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관녀(棺女) 9화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5/12

[중편/소설] 관녀(棺女) 9화

김준모 | 입력 : 2020/05/12 [17:49]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물내음을 가득 품고 있다.

 

차가운 물방울을 얼굴에 맞은 것만 같은 상쾌함이 느껴진다.

 

정신이 청량해지는 그런 마법은 물꽃 마을 입구에서부터 펼쳐진다.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동일이는 인준 오빠네 집으로 가겠다며 뛰었다.

 

영주 언니는 서먹함 없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집 안으로 안내했다.

 

둥글레차를 마시며 옛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언니가 손수건을 내밀기 무섭게 한숨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푹 밀려나왔다.

 

숙자 : 참나, 직장에서 집단 괴롭힘이라니. 웃기지도 않지, 정말.
영주 : 진짜 사람들이 못됐다.
숙자 : 진짜 너무 못됐어. 애가 뱃살이 좀 나왔다고 퇴근 후에 데려다가 강제로 운동을 시켰다고 하는데 말이 운동이지 들어보니 완전 기합 수준이야. 서른이 넘은 애를 학교 운동장에서 오리걸음 시키고, 엎드려뻗쳐 시키고. 자기들 마음대로 몇 킬로까지 못 뺐다고 벌금으로 돈도 가져갔대. 점심시간에는 밥도 절반 밖에 못 먹게 하고 애가 너무 배고파서 초코바 하나를 먹었나 봐. 그거 가지고 혼나야 되겠다면서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대걸레로 엉덩이를 때렸다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더라. 언니, 그놈들이 인간이야? 경찰에 신고하니까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 내가 과잉보호를 해서 애가 이 모양이라고 핀잔을 주더라. 자기들이 뭘 잘못했냐고 오히려 큰 소리 치는데 한 대 치고 싶은 거 있지.
영주 : 그래서 경찰에서 잘 처리가 된 거야?
숙자 : 전혀. 좋게 합의보라고 오히려 설득하더라. 경찰이 앞장서서 그러니까 기운이 쭉 빠지더라고. 동일이도 일을 크게 만들기 싫다고 인터넷에 올리지 말아 달라 하더라고. 동일이만 근무지 옮기는 거로 끝났어.
영주 : 동일이 여기가 좋다며. 여기로 근무지 옮겨달라고 하지 그랬어?
숙자 : 그 말이 안 떨어지더라. 동일이는 여기로 오고 싶다고 계속 그랬지. 자기 혼자서라도 가겠다고. 그런데 내 마음이... 미안해, 언니.
영주 : 나한테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숙자 : 나 여기 떠난 이후로 너무 힘들었어. 사람들이 참 교만해. 조금만 만만해 보이면 깔아뭉개려고 들고 잘못해도 절대 사과하지 않아. 목소리 크면 이긴다고 생각하는지 소리만 꽥꽥 질러대고. 그럴 때면 동일이 아빠가 너무 그리워. 그이만 있었어도 내가 이렇게 무시당하지 않았을 텐데. 동일이는 애가 너무 순하고 착해. 남이 뭐라고 하면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움츠려들어. 그러니까 만만해 보이는 거야. 난 배운 거 없고 멍청해서 당한다고 치더라도 동일이는 다를 줄 알았어. 그런데 참. 동일이가 그러더라. 자기는 서울에 올라와서 항상 왕따였대. 그 말을 듣고 밤새 한숨도 못 잤어. 내가 강연을 다니고 TV에 나올 때 동일이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던 거야. 그걸 혼자 묵묵히 숨기고 있었던 거라고.
영주 : 동일이는 속이 깊은 아이잖아. 그런 애일수록 마음에 상처가 강해.
숙자 : 맞아. 그이가 죽었을 때 그 애도 정말 슬펐을 거야. 그런데 나한테 와서 엄마 울지 마 그러더라. 그런데 난 동일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어. 그때도 지금도 그 애 혼자 슬픔을 삼키게 내버려뒀지 뭐야. 동일이가 직장 그만 다니고 싶다고 할 때마다 혼냈어. 공무원도 못하는 그 끈기로 뭘 할 수 있겠냐며 다그쳤지. 나 진짜 미쳤다, 그치?
영주 : 동일이를 괴롭힌 그 썩은 놈들이 미친 거야. 나 가끔은 이 세상에 신이 진짜 있는 걸까 그런 생각해. 착한 사람은 피해보고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더 잘 먹고 잘 사는 거 보면 화가 난다니까.
숙자 : 인간도 동물이야. 더 강하고 비열해야만 살아남아. 신이 만든 자연의 먹이사슬과 다를 바가 없어. 내가 동일이를 너무 약하게 키운 게 아닌가 걱정이야. 살아있는 건 우리 아들인데 죽은 그이만 바라보고 사느라 신경을 못 썼어. 언니, 이 지옥이 언제쯤 끝날까. 아니, 끝날 수 있을까. 지금도 자다가 한밤중에 깨어나면 옆자리를 더듬어. 습관처럼 그이를 찾는 거야. 그러다 아, 그이는 죽었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 이런 생각에 혼자 울곤 했어.
영주 : 동일이가 저렇게 큰 건 다 숙자 네 덕분이야. 착한 사람이 되는 건 힘든 일이야. 사람도 동물이야. 남보다 크면 괴롭히고 싶고 약하다 생각이 들면 위에 올라서고 싶어. 그걸 참아내는 건 본능을 억누르는 거와 다름없어. 동일이가 의젓하게 커준 것만 해도 숙자 네가 잘 한 거야. 나도 남편이 죽었을 때 절망했어. 다시 부모님이 사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했고. 난 애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 마을에서 지내면서 한 순간도 외롭다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다들 너무 좋은 사람들이야. 혹시 동일이가 너무 힘들다고 그러면 여기로 와도 괜찮아.
숙자 : 동일이가 너무 힘들어 하면 그래야 되겠지. 그런데 그러면 내 마음이 힘들 거 같아. 언니는 내가 왜 서울로 올라갔는지 알잖아. 난 지금도 이 마을이 서늘하게 느껴져. 너무 좋은 추억이 많고 반가운 사람들이 많은데 내 마음 한 구석에 남겨진 상처가 여기만 오면 따끔거려. 동일이를 여기에 살게 하고 싶진 않아.

