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세계에 발을 들인 인어공주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스플래쉬>, <쉐이프 오브 워터>, <나는, 인어공주> 속 인어의 상징성과 뒷이야기

한수진 | 기사승인 2021/09/10

지상 세계에 발을 들인 인어공주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스플래쉬>, <쉐이프 오브 워터>, <나는, 인어공주> 속 인어의 상징성과 뒷이야기

한수진 | 입력 : 2021/09/10 [14:23]

[씨네리와인드|한수진 리뷰어] 옛날, 아주 먼 옛날 바다 왕에게는 여섯 명의 공주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아름답고 예쁜 마음씨를 가졌는데, 그중에서도 막내 공주는 호기심이 많으며 조용하고 사려 깊었습니다. 공주들은 열다섯 살이 되면 물 위로 헤엄쳐 올라 인간 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막내 인어공주도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바다 위의 인간 세상을 구경하러 가게 됩니다. 

 

물 바깥세상을 구경하던 인어공주는 배의 갑판 위에 서 있는 잘생긴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고, 왕자가 탄 배가 난파되어 왕자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그를 구해 해안가로 데려옵니다. 잠시 후 사람들이 왕자를 데려가고, 인어공주는 다시 바다 속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왕자를 사랑하게 된 공주는 혹시 왕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침, 저녁으로 해안가로 가보지만 왕자를 만나지 못합니다. 

 

인어공주는 왕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그녀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는 마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마녀에게 주는 대신 인간의 다리를 얻어 왕자의 궁전에 도착합니다. 

 

왕자는 인어공주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인어공주에게 그녀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묻지만,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긴 인어공주는 속으로 대답을 삼킬 뿐입니다. 왕자는 인어공주를 아끼지만, 이웃 나라의 공주와 약혼식을 올립니다. 왕자의 약혼식날 밤 인어공주의 언니들은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마녀에게 주는 대신 칼을 하나 가지고 인어공주를 찾아옵니다. 언니들은 인어공주에게 칼을 주며 왕자의 심장을 찌르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인어공주는 그 칼을 파도 속에 던져버리고 결국 물거품으로 변하고 맙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 어릴 적 한 번쯤은 들어본 인어공주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흔한 인어공주 이야기에도 우리가 몰랐던 뒷이야기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한번 파헤쳐 보도록 합시다.

 

▲ 영화 <나는, 인어공주> 스틸컷     ©네이버 영화

 

몰랐던 사실 1. 사실 인어공주는 슬픈 결말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어공주의 결말은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한 인어공주가 그대로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인데요, 사실 원작에는 그나마 우리의 슬픔을 상쇄시켜줄 작은 이야기가 더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가볍게 되고 잃어버린 목소리도 보다 신비하고 아름다워진 상태로 나오자 그녀는 놀라워한다. 공기의 정령들은 그녀가 자신들과 똑같이 되었음을, 300년 동안 인간들에게 봉사하면 자신만의 영혼을 가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인어공주는 왕자와 공주 두 사람을 축복하며 불멸의 영혼을 얻어 승천한다"

 

비록 인어공주가 왕자와 사랑을 이루는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거품이 되어 영원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의 정령이 되어 영혼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오랜 동화팬들에게 안심을 주는 뒷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몰랐던 사실 2. 안데르센은 사실 양성애자였다? 

 

<인어공주>, <미운오리새끼>, <엄지공주> 등, 우리가 어릴 적 들어왔던 동화를 집필했던 안데르센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고 전해져 오는데요, 하지만 그에게도 마음에 품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에드워드 콜린이라는 남성이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지만 곧 다른 여성과 결혼해버린 에드워드를 보고 큰 시련에 빠졌던 안데르센이 실연의 슬픔을 승화하고자 썼던 작품이 바로 ‘인어공주’라고 하니, 왜 그가 인어공주를 이토록 슬픈 캐릭터로 만들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죠?

 

몰랐던 사실 3. 인어공주를 쓰기 위해 참고했던 여러 물의 요정들 

 

 안데르센은 인어공주라는 인물을 창조해내기 위해 기존의 여러 민화와 문학적 전통을 참고했는데요, 셀키(인간과 물개의 모습을 한 상상 속 존재), 님프(그리스어 ‘님페(Nymphe)’의 영어식 발음으로 그리스인들은 자연계에 여러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고, 이것을 님프라고 하였다), 닉시(게르만 신화 속 물의 요정), 운디네(물의 요정) 등이 그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바다의 암초에 누워 햇볕을 쬐며 인간을 유혹하면서 아름다운 인간으로 변하기도 하는 물개 셀키에 관한 이야기는 스코틀랜드 연안 오크니 섬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닉시는 인간을 꾀어 죽게 하는 그리스 신화 속의 세이렌과도 비슷합니다. 또한 바다 왕의 딸과 사랑에 빠진 기사가 그녀를 배신한다는 내용인 푸케의 1811년 발표 단편 「운디네(Undine)」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도 합니다. 

