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삶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

지금, 여기, 한국의 재난을 그리는 영화 「엑시트」(2019)

류수연 | 기사승인 2021/07/14

출구 없는 삶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

지금, 여기, 한국의 재난을 그리는 영화 「엑시트」(2019)

류수연 | 입력 : 2021/07/14 [14:27]

▲ <엑시트> 스틸컷   © CJ ENM    

 

[씨네리와인드|류수연 리뷰어] 시대가 느끼는 불안공포가 영화 속에서 재난으로 형상화되며 따라서 시대 별로 그려지는 재난은 영화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재난 그 자체를 내러티브적 사건으로 다루는 한국형 재난영화는 한국의 시대 별 불안과 공포를 읽어갈 수 있는 텍스트가 된다. 다시 말해, 재난영화는 한 사람이나 특정 집단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 마비와 일상의 광범위한 파괴를 공통적으로 그리고 있으므로 재난영화라는 것은 우리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해석해내는 지표가 될 수 있다비교적 최근인 2019년에 개봉한 재난영화 <엑시트> 2020년대를 맞이하는 새로운 시대의 재난을 보여준다관객수 942만명이 동원된 이 영화는 <해운대이후 등장한 재난영화 중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로써 바로 지금여기, 한국의 재난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이는 재난영화가 보여주는 스펙타클한 재현적 측면과 함께 <엑시트>만이 가지는 서사적 장치에서 기존의 재난영화와는 다른관객의 욕구를 월등히 충족시켜주는 무언가가 있음을 확연하게 드러낸다<엑시트>가 그려내는 이 시대의 불안은 무엇이며 어떤 지점에서 통상의 한국형 재난영화와 장르적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한송희(2019)는 자신의 저작 <한국 재난영화의 정치적 무의식: 2010년대를 중심으로>에서 재난영화의 보편적 서사법칙에 대해 언급했다. 

 

"대체로 '재난으로 인한 무질서 →  일련의 시련   한 명의 지도자 / 구원자를 통한 재난 극복'이라는 단순한 서사구조를 특징으로 하며, 악에 대한 선의 승리, 차이와 갈등의 극복을 통한 질서 회복, 공동체적 통합 등의 시학적 정의를 추구한다."

 

영화 <엑시트또한  재난으로 인한 무질서 → 일련의 시련 → 재난 극복이라는 단순한 서사구조를 특징으로 가지며 주요 인물들이 결말부분에 구조되면서 해피 엔딩(공동체적 질서의 회복)으로 끝이 난다한국형 재난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인 가족주의에 대한 묘사도 여전히 중요한 지점으로 영화 속에서 작용한다이것은 핵가족마저 파편화된 형태로 등장하는 헐리우드의 재난영화와 달리 한국형 재난영화에서는 대체로 여러 세대가 얽혀 있는 가족 간의 역학 관계를 삽입한다재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파트인 용남’ 어머니의 칠순 잔치는 주인공 용남이 현재 처해있는 사회적 위치를 드러냄과 동시에 영화 전체 톤인 코미디를 강하게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그러나 영화 <엑시트>는 통상의 한국형 재난영화와는 다른변주된 장르적 특성을 가진다

 

▲ <엑시트> 스틸컷    © CJ ENM   

 

영화 초반가족과 사회 집단 내 모두에서 잉여인간으로 취급 받는 백수 ‘용남은 시종일관 존재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웃음을 자아낸다. 기존의 한국형 재난영화가 중반부 재난으로 인해 생사를 오가는 극단적 상황을 대비시키기 위해 인물에 대한 코미디적 요소를 삽입하는 것에 반해 <엑시트>에서는 재난을 맞닥뜨리고 그것을 헤쳐 나가는 과정마저도 코미디를 통해 풀어낸다여기서 드러나는 주된 정서는 웃프다’ 로 설명할 수 있다이는 꽤나 미묘한 전략인데재난영화를 볼 때 관객의 몰입도는 주인공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일행 중 누가 목숨을 잃을 것인가어떤 종류의 스펙타클이 등장하여 중심 인물들의 생사를 나누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묘사에 달려있다. <엑시트>에서는 목숨에 위협이 갈 정도로 유독한 독가스 테러가 일어나기는 하지만관객이 기대하던 혹은 보곤 하던 인물의 죽음은 등장하지 않는다. ‘용남의 누나인 정현이 유독 가스를 들이켜 큰 고통을 받지만 기존의 재난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잔인한 죽음의 형태로 나아가지 않는다이러한 재난 형상의 묘사로 인해 <엑시트>에서는 생사의 갈림길이라는 무거운 서사로 관객을 이끌지 않는다다만 이 난감한’ 상황 앞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고난을 자력으로 헤쳐나갈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렇다면 왜 <엑시트>는 죽음의 공포가 소거된 재난영화를 만들어 내고 이에 대한 전략으로 코미디 장르를 엮은 것일까?

