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우리를, 고양이를 부탁해

Review|'고양이를 부탁해'(2001)

한지나 | 기사승인 2021/09/17

스무 살의 우리를, 고양이를 부탁해

Review|'고양이를 부탁해'(2001)

한지나 | 입력 : 2021/09/17 [09:40]

▲ '고양이를 부탁해' 스틸컷  © 시네마서비스

 

[씨네리와인드|한지나 리뷰어] 태희, 지영, 혜주, 온조, 비류. 같은 교복을 입고 무해한 웃음으로 무장한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다. 이제 이들은 교복을 벗고 각자의 색이 짙은 옷을 입고서 세상으로 나왔다. 인천 앞바다,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해맑은 고등학생 아이들의 모습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주목하던 밝고 아름답던 이 아이들은 이들의 웃음은 어디로 갔을까. 이들이 겪은 삶의 모양은 어떤 형태인가.

 

개봉 20주년을 맞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특별전을 연  「고양이를 부탁해」 는 10대 후반 여성이 성인이 되어 사회와 마주하며 겪게 되는 불안과 고민의 정서를 담백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2001, <고양이를 부탁해>의 여성 캐릭터는 미디어가 주목해 온 획일화된 여성상을 거부했다. 꿈과 희망을 그리는 몽상가 태희, 가난이라는 짐을 업은 지영, 현실적인 포부와 욕망으로 가득 찬 혜주, 길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개성 넘치는 쌍둥이 온조와 비료까지 여성이라는 이름이 아닌 각자의 이름으로 삶을 살아내는 인물을 조명해낸다. 이들이 마주한 20살의 삶은 어떤 색이었을까.

 

▲ '고양이를 부탁해' 스틸컷  © 시네마서비스

 

다섯 명의 아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은 붙임성 좋은 태희다. 같은 교복, 같은 교실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에 뛰어든 우정은 그 모습을 달리했다. 태희는 각자의 삶을 하나로 모이게 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정 많은 아이다. 부모님의 찜질방에서 일을 돕고 백수로 사는 태희는 나쁘게 말하자면 철이 없고 좋게 말하면 다채로운 꿈이 가득하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는 태희지만 집안에서의 가부장적 질서는 태희의 색을 앗아간다. 뇌성마비 시인의 작업을 돕고 외국인 노동자와 실없이 떠들고 어선에 뛰어들 생각까지 하는 태희는 편견을 거둬낸 자리에 희망을 채운 인물이다. 그런 태희의 꿈과 희망은 비좁은 가옥 아래에서 자라날 수 없다. 태희는 밤늦게 가족을 위해 탕약을 데우며 멍하니 앉아있는 엄마의 모습에 자신의 미래를 투영할 수 없다. 그렇게 태희는 나룻배를 타고 정처 없이 떠도는 몽상가의 삶을 꿈꾼다.

 

변화된 우정의 모양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혜주와 지영의 관계다. 학창 시절 가장 친밀했던 둘은 이제 서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혜주는 졸업 후 을 통해 증권사에 취직했고 야망을 품고 자기 일을 성취하려 노력한다. 안경이 아닌 콘택트렌즈로 무장하고 치마 정장을 입고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긴장 가득한 태도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혜주에게 민낯과 안경은 숨겨야 할 허점이다. 혜주는 성형수술에 관해 이야기하며 고칠 수 있는 대로 자신을 고치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인천에서 서울로 집을 옮긴다. 가장 먼저 현실에 뛰어든 혜주는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에 부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이다.

 

반면 공장이 문을 닫아 일자리를 잃은 지영은 앞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노쇠한 조부모를 부양하기에 지영은 아직 포장된 미래를 꿈꾸는 아이다. 텍스타일을 공부하고 싶은 지영은 가난이 들이닥치는 매 순간에도 계속 그림을 그린다. 이는 두 사람의 가치관이 단적으로 부딪히는 부분이다. 혜주의 생일날 지영은 선물 포장지에 텍스타일을 그려 넣었지만 혜주는 당장 포장지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혜주의 눈에 지영이 수놓은 꿈은 현실적 욕망을 가리는 허상일 뿐이다. 유학을 가고 싶다는 지영의 말에는 비아냥거리며 현실을 일깨워주는 사람이 혜주다

 

▲ '고양이를 부탁해' 스틸컷  © 시네마서비스

 

그러나 우리는 무정한 혜주에게 속된 비난의 말을 퍼부을 수는 없다. 언제나 당차고 독기 가득해 보이는 혜주는 여상을 졸업했다는 자신의 한계에 상처받는다. 자신을 믿고 일을 맡기는 상사에 자부심을 느꼈지만 상사는 평생 잔심부름이나 할 수는 없지 않겠냐며 야간 대학이라도 다닐 것을 권한다. 평생 잔심부름만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상황을 넘겼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고층 건물 속 자신의 모습에서 혜주는 저부가 가치 인간이 될 위기와 공포를 직면하게 된다. 혜주에게 20살의 삶은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면 무시하려 드는 비정함이다. 그래서 혜주는 지영이 선물한 고양이 티티를 보살필 수 없다. 혜주는 스무 살의 우리를 돌볼 여력이 없다. 혜주에게 스무 살은 냉철하게 달려 나가야 할 활주로다.