 

추가로, 러시아에도 ‘루살카’라는 이름의 물의 정령 신화가 존재하는데요, 신세계 교향곡과 첼로 협주곡의 작곡가로 유명한 체코 출생의 ‘드보르작’은 이 설화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인어공주’의 모티프가 의미하는 것 

 

후대의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이야기에 많은 감명을 받아 모티프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단 소설뿐만 아니라 만화, 영화 등에 이르기까지 그 파급력이 상당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영화 중에서도 인어공주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 꽤 많은데요, 수많은 인어 영화 중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상징과 은유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이러한 영화 속 인어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지, 한번 탐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Sandro Botticelli (1444~1510), Pallas & the Centaur (1482), Tempera on canvas(207x148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 켄타     ©https://mblogthumb-phinf.pstatic.net/dat

 

1) 반인반수 – 인간이면서, 동시에 괴물인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켄타우로스’와 같이, 반인반수 캐릭터는 우리가 접하는 영화에 흔히 사용되는 모티프입니다. 사전적 의미에서의 반인반수가 ‘반은 인간, 반은 괴물’인 것과는 달리, 영화가 그려내는 반인반수는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그저 괴물에 불과했습니다. 인어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인간이 바라보는 인어는 연구와 구경의 대상일 뿐, 인간과 동등한 위치로의 인정은 받을 수 없었습니다. 

 

2) ‘소수자’ 

 

결국 이러한 반인반수, 인어 캐릭터는 필연적으로 영화 내에서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연상시키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소수자로 규정하는 장애인(특히 말을 못 하거나 걸을 수 없는 캐릭터로 많이 표현되죠), 성 소수자, 인종차별 등의 형태로 말이죠. 본래 ‘이상한’, ‘색다른’ 등의 뜻을 나타내는 단어 퀴어(Queer)와도 뜻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3) 그럼에도, 숭고한 정신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인어는 단순히 이상하고 무서운 괴물의 모습만은 아닙니다. 원작 속 인어공주가 자신의 목숨 대신 사랑을 택했듯, 우리 사회가 미덕으로 생각하는 가치들 – 숭고한 희생, 배려 등 –을 그 자체로 대변하는 존재가 인어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가 잘 몰랐던 인어공주 뒷이야기가 시사하는 바와도 일맥상통합니다.  

 

현대의 인어공주들은 어떤 모습일까? 

 

 원작 속 인어공주가 자신의 마음 한 번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첫사랑의 쓴맛을 본 것과는 다르게, 현대의 영화가 그려내는 인어공주는 조금씩 다른 모습들을 보입니다. 그중에서는 원작과는 전혀 다른 해피엔딩을 맞는 인어공주가 있는가 하며,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했지만 결국 사랑에는 실패하고 마는 인어도 있죠.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 영화 <스플래쉬> 스틸컷     ©네이버 영화

 

1) 영화  「스플래쉬」

 

영화 속 메디슨은 대놓고 원작의 인어를 표방합니다. 아름다운 소녀의 상반신에 물고기의 꼬리를 갖고 있죠. 하지만 약간씩 변화구를 준 것이 눈에 띕니다. 처음에는 말을 하지 못하는 듯하더니, tv 반복 시청으로 금세 인간의 언어와 규범을 익히는 놀라운 습득력을 보여줍니다. 그뿐 아니라 쇼핑과 미용에 관심을 두는 등,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이후 소개해 드릴 영화와는 약간 상반되는 포인트를 갖고 있으니 이것도 주목할 만한 점입니다. 정체가 발각되어 버린 이후, 사람들로부터 대놓고 이방인, 괴물 취급을 당합니다. 꼬리 대신 다리가 있을 때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호의적이었던 사람들은 한순간에 그녀를 타자화시키고, 실험 객체로 활용하는 등 다시는 인간 세계에서 그녀가 살아갈 수 없도록 차단합니다. 심지어 애인이었던 알렌조차도 처음엔 그녀의 모습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여주죠. 하지만, <스플래쉬> 속의 인어는 결국 사랑을 쟁취합니다. 알렌은 잘 나가던 사업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죠.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에 있어서 원작과는 달리 주체적인 자신의 사랑을 보여줬던 메디슨과 인어공주의 차이를 눈여겨볼 만합니다.

