집을 철거 중인 현장을 찾아가 망치를 들고는 온갖 물건과 건축물들을 부수기도 한다. 그럴수록 평상시 보이지 않았던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길거리에 쓰러져있는 나무부터, 아내가 남겨두었던 냉장고 안 속 쪽지까지 하나둘씩 발견해나가고 아내에 대해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떠올린다. 감정과 사소한 사항들은 언제나 배제한 채 살아가던 데이비스가 분해와 파괴를 통해 자신이 느끼는 새로운 감정을 탄생시키고 이를 몸소 느끼게 된 것이다.  

 

▲ 영화 '데몰리션'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데몰리션>에는 분해와 더불어 어린아이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데이비스의 항의편지를 받고 연락을 건네 온 고객센터 직원 캐런을 통해 만나게 된 그의 아들 크리스, 데이비스가 눈물연기를 할 때 웃으며 뛰어 놀던 어린이들, 아이들이 달리기를 하는 장면, 마지막 회전목마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 등을 통해 데이비스에게 반복적으로 과거 감정들을 상기시킨다.

 

어린 시절이 데이비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는 사실은 바닷가에서 캐런과의 대화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어렸을 적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웠을 때 행복했던 기억, 유년시절 달리기에 뒤쳐져 느꼈던 패배감과 같은 솔직한 감정들에 대해 떠올리며 어릴 적 당시의 기분을 솔직하게 표현해낸다. 데이비스는 수많은 성패를 지닌 투자회사의 직원으로서 성과로 자신을 보여주고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온 인물이다. 늘 꼴지를 차지하던 어린 시절의 데이비스는 더 이상 뒤처지지 않기 위해,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사로운 감정들은 무시한 채 끊임없이 달려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결국 그는 감정에 무감각해지는 과정을 거쳐 수많은 성패를 지니고 60억 달러의 성과를 이루어낸 투자회사의 직원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그는 모순적이게도 남들에 비해 뒤처지던 어릴 때를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덧붙여 말한다. 이는 데이비스에게 어린 시절이란 현재 무감각하게만 살아가는 그가 유일하게 자신의 감정에 진실하던 때임을 드러내며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지금과도 같은 성과보다 자신의 온전한 감정임을 드러낸다. 

 

▲ '데몰리션'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데이비스가 자신의 감정을 되찾아가는 과정 중 하나로 데이비스가 헤드폰을 낀 채 거리를 방황하며 춤을 추는 모습 또한 주목해볼 수 있다. 그는 캐런의 아들 크리스가 준 음악 테이프를 들으며 도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눈치 따위 보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흐느적대며 춤을 춘다. 한편으론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하는 데이비스의 모습은 어린 시절 이후 처음 표출해내는 서툰 감정들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 보인다.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는 미숙한 그가 한편의 방황하는 사춘기 청소년처럼 자신의 과장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다. 데이비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후 굳은살처럼 박혀버린 무감각의 감정을 떼어내고, 춤을 통해 직접적으로 표현해내는 과정을 겪으며 자신을 찾아나간다. 

 

▲ '데몰리션'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차 안에서 우연히 아내가 남긴 쪽지를 발견한 데이비스는 결국 그녀의 흔적들을 하나 둘씩 떠올리게 된다. 이는 데이비스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거대한 이별의 아픔을 온전히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함께 살아오던 아내의 죽음은 아무리 벌어진 일이라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즉각적인 아픔보다는 판단력을 떨어트리고 무감각하게 만들 듯 데이비스 또한 자신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슬픔을 인지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동안 감정을 숨긴 채 덤덤한 모습만을 보이던 데이비스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분해와 파괴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깨달아버린 그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 속 홀로 반대의 길을 걸어가며 분해와 파괴를 통해 감정을 찾아나간 데이비스처럼, 사람은 저마다 감정의 속도가 존재한다. 영화 <데몰리션>을 통해 나만의 감정 속도를 찾아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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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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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7.1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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