 

영주 언니는 섭섭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언니는 동일이를 아들처럼 생각한다.

 

그 애가 7살 때, 대부분의 시간을 영주 언니의 집에서 보냈다.

 

다시 동일이를 데리러 온 날, 그 애의 표정을 기억한다.

 

낯선 사람을 바라보는 경계심이 가득 담긴 그 눈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증거를 찾으면 모든 악몽이 끝날 줄 알았다.

 

아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라 여겼다.

 

어느 날 동일이가 사라졌다.

 

부엌에서 밥을 차리는 동안에 나간 것이다.

 

영주 언니네 집에서 그 애를 발견했을 때 배신감이 치솟았다.

 

집에 가자는 말을 무시하고 벽만 보고 서 있는 아들의 팔을 잡아당겼다.

 

울며불며 바닥에 나뒹구는 그 애를 가까스로 집으로 데려왔다.

 

동일이는 내가 싫다고 그랬다.

 

악과 깡만 남은 내 모습에서 한 줌의 애정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집을 비울 때마다 그 애는 영주 언니며 인준 오빠며 다른 집으로 도망쳤다.

 

그때마다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벌여야 했던 몸싸움은 날 지치게 만들었다.

 

하루는 집에 와서도 떼를 쓰는 걸 멈추지 않아 파리채로 때린 적이 있다.

 

밥도 안 먹고 흐느껴 울던 동일이는 큰 결심을 한 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동일 : 엄마가 죽었어야 했어. 아빠가 아니라.

 

동일이의 심장은 물꽃 마을에 뿌리박혔다.

 

그 애가 바라보는 난 차분하고 다소곳한 물꽃 마을 여자들과는 거리가 먼 외지인이었다.

 

아빠 대신 살아남은 엄마는 죄인이다.

 

엄마는 이 마을에서 떠났어야 했다.

 

그 여자가 그랬던 거처럼.

 

출판사를 통해 돈을 얻어 서울로 올라왔다.

 

동일이는 밥을 제대로 먹지 않고 우울한 표정으로 침대 위에 몇 시간씩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동일이는 내 슬픔 때문에 의젓해진 게 아니다.