 

▲ <엑시트> 스틸컷 © CJ ENM     

 

<엑시트>에서 보여지는 재난 상황은 기존의 재난영화에서 보여지던, 건물이 폭파되거나 무너지고 사람들이 휩쓸리는 이미지를 필두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재난은 더 이상 하나의 거대한 스펙타클로 우리에게 느닷없이 충돌해오지 않는다. 소리 소문 없이 퍼져서 잠식되는 유독가스처럼 지금 현재의 재난은 서서히 잠식되는 형태로 일상에 행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엑시트>에서 보여주는 재난에 대한 정의와 재난 주체에 대한 인식이 지금 우리 시대를 새롭게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전의 한국형 재난영화에서 서사를 이끌어가던 중심인물이 주로 와해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아버지'였다면 지금 현 사회에서 벌어지는 재난의 주인공은 노동 시장에서 배제된 잉여인간 혹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감정노동을 하는 청년들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와 가족에게서 배제된 채 잉여인간이라 불리는 '용남'과 같은 청년 세대의 존재 혹은 그들이 노동하는 일상 자체가 재난이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일상이 재난과 같다면, 관객은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그것은 그 자체로 충격이지 않을까? 이제는 재난적 사건이 주는 공포보다 일상을 두려워해야 하는 현실에 처해있다면 우리의 일상을 닮은 재난의 형상은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기에 끊임없이 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 일상에 대한 불안을 상쇄시켜주면서도 지속적으로 서사를 이끌어 가기 위해 영화는 '웃픔'의 정서를 포함하는 코미디 전략을 짜야만 했던 것이다. 또한 <엑시트>는 죽음이라는 원초적 공포가 사라지면서 필연적으로 감소하게 되는 관객의 몰입도와 스릴감을 높이기 위해 주인공 '용남'과 '의주'가 유독 가스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을 스크린 안의 스크린을 통해 다른 이들이 이들의 역경을 지켜보도록 하는 연출 방식을 이용한다. 다시 말해, 관객은 이중으로 (재난을 피해 고군분투하는 용남과 의주의 상황에 대한 몰입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감정에 대한 몰입) 인물들과 동치되면서 밀도 있는 몰입을 가지게 된다.

 

▲ <엑시트> 스틸컷 © CJ ENM    

 

<엑시트>에서 주인공들이 재난을 타개해가는 과정 또한 기존의 한국형 재난영화와는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영웅적인 지도자도, 도덕적인 구원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재난의 원인은 제약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앙심을 품은 개인의 테러로 시작되며 유독 가스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주인공 일행이 알아내지도 않는다. 재난이 시작되고 사라지는 일련의 과정은 내러티브에서 스치듯 지나갈 뿐이다. 영화는 '자력으로' 재난을 헤쳐 나가는 '용남'과 '의주'를 보여줄 뿐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청년 세대가 처해있는 세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더는 국가의 시스템과 제도가 이들을 최소한의 인간으로 대우해주는 울타리망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것, 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도움(전문가나 도덕적인 지도자)이 아닌 자력구제의 방식으로 헤쳐 나가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에서 인정하는 '스펙'적 능력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용남과 의주의 취미 생활이자 서로를 이어주는 줄 외에는 맨몸으로 부딪혀야만 하는 클라이밍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들이 스스로를 구제하는 방식은 당장 내딛는 곳이 절벽일지 모르는 순간을 버티며 한 발 한 발 루트를 결정해 나아가는 아슬아슬한 방식이고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유독가스에 집어삼켜질 수 있는 장떠러지와 같은 방식이다. 게다가 용남과 의주는 번번이 구조될 기회를 놓치게 되는데, 그것은 계급과도 연관이 있다. 유독가스가 아래에서 점차 위로 향하기 때문에 고층 건물에 있는 이들의 생존 확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고층 건물이 가지는 계급적 위상과 권력이 재난 앞에서도 여전히 그 위압을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기존의 재난영화에서 보이던, 계급을 망라하고 무차별적으로 모든 것을 집어삼키던 형태의 재난이 아니라 계급과 권력에 따라 피해 정도가 달라지는 새로운 차원의 재난이 도래했음을 말해준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의 청년 세대가 마주하는 재난의 형상이다. 

 

▲ <엑시트> 스틸컷 © CJ ENM     

 

영화 <엑시트>는 단순히 극장의 불이 꺼짐과 동시에 관객에게 카타르시스와 안도감을 선사해주지 않는다. <엑시트>는 유독가스와 같이 서서히 우리를 잠식시키는 질문을 만들어내고 그곳에서부터 다시 <엑시트> 읽기를 감행해야 한다. 용남과 의주는 자신들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해냈고 국가 시스템은 유독가스 사태를 진정시키면서 무능력한 국가의 모습에서 탈피하고 다시금  공동체적 질서를 회복해냈지만, 그것은 정말로 '회복'의 형태를 띠고 있는가? 영화의 제목과 달리 용남과 의주의 삶에는 '엑시트(출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표면적으로는, 잉여인간이자 무가치한 존재였던 용남이 재난의 무질서가 가져다준 전복을 계기로 자신의 잉여 능력치 (클라이밍)을 활용하여 가족 내에서, 그리고 사회 내에서 주체성을 회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엑시트>에서 그리는 재난은 하나의 사건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유독가스 테러는 끝났지만 앞으로의 일상에서 용남은 여전히 백수일 것이며, 의주는 여전히 성차별을 감내하며 감동 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직으로 남게 될 것이고 이들을 위한 특별하고 개별적인 세계는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테러를 일으킬 것이고 이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가져온 재난임에도 불구하고 제도가 개인을 위해 해결해 주는 것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극장 안에서 겪은 웃픔의 정서를 극장 밖에서까지 영속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는 이러한 재난을 계속해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또 다른 관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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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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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7.1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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