 

▲ 영화 <나는, 인어공주> 스틸컷.

 

2) 영화  「나는 인어공주/Rusalka」

 

이번엔 러시아의 인어공주 알리샤의 이야기입니다.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인어공주 이야기를 한다고 암시하고 있네요. 여타 인어공주와는 달리, 이번 인어공주는 자발적으로 ‘침묵’을 선택하는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고 10여 년을 농인으로 살지만, 사랑이 나타난 이후 그 침묵을 깨버립니다. 인어공주의 상징과도 같았던 ‘목소리’의 모티프를 비트는 특이한 모습이죠. 그 어느 인어보다도, 자신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물에 빠진 사샤를 구해준 이후, 일면식도 없던 그에게 대뜸 사랑을 고백하는 당찬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사샤의 무관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찾아갑니다. 우연한 기회에 그와 가까워진 듯 하지만, 웬걸, 그에게는 이미 이웃나라 공주님이 있는 상태였네요. 앞서 <스플래쉬>가 미국, 그것도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면 이번 영화는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합니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체제로의 변화가 낯선 이 무렵, 사회 속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랑하는 알리샤의 모습은 어딘가 짠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알리샤 그 자체가 러시아의 급변하는 상황 속, 적응하지 못했던 국민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던 알리샤는 왕자는 구하지만 정작 자신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게다가 이번엔 공기의 정령이 되어 의미 있는 여생을 보낸다는 메시지도 담겨 있지 않네요. 사회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외톨이 알리샤의 모습이 유난히 쓸쓸해 보입니다.

 

▲ 영화 <쉐이프 오브 워터> 스틸컷     ©네이버 영화

 

3) 영화  「쉐이프 오브 워터」

 

가장 최근에 개봉한 영화답게 기존의 인어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일단 여성 캐릭터로 대변되던 인어공주가 아닌, 남성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또한, 인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노골적인 ‘이방인’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주인공을 비롯한 주역들이 모두 ‘소수자’라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주인공 엘라이자는 농인이고, 그녀의 직장 동료는 흑인, 그리고 동거인 남성은 동성애자입니다. 작중 배경이 1960년대 미국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들이 겪는 차별과 소외는 더욱 도드라져 보입니다. <스플래쉬>에서 메디슨에게 그러하였듯, 이번에도 인간들은 이방인 괴생명체를 가만히 놔두질 않습니다. 더욱 철저하게 인간 세계와 그를 분리하고, 타자화하죠. 또한, 이 물고기 인간은 엘라이자를 제외한 다른 인간들과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인간 세계에서 통용되는 ‘음성’의 언어 대신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교감을 통해 엘라이자와 인어는 사랑을 키워나갑니다. <스플래쉬>와 이래저래 겹치는 부분이 많이 보이는데요, 알렌이 인어로 변한 메디슨의 모습을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한 것과 달리 엘라이자는 이질적인 인어의 모습을 그대로 수용하고 그 자체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두 커플 다 수면 위가 아닌 아래에서 사랑을 지켜나가게 된 것은 동일하네요. 

 

이처럼 어른들을 위한 인어공주 이야기는, 디즈니의 빨간 머리 애리얼 공주님의 이야기와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시대에 따라, 또 영화를 제작한 국가에 따라 인어의 모습과 그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약간씩 차이를 보입니다. 인어 모티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텍스트에서 소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세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 주인공인 인어공주가 인간 세계에서의 '소수자'를 대변하는 것은 어느 텍스트에서나 노골적으로 나타납니다.  

 

처음, 우리가 순수한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봤던 인어공주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저의 경우, 인어공주와 왕자님의 이뤄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 그 자체에만 초점을 두고 동화를 감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인어공주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고 나니 그녀가 단순히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겪었던 불합리한 현실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인어공주의 반대편에 서서 그녀를 차별하던 다른 인물들은 아니었는지를 되짚어보며 반성도 해 보았습니다. 

 

이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인어공주의 또 다른 모습도 보였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데도 그를 끔찍히 생각하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 어쩌면 바보같아 보일지는 몰라도, 그것이 인어공주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미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모습의 인어공주가 존재합니다. 단순히 사회가 규정하는 소수자를 넘어서서, 자신의 숭고한 희생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싸늘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수많은 독립투사들, 6.25 전쟁 시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군인들, 그리고 현재, 코로나 사태에 사명을 다하는 의료진들까지. 현재 우리 사회의 인어공주는 누구이고, 나는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한 번쯤은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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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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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9.1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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