 

외로움과 고독을 잃고자 빨리 어른이 된 거다.

 

영주 언니의 장례식에 일부러 동일이를 데려오지 않았다.

 

그 애가 내 옆에서 어머니가 죽은 거처럼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보기 싫다.

 

마을회관 앞에는 보람이가 나와 있다.

 

보람 : 아줌마, 진짜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숙자 : 보람이 너도 잘 지냈니?
보람 : 네, 잘 지내요. 안에 마을 어른들이 와 계세요.
숙자 : 다들 충격이 크겠다. 영주 언니, 몇 달은 더 살 줄 알았는데.
보람 : 그러게요. 마을 어른신분들이 다 침통하세요. 요즘은 100세 시대인데 30년이나 먼저 가셨다고.
숙자 : 맞아. 너무 빨리 갔지. 난 언니가 나보다 더 오래 살 줄 알았어. 워낙 건강했잖아, 영주 언니.
보람 : 사실 3년 전부터 몸이 계속 망가지셨어요.
숙자 : 진짜? 난 몰랐는데.
보람 : 현기증 때문에 자주 넘어졌고 간이 많이 악화되어서 얼굴에 기미가 갈수록 심해졌어요. 걷기도 힘들어졌을 때는 정말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숙자 : 세상 참 좋은 사람은 빨리 데려간다, 진짜.

 

마을회관 안에는 촌장님을 비롯해 마을 어른들이 앉아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의자 위에 책상다리로 앉아있는 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다.

 

인준 오빠의 손짓을 시작으로 다들 날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숙자 : 다들 장례 준비하느라 고생했어.
인준 : 숙자 넌 안 우냐? 나 너 엄청 울 줄 알고 손수건 준비해 왔는데.
숙자 : 집에서 다 울고 왔어. 그런데 언니는? 언니는 어딨어?
보람 : 묘지에 묻었어요.
숙자 : 벌써? 아쉽다. 나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인준 : 민혁이가 관부터 다 준비했더라고. 시신도 걔네 집에 두고 걔가 다 준비했어. 자기가 쓰려고 사 둔 관이었다는데 영주가 들어갔으니 얼마나 씁쓸하겠어.
숙자 : 민혁 오빠도 참 안됐다. 그래도 그렇지 나도 영주 언니 만나고 싶었는데.
인준 : 나도 마찬가지다. 걔네 집에 갔는데 벌써 천으로 꽁꽁 다 싸매놨더라. 누구한테도 보여주기 싫은 거겠지.

 

인준 오빠의 안내를 받아 마을회관 안에 장례식장을 향한다.

 

조그마한 방 안에 영주 언니의 영정사진이 보인다.

 

향불을 붙이고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본다.

 

세상을 떠나기 전, 언니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자기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그 고백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집으로 올라와 며칠을 생각하다 내린 결론은 내면의 죄책감이었다.

 

언니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누구나 언니를 좋아했고 또 의지했다.

 

그런 언니에게 망가져버린 내 모습은 슬픔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언니는 연희가 말도 없이 사라진 이유도 우리가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했다.

 

영주 언니는 이 마을의 모든 사람을 사랑했고 좋아했다.

 

그래서 35년 전 그 사건을 잊지 못한 것이라.

 

그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언니였기에 나에게 화를 내며 잊어버리라 말한 것이라.

 

내가 그 사건을 잊지 못하면 언니도 잊지 못하니까.

 

언니, 명숙이는 나랑 동일이가 끝까지 책임질게.

 

그러니까 이제 그만 그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언니는 아무 잘못이 없어.

 

만남의 순간은 이별 이후 더 진해진다.

 

10년 전, 언니에게 받은 위로가 없었다면 동일이도 나도 절망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을 거고 우리의 관계는 이어붙일 수 없을 만큼 깨졌을 것이다.

 

35년 전, 언니가 내 곁에 없었다면 지금 이 삶은 존재하지 않았겠지.

 

나를, 우리 가족을 만들어 준 건 언니야.

 

그러니까 이제는 하늘 위에서 행복해야 해.

 

못난 동생의 질투와 투정을 받아주는 건 여기까지야.

 

이젠 안녕, 영주 언니.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기획취재부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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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0.05.1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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