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

'파수꾼'(2010), 윤성현 감독

한지나 | 기사승인 2021/07/23

관계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

'파수꾼'(2010), 윤성현 감독

한지나 | 입력 : 2021/07/23 [10:00]

▲ '파수꾼' 포스터  © 필라멘트 픽쳐스

 

[씨네리와인드|한지나 리뷰어] 2010년 개봉한 윤성현 감독의 영화 '파수꾼'은 세 명의 소년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비극을 다룬 영화로 사진 속 소년들은 순서대로 희준(박정민), 기태(이제훈), 동윤(서준영)으로 절친했던 친구 사이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로 이들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틀어지고 기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기태의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 기태의 친구들을 찾지만 희준은 기태의 죽음 전 전학으로 학교를 떠났고 동윤은 기태의 장례식장도 찾지 않은 채 자퇴를 해 학교를 떠났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순차적으로 다루지 않고 비선형적으로 보여주며 관계에서 오는 폭력성과 잔혹함을 드러낸다.

 

▲ '파수꾼' 스틸컷  © 필라멘트 픽쳐스

 

한없이 유약했던 소년 '기태'

 

기태는 소위 말하는 일진으로 학교 내 권력관계에서 꼭대기에 위치한 인물이다. 아이들은 부하처럼 기태를 따라다니고 그는 함께 웃고 떠들다가도 눈빛과 말 한마디로 아이들을 제압할 수 있는 ''을 가지고 있다. 기태는 희준과의 관계가 틀어지자 이 ''을 이용해 희준을 굴복시키려 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잘못된 방식으로 관계에 접근한다. 여기까지 나열된 사실들로 보면 이 이야기의 가해자는 기태이며 가장 강력한 인물로 보인다. 물론 실제로 기태는 물리적 폭력을 일삼는 가해자의 위치에 서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는 기태가 그 누구보다도 나약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세 인물 중 우정, 친구와의 관계가 가장 절실한 것이 바로 기태다. 기태는 엄마가 없이 자랐고 엄마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고 있다. 또 유일한 가족인 아빠와도 그리 친밀해 보이지 않는다. 결핍된 가정에서 자란 기태는 관심과 애정을 갈구한다. 그리고 이를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친구다. 그렇기에 기태는 동윤과 희준을 무척이나 아끼고 때로는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 점은 특히 희준과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기태는 희준이 좋아하는 여자아이인 '보경'과 희준을 이어주려 한다. 하지만 보경은 기태에게 호감을 보이고 기태는 이에 보경을 차갑게 대하며 희준의 눈치를 살핀다. 그 정도로 기태는 희준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부터 둘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한다. 희준은 보경이 기태를 좋아하는 것이 확실한데도 계속해서 자신과 보경을 연결하려는 기태를 보며 묘한 불쾌감을 느낀다. 이를 기점으로 희준은 기태의 행동에 불만을 품게 된다. 머리를 쓰다듬는다던가 은근하게 자신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기태의 행동을 못마땅해하고 화를 낸다. 이에 기태는 희준에게 사과하고 다가가 보려 하지만 자신의 마음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희준을 보며 폭력성을 표출한다. 기태는 자신을 무시하고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희준을 때리고 괴롭히며 잘못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결핍된 소년인 기태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행동이 미치는 ''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희준은 당연히도 자신을 괴롭히는 기태를 무시하고 싫어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기태는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한다. 기태는 그저 전처럼 자신을 대하지 않는 희준에게 서운해하고 희준의 마음만 사그라들면 관계를 복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어찌 보면 순수한 또 어찌 보면 바보 같은 믿음을 가진 기태에게 희준은 너 때문에 전학을 갈 것이며 너를 한 번도 친구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는 말을 건넨다. 이에 기태는 또 폭력을 휘두르고 이 상황을 모두 알게 된 동윤도 기태에게 크게 실망한다. 희준의 발언은 기태를 살아갈 수 있도록 지탱하던 관계를 유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기태는 아직 세상에 버텨낼 수 있었다. 그에게는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줄 거라 믿었던 동윤이 있었으므로.

 

▲ '파수꾼' 스틸컷  © 필라멘트 픽쳐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자신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동윤에게 기태는 또 한 번의 실수를 저지른다. 동윤의 여자 친구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이야기하며 동윤을 자극한 것이다. 이에 둘의 관계도 크게 틀어지게 된다. 하지만 연약하고 무지했던 소년 기태는 동윤만은 자신을 놓지 않을 거라 믿는다. 기태는 자신의 패거리에게 맞아 다치게 된 동윤의 집에 찾아가 관계의 회복을 시도한다. 이 장면에서 기태라는 인물이 가진 유약함이 가장 잘 드러난다.

 

이 소년에게 친구란 얼마나 큰 의미인지 인생에서 얼마나 큰 지분을 지니고 있는지 말이다. 기태는 동윤에게 거의 애원에 가까운 사과를 건넨다. 부탁이니까 제발 너까지 나한테 이러지 말라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고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라고, 너까지 이러면 안 된다고. 이에 동윤은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너에게 진정한 친구였다고 생각하지 말라며 기태를 무너뜨린다. 동윤의 선언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기태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보인다기태의 눈물과 애원에도 동윤은 기태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알아채지 못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는 기태에게 동윤은 '처음부터 잘못된 거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라는 말로 기태의 급소를 찌른다. 기태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동아줄이 끊어진 순간이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윤에 의해 기태는 삶을 버텨낼 모든 힘을 잃게 된다.

 

▲ '파수꾼' 스틸컷  © 필라멘트 픽쳐스

관계 앞에서 우리는 이다지도 나약한가

 

결국 기태에게 필요한 것은 애정과 관심이었다. 새벽녘 동윤과 대화를 나누며 기태는 자신이 일진놀이를 하는 이유가 다 자신에게 주목되는 관심이 신기하고 좋아서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는 탄탄하게 자신을 지지해줄 사랑이 필요했다. 하지만 기태가 더 관계에 절실해질수록 기태는 관계에서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관심과 애정을 위해 강해 보여야만 했던 기태는 몸에 가시를 두르고 상대에게 다가갔고 이를 감수하며 그를 안아줄 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태, 동윤, 희준. 이 세 소년의 관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불투명해 보인다. 누군가는 동윤의 말이 기태를 죽였다고 누군가는 기태가 명백한 가해자라고 또 누군가는 백희가 이 비극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인간에게 관계란 버텨내기 어려운 동시에 버텨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과의 힘이 오가는 중심에 버티고 서 있는 인간은 너무도 나약하고 취약하다. 사랑하는 이의 작은 밀어냄에도 주저앉고 하나의 말에 무너져 내리는 것이 인간이다. ''라는 개인을 지지할 파수꾼의 존재가 없어진 인간은 풀썩 내려앉을 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고통과 상처가 필연적으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전제하에 수용될 수 있다. 물론 인간은 무수한 넘어짐을 경험함에도 다시 일어서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 '파수꾼'은 청춘의 고통과 상처가 곧바로 성장으로 이어지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고통은 때로는 너무도 치명적이어서 흉터가 되지 못한 채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만든다. 인간은 죽기 직전까지 삶에서 이런저런 관계의 힘에 치이고 상처 받으며 살아간다. 이것이 고통스러워 견디기 힘들지라도 결국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나와 다른 인간에게서 받는 작용이다. 하루하루를 한없이 유약하게 버티고 있는 우리는 언제쯤 홀로 단단하게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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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나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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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7.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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