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로 보는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

서평|최정화 作, 「구두」

배해웅 | 기사승인 2021/09/14

'구두'로 보는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

서평|최정화 作, 「구두」

배해웅 | 입력 : 2021/09/14 [10:00]

[씨네리와인드|배해웅 리뷰어] 최근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들을 훑던 중, 그의 단편  「니믹」(Nimic, 2019)을 보게 됐다한 평범한 첼리스트가 지하철에서 정체 모를 어떤 사람을 만난다. 첼리스트는 집까지 쫓아온 그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가족들에게 쫓겨난 그가 지하철에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나 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난해한 영화였다. 도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고민하던 중, 최정화의 단편 소설 「구두」가 떠올랐다.

 

▲ <니믹> 포스터.

 

<구두>는 화자가 선생님이라는 인물에게 하소연하는 듯한 서간체 형식의 소설이다. 둘이 어떤 관계인지 정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신경증적인 화자가 정신과 상담의에게 증상을 설명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덕분에 평범해 보이는 여자와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을 향한 화자의 질투가 어떤 긴장감을 자아내는데, 서스펜스가 상당하다. 그런데 소설에선 마지막에 여자가 화자의 구두를 신고 돌아갔을지도 모르는 의심스러운 정황을 제외하면, 모종의 사건 없이 평범한 일상만 보여준다. 사라진 구두 역시 여자가 신고 갔는지 알 수 없으므로 정말로 여자가 화자의 자리를 넘봤을지 알 수 없다. 단지 화자의 심증과 증언만 존재할 뿐이다. , 화자가 갖는 불안의 원인은 정황 증거뿐인데,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화자를 압박했을까.

 

어쩌면 화자의 말처럼 가사도우미 면접을 보러 온 여자가 화자의 구두를 신고 돌아갔고, 정말 화자의 자리를 뺏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화자의 의심이 합리적이라고 할지라도 그 혐의가 성립할 수 있을지는 따져봐야 한다. 화자는 그 여자가 '마치 우리 집을, 내 남편과 내 아이와 내 집을, 자기 집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의심하기 전에, 자신이 정말 그 여자로 대체될 수 있는가를 묻는 게 맞지 않은가. 다시 말해, 화자의 불안은 자신이 대체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 단편 <구두>가 수록된 최정화의 단편집  © 창비

 

<구두>의 화자는 '청소랑 세탁, 식사를 챙기고, 아이들 과제를 좀 봐주'는 주부다. 그녀는 3주간 친정에 다녀오는 공백 동안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자신의 자리를 채우려 한다. 그런데 화자는 여자가 자신의 집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화자가 줄곧 해오던 일들을 능숙하게 해내는 것을 보면서 그녀가 자신을 대체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다. 그리고 그 불안이 잠시 해소되는 순간은 '여자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나는 가지고 있다는 상대적 우월감'이다. 화자는 자신이 소유한 것들로 여자와 자신의 거리를 확보한다. 사실 화자의 정체성에 가까운 것은 그녀가 소유한 '구두'가 아니라 그녀의 '발'이다.

 

그러나 화자는 자신의 구두를 신고 간 여자를 보면서 '자기가 나인 줄로 착각하고 내 구두를 신고 갔다'는 의심을 갖지만, 자신의 발로는 여자와 가족들이 함께 있는 식탁에서 걸어 나오는 인물이다. 이 지점에서 화자는 스스로 외부인이 되고 식탁에 남겨진 사람들은 영락없는 가족의 모습을 갖춘다. 즉, 화자는 본인의 발이 아닌 구두로 자신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화자가 범하는 물성으로 정체성이 대체할 수 있다는 잘못된 판단에서부터 이미 그녀가 느끼는 불안은 그녀의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니믹><구두>은 '나'가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전제로 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것이 단순히 작가의 망상이 아니라, 꽤 그럴듯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어 소름이 돋는다. 만약 내가 가진 것들을 잃어버리고, 나를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나를 부정한다면? 그럼 과연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것엔 차이가 있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지금껏 나를 나의 것으로 주장하고 확인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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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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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9.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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