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와 늦봄을 마주한다는 것

Review|'그대를 사랑합니다' (I Love You, 2010)

남진희 | 기사승인 2021/09/13

사랑하는 그대와 늦봄을 마주한다는 것

Review|'그대를 사랑합니다' (I Love You, 2010)

남진희 | 입력 : 2021/09/13 [10:00]

[씨네리와인드|남진희 리뷰어]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사랑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풋풋한 첫사랑부터 달콤하지만 씁쓸한 짝사랑, 그리고 감정이 통한 인연과의 연애와 결혼까지.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사랑을 경험해왔고, 사랑 속에서 성장과 감정의 성숙을 겪었다. 그렇다면 노년의 사랑이란 무엇일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사랑은 존재하고 큰 의미가 있다. 강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년의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위 질문에 대한 고찰을 던져준다.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대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던 때는 언제인가? 우리는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사랑의 시작은 정확한 한순간으로 나타낼 수 없다. 만석과 이뿐에게도 사랑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왔다. 그들이 처음 만난 곳은 각자 우유 배달과 폐지 줍는 일을 할 때 거쳐 가는 좁은 골목길이었다. 까칠하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만석과 수줍지만 웃는 모습이 예쁜 이뿐은 서로에게 자연스레 끌렸고 그들은 처음 만난 골목길에서 매일 서로를 기다린다.

 

만석과 이뿐의 사랑이 커져가는 계절은 겨울이다. 이 영화에서 은 만석과 이뿐의 사랑을 나타내는 매개체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첫눈을 맞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듯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매일 만남을 갖는 둘은, 모르는 사이 서로에게 점점 빠져든다. 그리고 소복이 쌓이는 눈처럼 그들의 사랑 또한 겨우내 소복이 쌓여간다.

 

▲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스틸컷  © (주)NEW

 

만석과 이뿐의 사랑에서 제일 중요한 매개체는 바로 이름이다. 이름은 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통칭하는 글자이다. 그래서 이름을 불러준다는 행위는 그 사람을 자신의 표현 방식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뜻한다. 이 의미처럼 영화에서 이름은 가장 아름다운 사랑 표현을 상징한다.

 

이뿐은 아버지가 징용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받지 못했고, 이름 없이 평생을 살아왔다. 이러한 이뿐의 마음속 응어리를 지워준 사람은 다름 아닌 만석이다. '너 하나뿐이다'라는 의미로 이뿐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만석. 거창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뿐에게는 '송이뿐' 세 글자가 그 어떤 이름보다도 예쁘고 소중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또한 문맹이던 이뿐이 한글을 공부하며 제일 먼저 배운 글자는 김만석이었다. 이뿐은 처음으로 만석에게 쓰는 편지에 김만석세 글자를 또박또박 적어주는데 이는 만석이 자신에게 해준 사랑 표현의 답례였다. 만석과 이뿐에게 '이름'은 사랑을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스틸컷  © (주)NEW

 

만석과 이뿐의 사랑은 봄으로 이어진다. 만석과 이뿐은 둘 다 자신의 배우자를 잃은 경험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이 공허했던 채로 살아온 둘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사랑이라는 감정은 늦게 찾아온 봄과 같았다만석과 이뿐의 사랑이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들의 사랑은 죽음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도 마주해야 한다. 실제로 이뿐은 얼마 남지 않은 만석과의 사별이 두려워 고향으로 내려가기를 자처한다. 그렇지만 만석은 이런 이뿐에게 헤어짐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봄이 거의 다 지나갈 무렵 찾아오는 늦봄은 짧지만 여전히 따뜻한 봄의 기운을 품고 있는 계절이다. 만석과 이뿐의 늦봄은 천천히 다가왔고 빠르게 저물겠지만 그 안에서 둘은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우리는 긴 시간을 거쳐 다시 부부가 되었다

 