 

지영이 돌보던 고양이 티티는 스무 살 아이들의 관계와 인생을 특히 지영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가난으로 무너져 내려앉기 시작한 지붕 위를 이리저리 위태롭게 거니는 고양이는 가난이 몰고 오는 불행을 피하려 몸부림치는 지영을 닮았다. 공장일이 끊긴 지영은 열심히 새로운 일도 찾아보지만 돌아오는 건 불쾌한 면접관의 질문과 일상을 위협하는 가옥의 붕괴다. 그럼에도 지영은 불행 속에 빠져들지 않으려 저항한다.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고양이 발자국을 남기고 직접 머리를 물들이기도 한다. 가난이 삶을 좀먹는 순간순간 지영은 그 거대한 그림자에 잡아먹히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동시에 지영은 빈곤한 삶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미쳐버린 길거리 여성 노숙자를 보고 태희는 하루종일 뭘 할까 궁금해. 자유롭지 않을까.”라며 천진난만한 반응을 보이지만 지영은 나도 저렇게 될까 봐 무섭다.”고 반응한다. 지영에게 스무 살은 친히 돌보고 싶지만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무거움이다. 그 무거움은 지영의 어깨 위에 하나둘 쌓여 삶을 두려움으로 물들인다.

 

▲ '고양이를 부탁해' 스틸컷  © 시네마서비스

 

그렇게 애써 무시하던 가난은 기어코 지영의 중심축을 무너뜨렸다. 친구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온 지영을 반기는 것은 공터가 되어버린 집이다. 집안을 흔들던 빈곤함은 결국 집안을 허물었고 지영은 이제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묻는 형사의 재촉에도 지영은 말이 없다. 돌아갈 곳도 가야 할 곳도 잃은 지영도 이제 스무 살을 돌보고 가꿀 여력이 없다. 모든 것을 포기한 무기력한 모습으로 분류감시원에 수용된 지영을 찾은 유일한 이는 바로 태희다. 태희는 지영의 고양이를 집안 깊숙한 창고에 두고 찬찬히 쓰다듬는다. 아이들과의 스무 살을 우정을 마음속 깊은 보금자리에 두고 살피는 태희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리고 이내 태희는 자신을 작게 만드는 집을 떠나 더 넓은 삶을 항해하기를 결정한다. 지영이 감시원에서 나오는 날 태희는 집에서 돈을 가지고 짐을 챙긴다. 갈 곳 없는 지영에게 새로이 향할 곳을 만들어가기를 권한 것이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냐며 태희는 지영과 어딘가로 떠나갔다.

 

이제 고양이는 온조와 비류에게 넘겨졌다. 인천에 남은 이 아이들은 이제 어떻게 고양이를 돌보게 될까. 영화 속 고양이는 단지 한정적으로 지영의 가난이나 불우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넘어 고양이는 영화 속 인물들의 스무 살, 더해서 우리들의 스무 살이다.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이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꾸려가고 나를 우리를 지키고 돌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태희와 지영이 떠나는 모습은 얼핏 보면 희망적인 마무리 같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들의 여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곳곳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이들의 삶을 어둡게 물들일지 모른다.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오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러하면 어떠한가. 그래도 이들은 고양이 티티를 여러 손을 빌려 돌본 것처럼 연대하고 서로를 돌보며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 '고양이를 부탁해' 스틸컷  © 시네마서비스

 

세상은 쉽게 스무 살을 아름답게 빛을 낼 나이라고 단언한다. 마치 가난의 어두운 그림자나 방황은 스무 살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청년을 밝고 행복하게 묘사한다. 특히 스무 살의 여성은 성과 사랑에 눈을 뜬 아름답고 순종적인 모습으로 그려내 왔다. 그러나 스무 살의 여성은 생각처럼 아름답지도 순종적이지도 않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아름답고 순종적이지 않은 스무 살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위로와 안도를 선사한다. 조금은 방황해도 괜찮고, 좌절해도 좋고 무너져도 좋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자 세상이니까. 영화는 밝은 빛만을 반사해내는 세상을 비웃고 그 아래 어두운 그림자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는 이야기한다. 우리를 고양이를 부탁해. 지영이 공장 근처에서 돌보던 고양이 티티는 혜주에게로 다시 지영에게로 태희에게로 끝에는 온조, 비류에게 전해졌다. 언젠가 온조와 비류가 고양이를 놓아줄 때가 온다면 그 누군가 손을 내밀지 않을까. 우리를 고양이를 지킬 수 있도록. 20년 전 모여 봤던 이 영화를 위해 지금 우리가 다시 모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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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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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9.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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