사랑의 형태에는 새로운 사랑이 있기도 하지만, 오랜 사랑도 존재한다. 군봉과 순이는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이다. 보통 부부는 인생의 동반자라고 칭하지 않는가. 순이가 치매에 걸려 점점 아이로 되돌아가고 있음에도 군봉은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의지한다. 군봉에게 순이는 사랑하는 이를 넘어 자신 삶의 큰 부분이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자신을 겁쟁이라고 표현하는 군봉은 혹여나 순이를 잃어버릴까 봐 언제 어디서나 순이와 손을 꼭 잡고 다닌다.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노년의 부부를 상징한다. 실제로 이뿐도 이들 부부와 같은 삶을 바랐었다고 독백하기도 했다.

 

▲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스틸컷  © (주)NEW

 

그러나 군봉은 남모를 외로움을 겪고 있었다. 이들 부부에게 부부간의 사랑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자식과 부모 간의 치사랑은 옅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아낌없이 내리사랑을 준다. 그러나 자식은 커갈수록 자신의 삶을 사느라 부모에 대한 사랑을 잊고 살아간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씁쓸한 면이 군봉이 가족사진을 보며 회상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가족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평생 부모와 함께 살며 호강시켜주겠다는 자식들은 점차 결혼하여 한 명씩 떠나갔다. 비좁게 둘러앉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넘쳤던 저녁상은 자식들이 하나씩 분가하며 빈자리만 많아졌고 쓸쓸한 분위기가 맴돌게 되었다. 이 장면에서 군봉은 '그 겨울에는 말만으로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 사람이 됐다. 우리는 다시 부부가 되었다. 가족이었는데...'라고 회상한다. 짧지만 군봉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대사 중 하나였다.

 

가족을 그리워한 군봉과 순이. 그러나 자식들은 자신의 삶에 치여 군봉과 순이를 찾지 않았고 순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오자 값싼 요양원을 알아봐야겠다며 상황을 회피한다. 이 와중에 순이는 점점 건강이 악화되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게 된다. 가족에 대한 외로움을 순이와의 사랑으로 버티고 있었던 군봉. 그에게 배우자와의 얼마 남지 않은 사별은 세상을 모두 잃은 느낌을 가져왔을 것이다. 결국 군봉은 순이와 삶의 마지막을 함께 마주한다. 삶의 끝에서까지 손을 꼭 잡고 내세를 약속했던 둘의 사랑은 아름답고도 아픈 것이었다.

 

▲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스틸컷  © (주)NEW

 

순이는 생전에 군봉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벚꽃길을 달리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순이는 군봉과 함께 따뜻한 늦봄을 맞이하고 싶었을 것이다. 치매를 앓고 있었음에도 순이 또한 군봉을 여전히 사랑했고 함께 백년해로하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장례식의 사람들은 이러한 순이와 군봉의 사랑에는 관심도 없이 자식들에게 폐 안끼치고 일찍 떠나 다행이라는 말만 수군거린다. 따뜻하기를 바랐던 늦봄이 순이와 군봉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계절이었다.

 

영원히 그대를 사랑합니다

 

만석과 이뿐, 순이와 군봉의 사랑은 형태는 다르지만 아름다우면서도 현실의 아픔을 담고 있는 사랑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랑은 아름다움과 고통을 동시에 담고 있지만, 노년의 사랑은 사별이라는 독특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특히 사별은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이기에 노년의 사랑은 짧은 순간이지만, 여전히 봄의 따뜻함을 누릴 수 있는 늦봄과 같은 사랑인 것이다. 그럼에도 노년의 사랑에서도 영원함을 꿈꿀 수 있다. 인생의 황혼기를 지나 찾아오는 밤 즉,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건 무엇보다도 영원한 행복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만석과 이뿐, 순이와 군봉은 오토바이를 타고 밤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간다. 그들의 사랑은 죽음이라는 벽을 넘어 밤하늘의 달과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남진희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cinerewind@cinerewind.com

Read More

  • Posted 2021.09.13 [10:00]
  • 도배방지 이미지

그대를사랑합니다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